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와 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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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제공

애플 제공

얄밉게도 일본어와 중국어는 하면서도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쓰지 못한, 그래도 윈도 10에 탑재돼 낯설진 않았던 음성 인공지능 코타나. 그 종료 소식이 들려왔다.

어중간한 성능을 참고 쓰기에는 PC의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하는 작업 창이 훨씬 편해 계륵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윈도를 넘어 모바일이나 엑스박스 게임기까지 판로를 확장해 보았지만 몇 년 만에 하나둘씩 철수했고, 이달 초 은퇴가 공식화됐다.

GPT 기반의 AI 제품 코파일럿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온 제품군에 적용되고, 급기야 윈도에도 탑재되기로 된 이상 예상된 수순이었다.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시리가 코타나의 동종업계 스타였다. 이들의 업무는 날씨를 알려준다거나, 일정을 확인하고 입력해 준다거나 간단한 웹검색을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전자수첩에 기대하는 정도의 비서 업무였고, 화면과 키보드가 여의찮은 상황에서 도움을 주곤 했다. 거꾸로 화면과 키보드가 완비된 곳에서는 무시됐다.

반면 GPT류의 생성형 AI는 다르다. 그들과의 대화는 자극을 준다. 그래서 키보드 앞에서 더하게 된다. 내 의도에 대해 그들이 내놓는 답변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확률적이다. 내게 부족한 구석구석의 지식과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시킨 일을 정확히 빈틈없이 할 의지가 별로 없다. 그들은 비서가 아니라 참모다.

일정에 알람을 설정하는 일은 예측으로 할 일이 아니기에 GPT에 비서의 일을 시켰다간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하나를 뽑는 식으로 처리하려 들 것이고, 가끔은 아주 자신만만한 헛소리로 나를 현혹할 것이다.

원래 좋은 참모는 예스맨이 아니다. 쓴소리로 내 눈을 뜨게 해야 한다. 체크는 나의 몫, 최종 책임은 내게 있지만 그들은 분명 생각지 못했던 해법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곁에 둔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참모를 곁에 둘 수 있다 하니 세상이 뒤집혔다.

이달 열린 애플의 세계개발자 콘퍼런스(WWDC). 일각의 기대와 달리 인공지능 시리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AI 대신 자리를 차지한 건 프라이버시라는 키워드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습격과 구글의 추격이 만든 생성형 AI 트렌드를 애써 무시하는 듯, AI 관련 빅뉴스는 이제 시리를 부를 때 ‘헤이’라는 말을 빼도 된다는 정도였다. 애플 반도체의 상당 면적은 AI 칩으로 채워져 있음을 생각해 보면 그들도 생각이 없을 리 없다. iOS 17에서 키보드 자동완성이 더 똑똑해진다는 것으로 봐서 기술에 관심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입이 무거운 비서가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것일까. 시리는 2021년부터 인터넷 연결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 지금 내 곁에 둔 저 이가 정말 참모의 그릇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게다가 직업윤리를 기대하기 힘든 무경력자일지도 모른다면? 프라이버시란 이 의심을 키우는 키워드다.

인간에게 앞으로 주어질 일자리란 무엇일까? 실수 없이 과묵한 비서야말로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창의적 자극으로 보좌하는 일인가. 아니 애초에 보스를 위해 일하는 일이 앞으로 지속가능한 걸까?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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