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코팅된 책 대신 에코 퍼블리싱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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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재생종이·친환경 잉크 등 고민

해외선 재생에너지·FSC 종이 사용 앞장

서울 광화문의 한 서점 판매대에 책이 진열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서울 광화문의 한 서점 판매대에 책이 진열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지난 6월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 ‘경제일반’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 판매대에 65종의 책이 올려져 있다. 그중 거의 절반인 32종의 책에 띠지가 둘러 있다. 표지 뒤로 면지(책의 맨 앞·뒤에 들어가는 백색 혹은 색지 용지)에 저자소개와 독자평 등이 인쇄된 4종의 책을 빼곤 모두 백지 상태의 면지가 최소 1장 이상 들어갔다. 면지에 굳이 책 표지가 그대로 인쇄된 책도 있었다. 책의 본문 중간에 장별로 구분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간지도 여럿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코팅이 되지 않은 책은 없었다. 인문 신간 판매대에 올라온 책도 사정은 비슷했다. 만화나 잡지의 경우 비닐로 포장된 경우도 많았다.

띠지로 홍보 효과를 높일 순 있지만, 사실 구입 후엔 대부분 거추장스러워 버리게 된다. 면지와 간지도 관행에 가까울 뿐 딱히 책의 품질에 영향을 준다고 보긴 어렵다. 불필요한 종이 사용만 줄여도 상당한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종이의 원료인 나무를 얻기 위해 숲을 벌목하면 생물 서식지를 파괴해 생물 다양성이 감소한다. 탄소흡수원인 숲이 파괴되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그만큼 더 높아진다.

2017년 기준 국내 종이소비량은 991만t으로 이 양을 생산하는 데 약 2억4000만 그루의 나무가 필요하다. 종이 1t을 기준으로 나무 24그루, 에너지 9671kWh, 물 8만6503ℓ를 사용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541㎏이다. 국내 종이 소비에서 2775만7642t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인류는 기후위기가 인간의 통제 가능성을 넘어 커지지 않도록 산업혁명 이후 지구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산과 소비를 비롯해 일상의 모든 활동에서 기후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글꼴만 잘 써도 잉크 35% 절약

숲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출판산업도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친환경 출판을 뜻하는 ‘에코 퍼블리싱’을 고민 중이다. 에코 퍼블리싱은 출판의 모든 단계에서 친환경성을 추구하는 출판을 뜻한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 생산부터, 인쇄, 유통, 소비, 폐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환경부담을 낮추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관건은 역시 종이다. 2012년 4월 ‘산업생태저널(Journal of Industrial Ecology)’에 발표된 ‘종이책의 탄소발자국(생산에서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뜻함) 평가’ 논문에 따르면 책 1권당 2.71㎏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북미에서 생산된 종이를 캐나다에서 인쇄한 경우를 가정한 수치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펄프 생산(54%)과 종이 제작(32%)에서 대부분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인쇄소까지 운송(3%), 인쇄 과정(8%), 유통·공급(2%)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다.

친환경 종이로 산림관리협회(FSC·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위한 인증으로 난개발, 불법개발, 불법 벌목으로 만든 종이는 인증 불가) 인증을 받은 종이도 좋지만 FSC 인증을 받은 종이를 만들 때도 산림은 파괴되기 때문에 재생종이 사용이 더 바람직하다. 1인 출판사인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는 지난 6월 8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로 열린 ‘탄소제로와 종이책의 미래’ 포럼에서 “종이 원료로 사용하기 좋은 단일 수종의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조림 사업으로 ‘가꿔진 숲’은 생명의 다양성을 가진 진짜 숲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원주민과의 갈등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생용지(고지율 40% 기준)의 경우 1t 생산 시 천연펄프로 만들 때에 비해 나무(14그루)는 40%, 온실가스는 2166㎏으로 15% 감소한다.

