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보이지 않는 손’과 정의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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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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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가의 메시지가 왜곡돼 일반인의 오해뿐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귀결되는 사례가 있다. 올해로 탄생 300주년을 맞이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그러하다. 스미스는 생전에 두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1759년에 출판한 <도덕감정론>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그의 철학을 밝힌 책이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1776년에 출판한 <국부론>(원제: 국부의 본질과 원천에 대한 탐구)은 자본축적과 금융체제, 국가재정과 국제무역 등 정치경제의 근본 문제를 다룬 고전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경제학자에게 영감을 준다.

<도덕감정론>은 출판 즉시 큰 반향을 불러왔다. 데이비드 흄은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도덕감정론>은 좋은 평가와 함께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고 책의 성공을 축하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번역판도 스미스 생전에 발간됐는데, 유럽 대륙의 계몽주의자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도덕감정론>은 여러 번 수정판을 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수정판은 스미스가 작고하기 3개월 전에 발간됐다. 스미스가 얼마나 이 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스미스 생전에 다섯 번 개정판이 발간된 <국부론>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초기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출판 이후 두 세기가 더 지나는 동안 두 책에 대한 반응은 다르게 전개됐다. 초기의 열렬한 반응과는 달리 <도덕감정론>은 점차 학계에서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국부론>은 정치경제학의 바이블로 자리 잡게 된다. 도덕철학 분야에서는 데이비드 흄이나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이 지배적인 담론이 되면서 스미스의 영향력은 약화된다. 반면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후대의 학자들은 스미스의 경제사상을 발판으로 학문을 발전시켰다. 카를 마르크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등 고전파 경제학자뿐 아니라 이후 거의 모든 경제사상의 출발점은 <국부론>이다. 현대에 와서는 분업의 원리를 설명할 때는 ‘핀 공장’이, 시장경제의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설명할 때는 ‘보이지 않는 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애덤 스미스 / 위키피디아 웹사이트

애덤 스미스 / 위키피디아 웹사이트

학문이 분화되면서, 그리고 경제학의 방법론이 개인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쉽게도 스미스의 사상은 반쪽만 현대 경제학에 계승되고 말았다. 현대 경제학의 수학적 기초를 다진 폴 사무엘슨은 1948년에 <경제학>을 발간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경제학의 표준 교과서로 자리했다. 여기에서 사무엘슨은 가격 기능에 대한 설명을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보통 공공의 이익을 촉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의도는 자신의 안전과 이익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기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목적을 촉진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한 것보다 더 사회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촉진하게 된다.” 공공재와 시장 실패 등을 비중 있게 다루었지만, 그리고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언급했지만, 개인의 이익추구가 공공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사회정의의 경로 하나만이 <경제학>에 수용됐다.

시카고학파의 태두인 밀턴 프리드먼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정부 개입의 배제와 정부 역할의 최소화를 밀고 나갔다. 1980년 출간한 <선택의 자유>에서 프리드먼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자유방임 경제철학의 논거로 애덤 스미스를 다른 어떤 사상가보다 많이 인용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가 중심역할을 했다. 요점은 개인의 방해받지 않은 자발적인 선택이 사회적으로 최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의 어디에도 시장 참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은 명시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프리드먼의 시장중심주의 사상은 정부의 재정적자와 방만한 운영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경제의 반론으로 제시됐는데, 레이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이념이 됐다.

정치적 이념을 배제하고 두 책을 함께 읽을 때 스미스 사상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난다. 스미스를 포함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은 ‘인간 사회는 신의 설계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문제를 경험에 입각해 인간 이성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도덕감정론>

의 중심 개념은 공감(sympathy)이다. 동정(pity)과는 다른, 대등한 인간관계를 전제한다. 스미스는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타인의 행복과 불행이 자신의 감정에, 그리고 의사결정에 반영돼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계몽주의 사상을 역설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국부론>은 편파적이지 않다. ‘핀 공장’을 보자. <국부론> 첫 장이 분업을 다루는데, 핀 공장 사례는 세 번째 문단에 나온다. 비숙련공이라도 핀 만드는 과정을 여럿이 나눠서 하면 모든 과정을 각자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한다. 핀 공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분업의 효율성은 경제학의 확고한 기초 원리다. 그런데 스미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부론>의 후반부에서는 분업의 폐해를 상세하게 다룬다. 분업은 지적·사회적·신체적 미덕을 파괴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 특히 청소년과 일반인의 교육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단순한 업무에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무기력에 빠지고 창의성을 잃게 되어 국방과 같은 의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보통사람들에 대한 교육은 높은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보다, 국가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스미스 사상에 담긴 메시지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인간 행동의 기본 동기로 자기 이익추구를 강조했지만, 상업적 거래가 지속되기 위한 제도와 저변의 신뢰도 함께 다루었다. 상업적 거래의 출발점은 자기 이익추구지만, 건전한 거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사이의 거래가 지속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인간의 상호관계와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발전으로 스미스는 파악한다.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맞이해 해외 학계에서는 토론회와 논문집 발간 등 기념사업이 활발하다. 학계의 움직임에서 고무적인 것은 스미스의 사상을 ‘개인의 이익추구’와 ‘공감에 기반을 둔 정의로운 사회’라는 두 관점에서 함께 균형 있게 바라보고자 한다는 점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스미스 사상의 온전한 메시지가 세상에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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