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전세사기 피해자의 최우선변제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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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정부차원의 전세사기·깡통전세 추가대책 마련 및 대통령 면담 재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정부차원의 전세사기·깡통전세 추가대책 마련 및 대통령 면담 재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세사기 특별법이 오랜 진통 끝에 지난 5월 25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전세사기 피해가 공론화된 뒤 너무 늦은 대응이었고, 그사이에 다섯 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늦은 만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특별법 제정 직후부터 후속 대책을 둘러싼 논의가 분분하다. 전세사기를 넘어 전세 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가 다소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임차인이 알기조차 어려운 최우선변제권

문제는 논의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쟁점마다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땐 논의의 갈래부터 나누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전세사기와 관련된 논의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특별법이 언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현장의 혼란이다. 피해자 인정, 경·공매 유예와 대행, 전환 및 신규 대출의 조건과 실행 등을 둘러싸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조속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는 특별법 제정 막판까지 쟁점이었던 전세보증금 보전 방안과 피해자 요건의 사각지대다. 피해자들은 보완 입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전세 제도 개선 방안과 역전세난 대응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명이 다한 전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가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며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고, 정부·여당이 임대차 3법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전세사기조차 정쟁적 사안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여야뿐 아니라 시장에서도 전세에 혜택을 줬던 전세대출과 전세보증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아울러 하반기에 본격화될 깡통주택 위기와 역전세난을 앞두고 임대인에 대한 대출 확대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세 가지 갈래의 논의가 모두 중요하기에 함께 다뤄지곤 한다. 하지만 각각의 논의가 혼란스럽게 전개되지 않고, 쟁점이 하나씩 정리되며 성과를 내려면 어떤 논의를 하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전세보증금 보전 방안 중에서 최우선변제권에 대해서만 다루려 한다.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막판까지 쟁점이었던 사안은 피해자 범위,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의 공공 매입 여부, 최우선변제금 보전 방안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중 최우선변제금 보전 방안은 여러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에도 가장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중요한 사안이었다. 사망한 다섯 명의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두 분이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전 재산에 대출까지 받아서 냈던 7000만원과 9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전액 날릴 상황이었다. 피해자 대책위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500명 이상이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새로 전세를 얻을 때 최우선변제금만큼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특별법에 담겼다. 피해자 대책위는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들에게 새로 더 빚을 내라는 무자비한 대책’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일부 피해자들은 왜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맡긴 보증금 가운데 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최우선변제권)를 보장한다. 이 권리가 정하는 한도액이 최우선변제금이다. 다만 이 최우선변제권은 소액임차인에게만 적용된다.

그러면 사망한 두 피해자는 소액임차인이 아니었을까. 이들이 계약한 시점이 전세난이 절정이었던 2021년이고, 임차한 주택의 위치가 인천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보증금 7000만원과 9000만원이 고액이라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당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서도 인천 지역 소액임차인의 기준은 보증금 1억3000만원 이하였다. 이들은 이 기준에 충족했다. 문제는 이들보다 선순위로 근저당권을 가진 채권이었다. 최우선변제권을 가지는 소액임차인과 우선 변제금액의 기준 시점은 임차인의 계약일이 아닌,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날짜다. 이로 인해 2021년에 입주한 임차인은 이 시기의 법령이 아닌, 임대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시점의 법령을 적용받는다. 실제로 첫 번째 사망자는 임대차계약 시점보다 무려 10년 앞선 2011년의 법령을 적용받았다. 임대인이 그때 빚을 냈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 소액임차인의 기준은 6500만원으로 2021년 전세보증금 7000만원을 맡긴 임차인은 최우선변제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세 번째 사망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9년 전세보증금 7200만원에 계약했고, 2021년 재계약 시 임대인의 요구에 따라 보증금을 9000만원으로 올려줬다. 이 증액이 문제였다. 이 집의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시점은 2017년 7월로, 이 당시 소액임차인의 기준은 8000만원이었다. 원래는 소액임차인이었으나, 전셋값이 올라 기준을 넘은 것이다. 이렇게 최우선변제권의 기준 시점이 선순위 근저당 설정일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임차인뿐 아니라 임대인조차 알지 못한다. 극히 일부의 법률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만이 아는 ‘법률 기술’에 가깝다. 그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갈랐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첫날인 6월 1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내 전·월세 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담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첫날인 6월 1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내 전·월세 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담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한 법률 해석 바꾸고 법 개정해야

