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움직인 일본, 조직적으로 허용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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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빈손’ 시찰단…오염수 방류 ‘카운트다운’ 돌입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6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확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6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확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 수순에 접어들었다. 일본 후쿠시마TV는 6월 5일 “방류를 위한 해저터널에 바닷물 주입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원전 오염수를 정화장치(ALPS)로 한번 거른 뒤 해저터널을 통해 본토에서 1㎞ 떨어진 지점에서 방류를 시작한다는 게 일본의 계획이다. 일본은 2021년에 “2023년부터 방류하겠다”고 선언했고, 올해 1월에는 “(늦어도) 여름쯤부터 방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 중이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3~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협약·의정서(폐기물 해양투기 금지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했다. 조 장관은 당시 “오염수 방류로 인한 해양환경 및 생태계, 주변국 국민의 건강과 안전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런던협약·의정서 체계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한 처리방안과 이를 위한 정보교환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개월 뒤인 지난 6월 7일 조 장관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개최한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확대회의’에 참석해 “ALPS를 거친 오염수가 연간 최대량까지 방류돼도 우리 해역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려의 대상이 ‘일본’에서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는 ‘국내 여론’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더 이상 오염수 방류에 이의를 제기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지난 8개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부 입장이 이렇게 180도 달라졌을까.

윤 대통령 방일 후 여당 “오염수 안전” 설파

올해 봄까지만 해도, 더 정확하게는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여당은 오염수 문제를 본체만체했다. 올 1월 국회 토론회에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소속 미국 과학자들이 오염수 데이터 등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태평양 도서국과 협력해 방류 문제에 함께 대응하자”고 제안했을 때도, 언론 등에서 방류에 대한 입장 등을 물어도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여당은 지난해 해수부 국정감사에서 오염수 대응에 소극적인 정부 태도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원전이 터진 게 11년 됐는데 6개월 남겨놓고 윤 정부에게 다 해결하라고 하면 안 맞지 않나?”(홍문표 의원)며 전 정부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윤 대통령이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굴욕 외교’ 논란이 불거지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일본 언론을 통해 윤 대통령이 일본 정치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 질의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윤 대통령이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는 현지 보도가 이어졌다. 대통령실이 해당 발언 사실을 부인했지만,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나오면서 논란은 계속됐다.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이 5월 29일 서울 광화문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반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제공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이 5월 29일 서울 광화문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반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제공

이를 계기로 야권과 시민단체, 언론 등을 통해 오염수 방류 우려와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그러자 여당은 4월 13일 돌연 ‘긴급좌담회’를 열고 대응에 나섰다. 좌담회 제목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관련 긴급좌담회’였다. ‘처리수’란 용어는 ‘오염수’ 대신 일본 정부가 쓰는 표현이다. 좌담회에선 오염수 방류 우려와 문제 제기를 “괴담” 내지는 “정치선전”으로 폄하하는 내용이 주로 오갔다.

오염수 방류 관련 문제 제기나 의혹에 대한 책임소재는 일본 정부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여당인 국민의힘이 굳이 ‘처리수’란 용어를 내걸고 문제 제기 등에 적극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단체 등에선 “국민의힘은 일본 여당인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여당의 후쿠시마 대응 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지난 5월 11일 한 방송에 출연해 오염수를 아예 “오염처리수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부는 “처리수로 용어 변경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기시다 방한 뒤 정부도 “안전 우려 없어”

여당이 ‘총대’를 메고 퍼뜨리기 시작한 ‘오염수 안전론’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5월 7~8일 방한 후 정부 방침으로 사실상 굳어졌다.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고, 5월 21~26일 ‘비밀리에’ 시찰단이 일본을 다녀왔다. 시찰단의 명단도, 도착·출국 일정도 비밀에 부쳐지면서 “스텔스 시찰단이냐”(민주당)라는 반발을 샀다. 일본을 다녀온 시찰단은 “아직 분석할 게 남았다”며 결론을 뒤로 미뤘다. 백도명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삼중수소는 물과 결합하면 걸러내기가 어렵고, 유전·생식적 독성이 있어서 인체 내 유입 시 유전적 질병이 생길 수 있다”며 “시찰단에서 일본 정부의 환경영향평가와 생물학적 농축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잠잠하던 공공기관도 움직였다. 기시다 총리 방한 1주일 뒤인 5월 15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원자력학회는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앨리슨 교수는 “오염수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 오염수 1ℓ도 당장 마실 수 있다”고 말해 파문을 낳았다. 원자력연구원의 경우 올 2월 오염수 방류 시뮬레이션 결과 공개 당시 학회를 통해 발표할 정도로 여론의 ‘눈치’를 봤던 기관이다.

여당과 공공기관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오염수 안전론이 설파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면 “괴담”의 낙인을 찍는다. 정작 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다. “오염수가 안전하고 무해하면 일본은 왜 국내에 방류하거나 농업·공업용수로 사용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한 태평양도서국포럼, 중국 정부 등과 대비된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윤 정부가 방류 후 여론 악화 대비, 대일 관계 회복 등을 위해 오염수 안전론을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이라도 런던협약 이행 촉구,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등 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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