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말고 제가 먹고 싶은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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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 생활로 돌아왔지만 가장 맛있는 게 고기는 아니었다. 임신 기간의 ‘인생 음식’은 타이완 여행에서 만난 죽순절임이다. 흰죽에 곁들여 먹었는데, 새콤 짭조름한 맛이 입에 꼭 맞아 사흘을 내리 먹었다. / 최미랑 기자

잡식 생활로 돌아왔지만 가장 맛있는 게 고기는 아니었다. 임신 기간의 ‘인생 음식’은 타이완 여행에서 만난 죽순절임이다. 흰죽에 곁들여 먹었는데, 새콤 짭조름한 맛이 입에 꼭 맞아 사흘을 내리 먹었다. / 최미랑 기자

임신한 후에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크게 두 가지였다. “아기가 먹고 싶나봐!”, “분명 아들일 거야.”

육류를 먹지 않는 식단을 3년간, 우유와 달걀까지 안 먹는 식단을 2년간 유지해왔는데, 임신 후에 순대 같은 것이 종종 생각나더니, 3개월쯤 지나자 공부용 인체 골격모형을 보다가 닭 힘줄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지경이 됐다. 한시적으로 채식을 중단하는 게 옳겠다고 판단하고 뺐던 것들을 다시 식단에 포함했다.

나는 왜 고기가 먹고 싶어졌을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본다. 첫째, 영양 결핍이 생겨서?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동물성 식품에만 존재하는 영양소를 몇 년의 채식으로 놓쳤다고 생각하기엔 생선, 전복, 새우, 게, 굴 같은 것을 너무 자주 먹었다. 둘째, 미각에 변화가 생겨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략 임신 8주 이후 어떤 음식도 알던 맛이 나지 않았다. 복합적 풍미를 지닌 것일수록 난해한 맛이 났고, 좋아하던 음식일수록 실망감이 컸다. 살코기와 지방은 맛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어서 ‘원래 알던 맛’과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셋째, 쾌락에 대한 욕망이 임신을 핑계로 터져나왔다? 솔직히 맞는 것 같다. 시종 속이 울렁거리고 뭘 먹어도 맛이 없으니 ‘과거의 음식들’이 그리웠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달걀 피자, 포장박스 포일을 뜯어 다리를 감싸 쥐고 먹던 양념통닭…. 그런 것들을 지금 먹어보면 무슨 맛이 날지 궁금했다. 솔직히 결별하기 아쉬웠던 것들을 이참에 누려보자고 작심한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내가 음식을 영양 보충을 넘어선 쾌락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맛있는 것, 입에 맞는 것을 먹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아기가 먹고 싶은 것’이라는 말은 나의 욕망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렸다. 모체의 사정은 태아의 욕구에 기대야 이해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일 것”이라는 말은 더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내가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아이는 ‘고기를 좋아하는 남성’이 되는가? 태어난 아이가 고기를 잘 먹으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할 참인가?

임신부에 대한 편견도 무섭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미리 재단하는 건 더욱 무서운 일이다. 비 윌슨의 <식습관의 인문학>을 보면, 아이들의 식습관 형성과 관련해 최악 처방은 ‘원래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한 번 좋아한 것만 계속 주는 일이다. 아이가 뭔가를 밀어냈다면 그걸 싫어하게 타고난 게 아니라 독이 들었는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몇 번 거부했을 뿐이다. 자꾸 주다 보면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계속 기회를 주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욕망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알량한 마음으로 음식에 대해 생각하다가 중요한 걸 깨달은 듯하다. 사람은 평생 변한다. 입맛도 그렇다. 어른도 가능성의 존재인데, 막 삶을 시작하려는 아이는 얼마나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겠는가. 아이를 재단하지 말 것. 부모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했다고 아이도 그러리라고 넘겨짚지 않을 것. 임신한 여성에게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먹는 거야”라고 말하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를 하나 발견한 것 같다.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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