삶과 죽음을 가른 이상한 법령에 대해 좀더 파고들고자 한다. 임차인이 계약 시점의 법령이 아닌, 선순위 근저당 시점의 법령에 적용을 받는 근거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부칙에 있다. 이 부칙의 제2조를 그대로 옮기면 “(소액보증금 보호에 관한 적용례 등) 제10조 제1항 및 제11조의 개정규정은 이 영(令) 시행 당시 존속 중인 임대차계약에 대해서도 적용하되, 이 영 시행 전에 임차주택에 대하여 담보물권을 취득한 자에 대해서는 종전의 규정에 따른다”이다. 좀 어려워 보이지만, 우선변제를 받는 금액(제10조)과 소액임차인의 기준(제11조)에 대한 규정 개정 전에 임차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내준 채권자에겐 이전의 규정에 따른다는 의미다.

이 규정을 기계적으로 해석한 결과가 현재까지의 판례다. 법원은 줄곧 최우선변제권을 가지는 임차인의 기준을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시점으로 판결해왔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엄밀히 따져보자. 이 부칙은 담보물권자의 권리를 규정하지만, 임차인의 권리를 규정하진 않는다. 담보물권자는 대출을 내줄 당시의 최우선변제금만큼 상환을 못 받을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법령이 바뀌더라도 마땅히 자신의 권리가 온존하길 바란다. 하지만 소액임차인의 기준은 이후에 전셋값이 올라가면서 바뀌는 것이 당연하고, 과거의 기준을 적용하면 소액임차인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소액임차인의 기준이 바뀌더라도 담보물권자의 입장에선 이전보다 손해를 입거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 전혀 없다. 최우선변제금이 이전과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칙 조항은 ‘적확하지 않은 애매한 문장으로 각 주체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한계’가 분명하고, 담보물권자에 대해 적용되는 이 규정이 신규 임차인에게 적용된다고 추론하기까지는 여러 인과적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지만, 이 법령에선 반드시 갖춰야 하는 연역적 연결고리가 부재한다. 결국 부칙으로 적힌 이 애매한 문장이 수백명, 수천명의 전 재산을 빼앗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게 만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책적 개입을 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전세사기 사태로 인해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거의 처음 시작됐고, 국회에서도 개선하려는 시도가 나온다는 점이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8일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최우선변제의 세부사항을 의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그러나 지나치게 미온적이다. 국회는 법령의 부칙에 대한 유권해석을 정부에 요구하고 해석을 바꾸도록 목소리를 내며, 이참에 최우선변제권을 보장받는 소액임차인의 기준을 아예 삭제하도록 법률을 바꿀 필요가 있다. 언뜻 보기엔 고액임차인을 왜 보호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하는 한국사회에선 이 소액임차인의 기준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됐다. 애초에 임차인을 나눌 필요 자체가 없는 일이었다. 집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내주는 금융기관들이 처음부터 최우선변제금을 고려해 대출 금액을 정하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기관은 대출의 기간을 정하고, 기간마다 대출 일부를 상환하게 하거나, 금리를 바꾸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리스크를 통제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령이 금융을 과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힘센 자들을 과보호하느라 약자들이 죽어가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법령 해석과 법률 개정의 노력만으로는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책적 개입’이다. 최우선변제금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방안은 분명 있다. 정부는 그저 ‘사기 피해자에게 재정을 투입할 수 없다’며 완고한 입장을 보이지만, 이런 태도는 대안을 강구하지 않겠다는 ‘무의지’와 ‘무능’을 보여줄 뿐이다. 최우선변제금을 보장하지 못하는 근거가 된 선순위 채권을 공공이 인수해 최우선변제금의 재원으로 삼는 방안 등 공공이 가진 권한과 시장의 기능을 활용하는 대책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다른 지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더라도 재정이 일정 수준의 역할을 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의 희생과 고통을 방치하지 않길 정부와 정치권에 바랄 뿐이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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