재생용지 확보나 수용성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재생종이는 보통 재생펄프를 40% 이상 사용한 용지를 말한다. 고지(폐지)율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표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해외와 달리 100% 고지율의 재생종이는 물론, 고지율 40% 이상인 종이를 찾기도 어려워 주로 20% 이상의 ‘우수재활용(GR)’ 종이를 사용한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환경생태작가 최원형씨는 “출판사가 생각보다 재생종이를 당연한 선택지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 “구할 수 있는 종이가 한정적이라는 등의 문제가 있다면 여러 출판사가 원하는 수요를 세워 함께 주문하고, 진흥원이 출판사와 제지사의 중간에서 플랫폼의 역할을 하면서 재생종이 출판에 활력을 넣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미리 종이책을 찍지 않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레이저 프린터 등으로 종이책을 인쇄하는 주문형 출판(POD)을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서점을 찾은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서점을 찾은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띠지나 이중 커버를 하지 않고, 재활용을 막으며 오염 물질도 배출하는 코팅은 피하는 게 좋다.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든 굿즈를 주지 않고 배송 시 플라스틱 백과 비닐 충전재 등을 사용하지 않는 행위도 에코 퍼블리싱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재생용지에 대한 사회적 포용성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김보은 대표는 “적합한 인쇄 방법의 결정에 따라 버려지거나 사용하는 종이의 양을 줄일 수 있다. 책을 폐기할 때 종이의 순환을 방해하는 후가공의 필요 여부도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면서 “책의 유통 과정에서 코팅이 되지 않아 표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종이 물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포용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글꼴을 쓰느냐도 중요하다. 나눔글꼴에코를 쓰면 잉크를 최대 35%까지 줄일 수 있다. 네이버가 무료 배포한 글꼴인 나눔글꼴에 작은 구멍을 뚫어 잉크를 절약할 수 있도록 만든 글꼴이다. 출력할 때 구멍 안으로 잉크가 번져 빈 곳이 채워지는 방식이다. 1만 장의 문서를 일반 글꼴로 출력할 때 사용되는 양의 잉크로 약 3500장을 더 출력할 수 있다.

“독서는 궁극의 친환경 활동”

재생종이의 경우 인쇄물을 없애는 과정에서 잉크에 있는 기름성분뿐 아니라 알루미늄, 구리, 납,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슬러지로 배출되는 문제가 있다. 특히 잉크 성분 중에서 점도를 조절하는 ‘용제’가 환경에 문제가 된다. 대기와 물을 오염시키고,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키는 VOC(휘발성 유기 화합물)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콩기름 잉크 같은 친환경 잉크를 쓴다. 콩기름 함량이 20% 이상인 잉크를 말한다. 기화되지 않고 그대로 굳는 성질이 있어 해독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는 “생분해 효과도 탁월하고, 재생지를 만들기 위해 종이에 묻은 잉크를 지워내는 ‘탈묵’ 과정이 기존 잉크보다 훨씬 용이하다고 평가된다. 일반 잉크와 가격도 비슷해 경제적이다. 다만 여전히 소량의 VOC를 포함하고 있어서 아예 이를 뺀 ‘무용제 잉크’를 사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에코 퍼블리싱 논의는 이제 시작단계지만 해외 출판계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 단행본 시장의 절반 가까이 점하는 펭귄랜덤하우스의 모회사인 베텔스만은 지난해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등으로 2030년까지 기후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영미권 출판 점유율 2위인 하퍼콜린스는 지난해 발표한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영국 공급망의 탄소배출량 저감을 위해 기차로 도서를 운송하고 사무실과 유통센터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영미 단행본 시장의 빅5에 속하는 아셰트의 경우 올해 1월 FSC 인증 용지 100% 사용 등으로 2030년까지 회사 탄소배출량의 30%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화두도 에코 퍼블리싱이었다.

현지인쇄, 100% 재활용 및 FSC 인증 용지 사용, 친환경 잉크 사용, 재생에너지 사용 등 에코 퍼블리싱을 위한 12가지 기준도 확립됐다. 여기서 전자장치를 활용한 독서도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된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친환경성 비교는 전자책이 나온 이후 줄곧 이어지고 있다. 다만 태블릿PC, 킨들, 스마트폰 등 전자책을 읽는 전자기기를 어디까지로 보느냐, 사용 연한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배출량 차이가 커 확답을 내리긴 어렵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대략 22권에서 36권 이상의 전자책을 읽으면 전자책의 탄소배출량이 더 적어진다고 나온다.

그렇다고 책을 보면서 환경을 훼손하지나 않을까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국내 신간 발행 부수는 720만 부인데, 1권당 2.71㎏의 온실가스가 나온다고 해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1만9512t이다. 2020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약 6억5620만t의 0.00002%에 불과하다. 독서 자체가 ‘에코 프랜들리’하다는 의견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거의 모든 것의 탄소발자국>(2011년·도요새)의 저자인 마이크 버너스 리 영국 랭커스터대 교수는 “온라인이나 종이 형식으로 읽는 것 모두 세상과 기후위기, 그리고 우리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쇼핑이나 운전이 어렵기 때문에 독서 자체가 저탄소 활동이다”라고 말한다. 이날 포럼에서 해외 출판사의 동향과 함께 이 발언을 소개한 김준수 클라우드나인 해외기획실장은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이 종이책 기준 2019년 52.1%에서 2021년 40.7%까지 떨어졌다. 올해 통계치로는 아마 40% 밑으로 내려갈 것이다. 독서를 진흥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로 친환경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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