“제 취미는 ‘잠’이에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스터디 모임에서 취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꽃꽂이, 수영, 영화 등 각자의 취미를 공유하는데, 한 스터디원이 말했다. “제 취미는 ‘잠’이에요.” 자는 게 취미라니? 의아해하는 우리의 얼굴을 보고 그가 덧붙였다. “저는 취미를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생각하고 이것저것 찾아서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번아웃된 마음이 쉽게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는 현재 휴직계를 냈다. 2주째 접어든 휴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취미로 ‘자는 일’이라고 했다.

pixabay

pixabay

그 말을 듣던 또 다른 스터디원은 “수면유도제를 먹는 단계”라고 고백했다. 이제 막 회사에 들어간 신입인데, 걱정과 불안으로 피곤한데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거였다. “수면제까지 가진 말아야지” 다짐하고 수면유도제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너도나도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호소에 말을 보탰다. 취미로라도 잠을 ‘잘 자고’ 싶은 마음이 같았다.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물과 잠을 두고 ‘안 자고 vs 안 마시고 버티기’를 겨룬 일이 있었다. 모두 인간에게 필수요소인 터라 우열을 가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어쨌든 결과는 ‘물을 안 마시고 버틴’ 쪽이 이겼다. 쏟아지는 잠을 의지로 견딜 순 없었던 까닭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잠이야말로 꼭 필요한 행위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잠이 ‘취미’생활로 여겨지는 건 씁쓸한 일이다.

잠을 못 이루는 건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잠을 몰아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수험생들은 잠을 쫓기 위해 고카페인 음료인 ‘에너지 드링크’에 의존한다. 불안과 걱정을 에너지 드링크와 함께 삼켜내고 있는 것일 테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피곤해도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한다. 이러한 심리를 노리고 청소년을 상대로 ‘마약 음료’를 건네는 범죄가 버젓이 자행된다. 누군가는 불안과 걱정에 뒤덮여 잠을 못 이루고, 또 누군가는 카페인으로 잠을 밀어낸다. 잘 잔다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어야 하나.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잠을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한 수면 과학과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 <잠>에서 주인공들의 대사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우린 일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내요. 12분의 1은 꿈을 꾸면서 보내죠. 하지만 대다수는 관심이 없어요. 잠의 세계는 우리가 탐험해야 할 신대륙이에요.”

잠 못 이루는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베르베르의 표현대로라면 잠과 꿈의 세계를 탐험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베르베르는 “꿈은 내 모든 영감의 원천이다”라고 했다. 불안에 짓눌린 두려움이 꿈속에서마저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을 방해한다. 자·타의적인 이유로 잠을 빼앗긴 현대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취미가 ‘잠’이라면, ‘잠의 세계를 탐험’해보면 어떨까. 당장 나부터 불면증으로 침대 머리맡에 켜놓은 ‘수면음악 ASMR’에 덜 의존해봐야겠다. 잠이 고통은 아니니까. “잠과 꿈의 세계를 들여다보자”고 다음 모임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모처럼 우리 모두 편안한 꿈을 꾸면 좋겠다.

<유선희 뉴콘텐츠팀 기자 yu@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