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손자 덕분에 용서라는 선택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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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쓴 정아은 작가

사진/강윤중 기자

사진/강윤중 기자

지난 5월 17일 광주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3주년 추모식에 검은 양복 차림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 헌화를 마친 그는 5·18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뒤 취재진 앞에 섰다. “말을 할 자격도 없지만, 제 가족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죄의 말과 함께 눈을 떨군 청년의 이름은 전우원.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이자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다. 5·18 이후 전씨 일가가 추모식에 참석한 건 처음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전씨는 2021년 90세의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끝내 진실규명과 사과를 거부한 채 눈을 감았다. 우원씨의 사과를 누군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하고, 어떤 이는 “대리사과”라고 비판한다. 전씨는 사망했지만, 여전히 그의 행적은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리고 여기 우원씨의 등장을 미리 짚어낸 사람이 있다. 최근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라는 책을 펴낸 정아은 작가다. 책은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부터 사망 시점까지 전씨 삶의 궤적을 추적한 전기르포다. 그가 어떻게 ‘악인’이 됐고, ‘악인’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책에서 정 작가는 우원씨를 가리켜 “한국사회라는 거대한 강에 들어온 새로운 미생물”이라고 표현했다. 우원씨의 등장이 5·18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진정 ‘단죄’하고, 화해와 용서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5월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에서 정 작가를 만났다.

-출간 시점을 보면 우원씨가 등장하기 전에 원고를 완성했을 듯한데요.

“맞아요(웃음). 이미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전달한 뒤에 생긴 일이죠.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넣지 않을 수 없어서 원고를 돌려받아 여러 차례 수정했어요. 본래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전두환님의 가족과 후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얘기를 상당 부분 빼고 우원씨 이야기로 채웠어요.”

-왜 호칭을 ‘전두환님’이라고 하나요.

“사실 책을 내고 난 뒤 막상 호칭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맞겠죠. 하지만 저와 연배가 많이 차이 나는 사람이고, 왜인지 전두환씨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전두환님’이라고 부를게요.”

고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지난 5월 17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헌화 뒤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지난 5월 17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헌화 뒤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책은 전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발탁된 다음 ‘12·12 군사반란’을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1부 ‘영광’, 전씨의 재임 중 치세와 사회상을 묘사한 2부 ‘모순’, 재임이 끝난 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백담사에 유폐되는 등의 말년을 추적한 3부 ‘몰락’, 전씨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후폭풍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4부 ‘악의 기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씨 일가와 그 후손의 이야기는 4부에서 나온다.

-4부에서 보면 전씨의 후손들이 결국은 가책을 느낄 것이라는 취지의 서술이 있습니다. 우원씨의 등장을 예상했던 것인지요.

“저도 원고를 넘긴 뒤 우원씨가 나온 것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전두환님이 끝내 사과를 거부하고 ‘악인’으로 죽은 탓에 가족들의 무의식 속에 그들의 부(富)의 ‘출처’를 놓고 정신적으로 괴로울 거다, 정말 많이 불행할 거다, 생각하고 쓴 내용인데 실제로 우원씨가 나타난 거죠. 예견까지 한 건 아니었지만, 작가로서 내가 그들의 심리를 제대로 읽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원씨의 행보를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물론 우원씨를 통한 ‘대리사과’가 의미가 없다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는 우리의 마음, 정신, 영혼 쪽에 영향을 준다고 봐요. 이전까지는 전두환님이 보여준 부당한 폭력, 부인, 안하무인 등에 대한 사회적 분노, 복수심이 주류였다면 우원씨가 사과를 하면서 우리 사회에도 ‘화해와 용서’의 여지가 생겼다고 봅니다. 이런 효과는 아직 남아 있는 당시의 신군부 세력,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거예요. 피해자 입장에서도 ‘용서’라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대상조차 없다는 것, 분노와 미움을 품고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래서 우원씨가 한 일이 굉장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은 전두환 시대의 공과(功過)를 집중 조명한 학술서가 아니다. 전기르포답게 전두환이 어떻게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어떻게 몰락해갔는지 여러 객관적인 사실과 정치·사회적 환경을 보여준 뒤 작가 나름대로 상황별 분석과 평가를 제시한다. 마치 1980년대 이후 근·현대 정치사의 통서를 읽는 기분이 든다. 정 작가는 2013년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해 10년째 소설과 에세이 등을 펴내며 활동 중인 중견 작가다. 국내 문단에선 작가가 한 정치인을 소재로 전기르포를 쓰는 일도 드문 편이다.

-어떻게 전씨를 주제로 책을 쓸 생각을 했나요.

“처음부터 전두환님만을 쓰자고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예전부터 대하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대하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구상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전두환-노태우’, ‘노무현-문재인’이라는 구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양쪽 모두 절친 사이이고, 친구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어요. 아마 세계적으로도 이런 일은 극히 드물 거예요. 반면 이들은 인물상이 정말 극과 극이기도 하죠. 그래서 대하소설을 쓰기 전에 연습삼아 ‘전-노’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준비를 하던 도중 전두환님 개인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책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주제로 삼게 됐습니다.”

-어떻게든 책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텐데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스러웠죠. ‘전두환’이라는 인물 자체가 저한테는 어릴 적부터 무섭기도 하고 ‘금기’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책에 대해 악플이 달리고 그러면 무섭거든요. 좌파 작가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웃음). 고민도 있었지만 어차피 모든 책은 작가의 주관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책도 제 주관인 거죠. 결국은 설득력을 갖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책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사도 많이 했고, 인터뷰도 많이 하고, 주석도 많이 달고, 최대한 논거를 대려고 노력했습니다. 최대한 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쓰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요.”

