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꿀벌의 멸종위기…유전학이 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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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 / 최유진 PD

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 / 최유진 PD

꿀벌은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모기와 초파리도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꿀벌과 같은 곤충이지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곤충보다 꿀벌의 존재에 감사한다. 꿀벌은 꽃가루를 수분시켜 식물의 번식을 돕는 곤충이다. 그리고 꿀벌처럼 식물의 수분을 돕는 곤충과 동물은 많다. 그중에는 파리와 모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꿀벌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꿀벌이 꿀을 생산해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이며 편향적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 감정을 느낄 방법이-현재로서는-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꿀벌은 인간이 기르는 식물의 3분의 1을 수분(受粉)시킨다. 인간이 먹는 과일, 채소, 곡물 대부분은 재생산 과정에서 꿀벌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꿀벌이 수분시키는 식물의 가치는 연간 175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꿀벌은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꿀벌이 꽃가루를 옮기면서 토양에 질소와 인산염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꿀벌은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꿀벌이 꽃가루를 옮기면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산소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벌집군집붕괴현상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은 꿀벌의 여왕벌과 일벌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2006년 10월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미국 꿀벌의 25~40%가 감소했다고 알려졌고, 이후 캐나다, 독일, 스페인, 브라질, 대만을 넘어 이제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 됐다. CCD가 처음 발생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꿀벌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CCD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전문가들에 의해 합의된 결론은 CCD의 원인이 다층적이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 농약 사용, 서식지 파괴, 꿀벌 기생충과 바이러스 감염, 꿀벌에 대체식량으로 공급하는 고과당 시럽 등의 환경적 요인 외에도, 여왕벌의 유전적 병목현상(genetic bottle neck)과 같은 유전적 요인이 전 세계에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CCD의 원인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왕벌의 유전적 병목현상은 여왕벌의 유전자풀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동물과 식물을 가축화해왔다. 가축화는 인간이 원하는 특성을 가진 동물과 식물을 선택적으로 번식시키는 과정이다. 꿀벌은 누에와 함께 인간에 의해 가축화된 대표적인 곤충 중 하나다. 가축화 과정은 유전적 병목현상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인간은 젖이 많이 나오는 소, 고기가 많이 나는 돼지, 알을 많이 낳는 닭을 선택적으로 번식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소, 돼지, 닭의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매년 가축의 전염병 뉴스가 일상이 된 것도, 유전적 병목현상 때문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 가축은 질병에 더 취약해지고, 질병이 발생할 경우 전파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유전적 다양성의 저하로 동물과 식물의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변화에 가축이 취약해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유전적 병목현상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개체를 번식시키고, 개체의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그런 해법이 비현실적이라는 데 있다. 인간이 3분의 2의 작물을 섭취하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꿀벌 생태학과 암 생물학

CCD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꿀벌 연구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전의 꿀벌 연구는 양봉에 필요한 수준의 수의학적 연구와 일부 동물생태학자들의 기초생물학 연구뿐이었다. 1974년 칼 폰 프리슈가 꿀벌의 행동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이후로, 꿀벌 연구는 단 한 번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지 못했다. 20세기 중반 분자생물학이 생물학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이후, 현대생물학을 장악한 키워드는 ‘질병’, 그중에서도 ‘암’이었다.

2021년 한국에서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8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사망자의 약 26%다. 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전체 사망자의 약 17%가 암으로 죽는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선진국일수록 암환자 숫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암은 인간이 유전자에 쓰인 것보다 더 오래 살면서 생기는 진화적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첨단과학 연구가 선진국에서만 가능하고, 과학 연구비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암 연구에 큰돈이 투입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꿀벌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꿀을 먹지 못한다고 당장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탕을 먹으면 된다. 그러나 인류가 기르는 작물의 3분의 1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당장 인류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아와 영양실조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식품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경제적 불안정이 야기될 것이며, 식량 부족으로 사회 불안정과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할 것이다. 나아가 식량을 둘러싼 국가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꿀벌의 존재가 인류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암 사망률처럼 숫자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 꿀벌은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곤충이었고, 아무도 그 부존재를 상상하지 않았으며, 암이나 치매 혹은 당뇨병처럼 우리 옆에서 당장 벌어지는 인간의 죽음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꿀벌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생물학 연구비의 30%를 기꺼이 암 생물학 연구에 사용한다. 대부분의 거대 제약사들은 암 치료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대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종이다.

꿀벌 유전학의 미래

생물학 연구비 중 꿀벌 연구에 사용되는 연구비 비율은 매우 낮다. 미국의 경우, 2020년 꿀벌 연구에 사용된 연구비가 약 1억달러로, 전체 연구비의 약 0.001%에 해당한다.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꿀벌의 멸종을 걱정하는 일은 정치인의 인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파리는 인간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곤충이지만, 100년 전 우연히 유전학자 모건의 선택을 받아 엄청난 유전학적 도구의 보고가 됐다. 꿀벌의 대량 멸종을 막으려면, 꿀벌 또한 유전학적 도구를 갖춘 모델 생물로 재탄생해야만 한다. 꿀벌의 유전학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한국에서만 꿀벌 78억 마리가 실종됐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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