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속 집회 신고 ‘사실상 허가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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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주변 100m 노조 시위 위주 봉쇄

대통령실 주변은 제12조 시행령에 추가 시도

지난 5월 10일 공권력감시대응팀 소속 활동가가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를 개최하면서 경찰을 향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문구를 쓰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5월 10일 공권력감시대응팀 소속 활동가가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를 개최하면서 경찰을 향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문구를 쓰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헌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집회의 ‘사전신고제’를 운영하는 것은 집회·시위가 평화롭고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협력의무로서의 신고”라고 정의했다. “신고는 행정관청이 집회의 순조로운 개최와 공공의 안전보호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신고제는 사전에 집회 내용을 판단해 걸러낸다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허가제로 운영된다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집회만 허용되고 만다.

그럼에도 집시법 제11조를 통해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등 주요 기관 주변 100m 이내에서 절대적 또는 원칙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이다. 교통혼잡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제한할 수 있는 집시법 제12조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경찰의 무한 금지통고로 사회적 비용 낭비

공권력감시대응팀이 정보공개를 통해 확보한 2022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약 1년간 서울지역의 집회금지 현황을 보면, 총 집회신고는 4만1846건이다. 이 가운데 경찰이 금지를 통고한 건 374건(0.89%)이다. 제한통고는 제외한 수치다.

국회의사당을 관할하는 영등포경찰서는 집회신고 총 3296건 중 15건을 금지했다. 금지사유는 모두 집시법 제11조다. 국회의사당 주변 100m 이내에선 원칙적으로 집회·시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다만 ‘국회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집회를 개최할 수 있게 한다.

금지된 집회는 모두 민주노총이나 전국금속노조가 주최하는 노동 관련 내용이었다. 민주노총은 집회인원을 300명으로, 금속노조는 국회 주변 몇 곳에 분산해서 100명 단위로 신고했다. 이호영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은 지난 4월 11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주관한 국회 집시법 토론회에서 “전국 단위 노동조합이 신고된 인원보다 많은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집회·시위가 대규모로 확산할지 여부는 누구도 알기 힘든 막연한 추정에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또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가 신고한 ‘한국와이퍼 고용안전보장 요구’ 내용의 집회도 금지했는데, 신고 인원은 50명에 불과했다. 이 회원은 “이 집회를 금지한 근거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라며 “이는 사실상 집회허용 여부가 관할 경찰서장의 편의재량 사항에 남아 있고 집시법 제11조가 허가제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집회신고→경찰의 금지통고→법원에 금지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법원 인용 결정.’

지난 1년 동안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두고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찰은 집시법 제11조에 근거해 대통령실 앞 집회에 금지통고를 하고 있다. 주변의 집회를 원천 금지한 ‘대통령 관저’에 ‘대통령 집무실’도 포함된다는 자의적 해석에 근거한다. 하지만 집회 주최 측이 법원에 제기한 금지통고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법원은 줄곧 집회를 허용했다. ‘관저=집무실’이라는 경찰의 논리를 배척한 것이다.

본안 소송에서도 경찰은 잇따라 패소했다.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의 금지통고는 부당하다는 취지의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은 올해 1~5월 4차례나 나왔다. 경찰은 그러나 항소하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집시법 제11조를 고리로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5월 10일 공권력감시대응팀 소속 활동가들이 대통령 집무실 앞에 신청한 집회가 불허되자 ‘집회의 자유’를 촉구하며 삼각지역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5월 10일 공권력감시대응팀 소속 활동가들이 대통령 집무실 앞에 신청한 집회가 불허되자 ‘집회의 자유’를 촉구하며 삼각지역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공권력감시대응팀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5월 1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집시법 제11조를 이유로 금지를 통고했다. 이에 대응팀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지 않은 채 대통령실 앞에서 “금지통고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집회 개최를 시도했다.

랑희 활동가는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으면 인용 결정을 받았을 테지만, 경찰의 금지통고는 위법한 공무집행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어서 법원 판단을 받지 않고 집회를 개최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건 불필요한 과정인데 이를 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라며 “소송비용과 시간 등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제지로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지는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집회를 금지한 조항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까지 내렸다. 법 개정 시한을 2024년 5월 31일까지로 제시했다.

경찰, 대통령실 앞 집회금지 사수?

집시법 제12조도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케 하는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서울지역에서 경찰이 집회금지를 통고한 가장 많은 근거가 바로 집시법 제12조다. 교통소통을 위해 필요하면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집시법 시행령에서 정하는 ‘주요 도로’에만 적용될 수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집시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 앞을 지나는 이태원로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올 2~4월 입법예고를 마치고 현재 법제처 심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청은 2014년 마지막으로 주요 도로가 개정된 이후 통행량, 도로 여건, 집회·시위 개최 현황 등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주요 도로를 현실에 맞게 재정비하는 차원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현재 주요 도로 88개 가운데 12개를 삭제하고 11개를 추가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러나 집시법 제11조를 통해 대통령실 앞 집회를 막을 수 없게 되자 시행령 개정이라는 우회로를 고안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참여연대는 “그렇지 않아도 경찰은 집시법 제12조의 집회 제한 규정을 남용해 이제껏 대통령 관저가 있던 청와대, 법원, 국회의사당 등 주요 기관 인근의 집회·시위를 금지 또는 제한했다”라며 개정안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집시법 제12조 제2항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조항은 집회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면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어 ‘다만 해당 도로와 주변도로에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으면 금지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는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서 규정은 오로지 ‘금지’만을 가능토록 규정함으로써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는 집회·시위는 금지할 수 없도록 한 본문 규정의 취지를 무력화한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지난 4월 해당 단서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08년 2월에 집시법 제12조 가운데 제한통고를 제외한 금지통고 부분은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집회·시위 자유의 중요성에 비춰 교통불편을 이유로 집회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과잉”이라고 밝혔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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