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학숙만 쏙 뺀 광주시의 규칙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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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소송 비용 포기 가능하다면서도 적용 안 해 논란

지난 2월 16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남도학숙 동작관 입구 / 정희완 기자

지난 2월 16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남도학숙 동작관 입구 / 정희완 기자

남도학숙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A씨는 아직 일상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복직도 불가능해 병가 중이다.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관련 질병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사건 발생 이후 2022년 8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지만, 소송비용 문제가 좀처럼 정리되지 않고 있다. 남도학숙은 광주 및 전라남도 출신 학생들이 이용하는 재경 기숙시설로 광주시와 전남도가 공동 운영한다.

광주시가 지난 4월 소송사무처리 규칙을 개정·시행하면서 소송비용을 둘러싼 논란이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가 일었다. 개정 규칙에는 “공익소송 등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적정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소송비용의 회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새로 추가됐다. 이 규정은 그러나 정작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 규칙이 개정되기 이전에 확정판결이 난 사건은 적용에서 배제한다는 취지의 단서를 부칙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에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반발하고 있다. 공익소송 등의 소송비용 회수 포기 조항을 내부규정에 마련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이 같은 단서를 둔 곳은 광주시가 유일하다. 또 광주시는 지난해 다른 소송비용 예외 조항을 신설할 때는 이런 내용의 부칙을 넣지 않았다.

광주시와 전남도 등은 법원에서 소송비용 액수가 확정되면 별도의 협의체(소송위원회)를 꾸려 이번 피해 사건이 소송비용 회수의 예외에 해당하는지를 검토 후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협의체가 외려 내부규정 등 법적 근거가 없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은 제외

A씨는 2014년 남도학숙에 입사한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상사로부터 여러 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피해를 인정했고, 남도학숙도 가해자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후 A씨는 가해자와 남도학숙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심 재판부는 가해자와 남도학숙의 책임 일부를 인정해 300만원을 A씨에게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2022년 8월 판결을 확정했다.

얼마 뒤 남도학숙 측은 법원에 A씨로부터 소송비용 380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 액수를 확정해 달라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A씨와 시민사회단체 240여 곳은 이번 사건은 공익소송이기 때문에 소송비용 확정 신청을 철회할 것을 광주시·전남도·남도학숙 측에 지속해서 촉구했다. 남도학숙을 운영하는 광주시와 전남도는 그러나 소송비용 확정 신청은 법에 따른 것으로 내부규정에는 이를 철회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신 “소송비용이 확정된다고 무조건 비용을 받겠다는 게 아니라 향후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감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남도학숙 소송비용 문제와 관련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질의에 “공익소송의 경우 억울함이 없도록, 그리고 조례를 충분히 활용해 가능한지 분명히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용 의원은 당시 “광주시가 소송사무처리 규칙을 개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송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광주시는 올해 4월 소송사무처리 규칙을 개정했다. 소송비용의 추심을 포기할 수 있는 요건에 ‘공익소송 등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적정하지 않다고 인정돼 소송심의회의 심의·의결을 받아 시정의 승인을 얻은 경우’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A씨는 지난 5월 18일 광주시와 전남도, 남도학숙 등에 진정을 제기했다. 규칙이 개정돼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소송심의회의를 개최해 A씨의 소송비용 추심을 포기할 수 있도록 심의·의결해 달라는 것이다. 광주여성민우회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의견서 및 요청서를 광주시 등에 제출했다.

A씨 측은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교폭력 사건 소송에서 패소한 유족으로부터 소송비용 1300만원을 회수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례도 고려해 달라고 했다. 유족을 대리한 권경애 변호사가 항소심 재판에 잇따라 불출석해 패소하면서 논란이 된 바로 그 사건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소송심의회의를 개최해 미회수를 의결했고, 법원에 제출한 소송비용 신청 자체를 취하했다.

하지만 광주시와 전남도는 지난 5월 말쯤 “개정된 소송사무처리 규칙에 근거한 소송비용 확정 신청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은 개정 규칙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규칙을 개정하면서 함께 포함한 부칙 조항 때문이다. 공익소송 등의 조항은 “이 규칙 시행 이후 판결이 확정되는 소송사건부터 적용한다”는 게 부칙 내용이다.