-작중 내내 전씨의 내면이나 심리에 대한 주관적 묘사가 자세하고 두드러집니다. 특히 전씨의 ‘가벼움’에 대한 서술이 눈에 띕니다.

“쓰면서 전두환님에게 이입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이 분이 사이코패스인가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너무 금방 답이 나왔어요.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잘해줬고, 가정도 대단히 아끼고, 눈물도 흘릴 줄 알고. 가까이 지낸 사람들 평으로도 친화력 있고 소탈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5·18 학살을 저지르고 삼청교육대를 만들었으며, 학원안정화법 제정을 시도하는 등 한편으론 다른 사람의 인신을 함부로 구속하고 죽일 수 있는 행동을 너무 쉽게 했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됐습니다. 결국은 전두환님이 자신의 잘못과 스스로 대면하는 부분에서 이를 인정하고 소통, 행동하는 과정이 결여됐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자아성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선 굉장히 아이같이 반응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가벼움’으로 표현한 겁니다.”

정아은 작가가 출간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표지는 전두환의 재임 당시 사진과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을 때 사진의 윤곽을 따서 디자인했다. / 사이드웨이

정아은 작가가 출간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표지는 전두환의 재임 당시 사진과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을 때 사진의 윤곽을 따서 디자인했다. / 사이드웨이

-전씨 이후 대통령 중에 그와 비슷한 성향의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지요.

“비슷한 성향은 정치인이나 기업가 중 많다고 생각해요. ‘닥치고 해’, ‘일단 해’ 이런 거요. 특히 한국남성에게 추동되고 권장되는 ‘미덕’처럼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카리스마 있지만, 자기성찰 능력은 굉장히 결여돼 있는 사람이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기성찰이 결여된 케이스는 흔치 않다고 봅니다.”

전씨는 퇴임 후 내란죄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2년만 복역한 뒤 사면돼 90세까지 부와 천수를 누렸다. 정 작가는 ‘악인’인 전씨를 왜 우리 사회가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분석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리고 그 미완된 단죄의 결과가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전씨를 왜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까.

“전두환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이 두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 모두 법과 시스템으로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대통령이 검찰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죠. 전두환님 재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이 12·12나 5·18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고 불기소 처분을 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 의지로 4개월 뒤 재판이 시작됐어요. 당시 자신(김영삼) 선거자금에 대한 국면회피용 성격이 굉장히 강했죠. 대통령 한 사람의 개인적 결정으로 전두환님이 감옥에 간 거예요. 그가 감옥에서 나올 때도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청원해서 나오는 방식이었어요.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내걸었던 게 용서, 영호남의 화합, 이런 명분인데 이것도 상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해요. 끝까지 공동체가 단죄를 내리는 게 맞았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놓고 생각한 나머지 단죄할 기회를 놓친 거예요.”

-그래서인지 전씨는 사후에도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갑론을박이 여전한 건 단죄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죠. 제대로 됐다면 당시 기득권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마땅한 자리’로 갔을 겁니다. 전두환님하고 엮여 있는 세력이 너무 많아요.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이 정말 많았죠. 사회 곳곳에서 결정권을 쥐고 부와 권력을 가졌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5·18을 놓고 ‘300명이 북한에서 내려왔다’는 식의 괴담과 비방이 퍼질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단죄를 해서 그들이 감옥에 갔다면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정아은 작가가 지난 5월 16일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5·18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히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정아은 작가가 지난 5월 16일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5·18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히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단죄를 해야 할까요.

“쉽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산추징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진 않겠죠. 단시간엔 힘들겠지만 그런 사례가 없진 않아요. 탄핵 사례도 있죠. 안타까운 건 단죄 자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일단 체념을 많이 한 것 같다는 겁니다. 이제 우원씨가 등장했으니 이를 시작점으로 삼아 끈기를 가지고 실행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계엄군이었던 분들이 양심 고백도 하고, 5·18 당시 광주에 전두환님이 왔다 간 사실도 증언으로 나왔습니다.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고 있어요. 단죄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뒤에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하는 작업은 가장 이른 시점에 단죄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깨어나게 하는 일이에요. 작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죠.”

정 작가가 ‘단죄’를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앞으로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작가의 표현대로 “그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가 한국사의 정확한 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의 행적을 우리 사회 발전의 불쏘시개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부분을 좀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지금 분위기가 되게 많은 것이 밑에서 끓고 있다고나 할까, 뭔가 변할 수 있는 시기라고 봐요. 주변에서 많은 분이 책을 통해 국가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며 반색했어요. 너무 익숙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물음이죠. 전두환님의 시기에는 냉전의 기운이 이어지고 있었고, 국가에 대한 국민의 귀속감이 더 컸습니다. 경제를 정부가 쥐고 흔들 수 있는 시대였죠. 지금은 행정부 수반이 다 쥐고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에요. 일부가 그리워하는 그런 시원시원하고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은 못 나온다는 거죠. 지금 해야 할 것은 소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근·현대사를 제대로 교육하는 일입니다. 선진국을 보면 역사에서 현대사 비중이 제일 높습니다. 우리는 비중이 작아요. 그렇다 보니 일각에선 과거 신군부 세력에 대한 미화 시도가 이뤄지고, 팬클럽도 생겼어요. 저는 이게 교육문제와도 연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을까요.

“독립운동가 김규식님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여운형님이 등장하는 ‘대체역사소설’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좌파를 대표하는 분이 여운형님이었다면 우파에는 김규식님이 있었죠. 해방정국에서 미국·소련이라는 외부의 힘 때문에 한분(김규식)은 납북되고 한분(여운형)은 암살됐습니다. 보다 현대로 온다면 앞서 밝혔던 ‘전-노’, ‘노-문’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이번 책을 계기로 아무래도 현대사에 대해 더 쓸 게 많아진 것 같아요.”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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