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압제에 항거하는 시민을 ‘감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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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연극 <키스>

뮤지컬 <광주> /광주문화재단, 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뮤지컬 <광주> /광주문화재단, 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유쾌하게 휘발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묵직하게 심장을 내리누르는 작품이 있다. 뮤지컬 <광주>와 연극 <키스>가 그랬다. 둘 다 최근 막을 내렸지만, 지금까지도 공연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한 창작뮤지컬 <광주>는 1980년 당시의 시민불복종 사진들을 무대 위에 영사하며 시작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작품은 43년 전 광주에 머물지 않는다. 30명의 출연진이 오가며 펼치는 무대 위 광장의 풍경이 세상살이에 투덜대며 정치·사회 문제를 토론하는 현재의 우리와 닮았다.

이 작품은 실증적이고 연대기적인 역사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인 역사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몽타주적(서로 다른 장면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인 민중의 사연을 수렴해 관객들 각자의 ‘광주’를 감각하도록 연출했다. 마지막 응전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시민군이 각자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에선 도청 창문이 흡사 영정처럼 보였다. 남도 특유의 해학과 풍류, 한(恨)은 소년 시민군의 살풀이 제례와 시민군 사망 후 이어지는 가족들의 한 맺힌 춤사위로 승화했다.

연극 <키스>는 2010년 시작돼 여전히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을 다루고 있다. 장소가 2014년의 다마스쿠스라는 점만 빼면 평범한 중산층의 친목모임을 보는 듯하다. 엇갈린 사랑에 울고 웃으며 기침을 하다 죽는 여주인공을 비롯한 4명의 남녀 배우가 급하게 1막을 마무리하고 무대를 떠나자 관객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한다. 2막은 실제 연출자가 나온다. 그는 행방불명된 원작자가 지금 연결됐다며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고 말한다. 작가의 화상전화가 연결되자 다시 무대에 나온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을 묻는다. 극중에서 톱스타 바나 역을 맡은 배우가 ‘키스’의 의미를 질문하자 단순한 키스가 아닌 성고문을 의미한다는 작가의 고통스러운 답변이 이어진다. 이 작품 전체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또 다른 여주인공이 극중에서 계속 기침한 것은 화학무기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연극 <키스>는 칠레 기예르모 칼데론(Guillermo Calderon) 원작으로, 2014년 독일 초연 이후 서구권에서 두루 상연된 화제작이다. 아시아에서는 이번 한국 공연이 초연이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상호작용성 연극으로 알려진 우종희 연출에 의해 재탄생했다. 원작에서는 바나 역 배우가 연출자로 등장하지만,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실제 연출자가 무대 위에 올라가 극중 작가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미술사학자이자 철학가인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과거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현재 우리의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라고 했다. 압제에 대한 시민불복종을 미학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들은 과거를 재인식하고 감각해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행위’하게 이끈다. 폭력의 악순환에 ‘불복종’하겠다는 의지와 실천이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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