“광주시 부칙은 꼼수”

이 부칙 때문에 소송비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현재 광주시처럼 공익소송 등의 조항을 규칙·훈령·예규 등 내부규정에 담은 지자체는 41곳이다. 지자체들의 이런 조항 신설은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권익위는 2021년 10월 ‘공공기관 소송비용 업무처리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익소송 등은 소송비용 회수의 예외로 하는 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권익위는 예외 사유 조항의 예시로 ‘공익소송 등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적정하지 않다고 인정해 기관장(결재권자)의 승인을 얻은 경우’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 등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공공기관이 이런 예시와 같은 조항을 신설하는 등 내부규정을 정비 중이다.

지난해 9월 8일 남도학숙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 관련 사과문 / 남도학숙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9월 8일 남도학숙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 관련 사과문 / 남도학숙 홈페이지 갈무리

그런데 41개의 지자체 중 광주시를 제외한 39곳은 광주시처럼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적용에서 제외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명시적으로 부칙에 넣은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1곳도 ‘지침은 시행일 이후에 판결이 확정된 소송사건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뒀지만,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소송비용 확정 절차가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은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광주시가 2022년 4월 ‘경제적 자력이 없는 경우’ 등 소송비용 추심 포기 요건을 규칙에 처음 마련했을 때는 현재와 같은 부칙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부칙 조항이 석연찮다는 비판이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광주시가 소송비용 회수 철회를 어떻게든 이행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지속한 결과”라며 “앞에서는 사과하고 뒤에서는 끝까지 소송비용을 받아내려는 광주시의 태도는 명백한 2차 가해”라고 밝혔다.

용 의원은 광주시에 이 문제와 관련한 질의서도 보냈다. 광주시는 지난 6월 5일 답변에서 “부칙에서 소송비용 추심 포기에 관한 적용례를 규정한 이유는 법의 일반 원칙상 소급효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통상적으로 규정한 것일 뿐”이라며 “남도학숙 성희롱 피해 사건의 적용을 배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광주시와 상반되는 부칙을 포함한 지자체도 있다. 청주시는 2022년 4월 제정·시행한 ‘소송비용회수업무 처리 규칙’에 “이 규칙 시행일 당시 소송비용 회수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에도 적용한다”는 부칙을 실었다.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처럼 개정 규칙 시행 이전에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소송비용을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명확히 한 것이다. 시·도 교육청의 규칙에도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 제주도의 ‘교육·학예에 관한 소송사무처리 규칙’은 부칙에 “개정 규정은 이 규칙 시행 전의 진행 중인 소송비용 회수에 대한 경우에도 적용한다”고 규정했다.

광주시는 또 법원에서 소송비용 액수가 확정되면 “소송비용 회수 예외 사유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광주·전남도·남도학숙·여성민우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소송위원회) 회의를 개최해 남도장학회 공동이사장이 최종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동이사장은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다.

광주시가 언급한 협의체를 두고도 법적 근거가 불명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광주시의 소송사무처리 규칙이 존재하고 이 규칙에 따라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은 소송비용 미회수에서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법령에 근거해 별도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광주시와 전남도는 앞서 언급한 권익위의 권고를 근거로 든다. 권익위 권고 중에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의결”하라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소송비용의 미회수 여부를 심의할 위원회를 구성·운영할 경우 이 근거를 “기관별 내부규정(소송관련지침·사규 등)에 반영”하라는 게 정확한 취지라는 지적이 있다. 광주시의 주장처럼 규정에 없는 위원회를 운영하라는 취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그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소송비용 신청을 철회하면 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징계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혀왔다. A씨의 대리인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외려 별도의 협의체 구성이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감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라며 “권익위의 권고 취지에 맞게 규칙을 재정비해 A씨에 대한 소송비용 회수를 철회할 명백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다시 항고

법원은 지난 5월 31일 A씨가 부담할 소송비용 액수를 확정했다. 남도학숙 등은 총 380만원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138만원만 인정했다. A씨 측은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녹취록 작성 등 각종 비용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지난 6월 5일 항고했다.

A씨는 “광주시가 말하는 협의체에서 제 사건이 소송비용 회수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 나면 저는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전혀 없다”라며 “광주시 등 남도학숙이 앞서 소송비용 추심 철회를 위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신뢰감과 확신을 줬다면 항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남도학숙이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인 2022년 9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면서도 법원에 소송비용 확정을 신청한 사례를 언급했다. 남도학숙은 당시 “그간 피해를 입은 여직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며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전 직원 인권교육 및 성희롱 예방교육 등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남도학숙은 A씨의 성희롱 피해 사건 발생 이후인 2019~2021년에 성희롱 피해 예방 등 직장 내 법정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인원이 119명(중복 포함)인 것으로 전남도의 감사 결과 드러났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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