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 지원 ‘플랫폼P’ 구청장 바뀌고 존폐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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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관련 조례 무시하고 쪼개기 계약

“구민 28% 불과해 일자리센터로 개편”에

“디자인·출판진흥지구 특수성 무시” 지적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 마포구청 홈페이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 마포구청 홈페이지

서울 홍대입구역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코-스테이션(CO-STATION) 건물 2·3층에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가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8월 개관한 플랫폼P는 창업 초기 출판사, 스타트업, 1인 창작자 등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공간이다. 개관 당시부터 입주자 모집 경쟁률이 5:1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 출판 관련 세미나·콘퍼런스·전문가 멘토링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제공, 국제교류행사 개최 등 섬세하고 전방위적인 지원으로 입주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편집자, 작가,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출판·예술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직종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루어지는 등 시너지 효과도 나타났다. 플랫폼P의 지원을 바탕으로 1인 출판사 등 신생 출판사들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고, 창작자들은 안정적인 작업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다양한 직종이 어우러진 공간은 출판·예술계에 활력을 공급하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했다.

존폐위기에 놓인 플랫폼P

지난 3년 동안 신진 출판인·창작자들의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빠르게 성장했던 플랫폼P가 최근 존폐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취임하면서 마포구의 플랫폼P 운영 정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플랫폼P는 지난해 연말부터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마포구는 출판물 관련 업체를 선정해 플랫폼P 운영을 위탁해왔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출판문화진흥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13조는 “구청장은 법인·단체 또는 개인에게 출판문화진흥센터의 운영을 위탁할 수 있으며, 위탁기간은 3년 이내로 한다. 다만 구청장은 수탁자의 운영실적 등을 평가하여 위탁기간을 한 차례만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마포구는 지난해 연말 위탁운영사와 계약만료 시점이 도래했음에도 해당 업체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새로운 업체를 찾아 신규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마포구는 기존 위탁운영사와 3개월 계약연장을 하고, 이후 다시 9개월 계약을 하는 등 쪼개기 계약을 이어갔다.

지난 3월 29일 마포구의회 본회의에서 구청의 쪼개기 계약이 지적됐다. 차해영 마포구의원은 “2020년 9월 문화예술과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관리운영 성과평가를 했는데, 100점 만점에 82.5점으로 우수평가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차 의원은 이 성과평가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열린 마포구의회 예결위에서 해당 업체에 운영을 재위탁해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플랫폼P가 잘 운영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차 의원은 “당시 구청 문화예술과장도 ‘내년도에 (의회가) 예산 많이 지원해주면 좀더 좋은 시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라며 “지난해 12월 구청이 정식계약 연장이 아닌 3월 31일까지 3개월 연장하고, 2월에 12월 31일까지 9개월 연장계약을 진행하게 된 사유는 무엇인가”라고 질의했다.

마포구청은 지난 4월 출판과 관련이 없는 청년일자리사업 참가자 15명을 플랫폼P에 입주시키기도 했다. 또 플랫폼P 입주자 자격도 변경해 마포구에 1년 이상 거주한 주민들로 입주자격을 제한하겠다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최근에는 위탁운영사에 4기 신규 입주자를 뽑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오는 7월이면 2020년 입주한 1기 입주자들이 3년의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플랫폼P를 떠난다. 새로운 입주자를 뽑지 않는다면 대거 공실이 발생하면서 올 하반기부터 플랫폼P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기 입주자인 김은화 딸세포 대표는 “2021년 선발된 2기, 2022년 선발된 3기 입주자들은 심사를 거쳐서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상황인데, 구청이 ‘마포구 1년 이상 거주자’로 조건을 제한하면서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또 예년대로라면 4월에 모집 공고가 나와 5월에는 신규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어야 하는데, 진행이 전혀 안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포구민을 위해서?

마포구청 관계자는 파행 운영과 관련해 “위탁기간은 ‘3년 이내’의 범위에서 상황에 따라 정할 수 있는 것이지 반드시 3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규 입주자 모집 중단과 관련해서는 “2024년에 플랫폼P를 전반적으로 개편하려고 한다. 개편을 앞두고 신규 입주자를 모집하게 되면 6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으로 계약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규 입주자 선발을 중단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 / 마포구청 홈페이지

박강수 마포구청장 / 마포구청 홈페이지

출판문화진흥센터 개편 방향에 대한 마포구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다. 조현익 플랫폼P입주사협의회 회장은 “마포구청장의 발언과 마포구청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마포구청은 플랫폼P를 마포구민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일자리센터나 창업지원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9일 마포구의회 본회의에 출석한 박강수 구청장은 “입주 구성원 중 마포구민은 28%에 불과한 출판문화진흥센터에 국비와 시비의 지원은 전혀 없이 연간 10억원이 넘는 운영비가 구비로 투입되고 있다”라며 “기존 센터를 마포구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일자리 관련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창업지원센터로 운영하고, 일부는 마포 지역의 출판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마포구가 관련 조례를 지키지 않고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출판문화진흥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7조(운영위원회 구성), 제8조(운영위원회 기능)에 따르면 플랫폼P 운영 등에 관한 주요사항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청년일자리 사업 입주, 신규 입주자 선발 등은 운영에 관한 결정인 만큼 구청직원과 외부인사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마포구청이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는 지적이다.

또 ‘마포구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편하겠다는 방향은 플랫폼P의 설립 배경인 ‘마포구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 사업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마포구의 홍대·합정·연남·망원 일대에는 다수의 출판사와 독립서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모여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 서울시와 마포구는 홍대 앞 일대를 ‘마포구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다. 플랫폼P는 이러한 마포구의 특수성을 배경으로 설립됐고, 쇠퇴하고 있는 출판·디자인 산업을 강화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모으며 출발했다.

현재 서울시는 마포구를 비롯해 모두 6개의 자치구에서 특정개발진흥지구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서울시 산업·특정개발진흥지구 현황과 활성화 방향>(오은주·양재섭·허등용·윤종진)’에 따르면 서울시는 특정 지역에 밀집한 서울형 전략산업과 첨단산업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사업 및 특정개발진흥지구’ 제도를 운용 중이다. 마포구 외에 종로 귀금속지구, 성수 IT지구, 동대문 한방지구, 중랑 패션봉제지구, 중구 인쇄지구 등이 있다.

진흥지구 지정의 목표는 당연히 해당 지역 권장업종의 성장이다. 보고서는 마포구를 제외한 나머지 5개 지구에서는 권장업종의 규모 증가, 특화도 증가 같은 현상이 확인돼 전반적으로 권장업종이 진흥지구 내에서 지속성장하거나 진흥지구에서 권장업종의 산업경제 위상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마포구에서만 진흥지구 지정 이후 해당 산업이 쇠퇴한 이유에 대해서는 부동산 급등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주효했다고 분석하면서 해당 산업에 대한 좀더 강력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현익 회장은 “2010년 마포구가 디자인·출판진흥지구로 지정된 이후, 마포구청의 주도로 출판산업을 키우고 관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왔다”라며 “플랫폼P 또한 마포구 외부에 있는 출판사들을 유치하기 위한 앵커시설(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핵심 거점 공간)로 만들어졌다. 입주자 중 마포구민이 28%라는 이유로 이 센터의 용도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장기적인 산업 정책 차원에서 아주 잘못된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플랫폼P의 한 입주자는 “마포구민도 봉제 창업을 하기 위해 중랑구의 지원센터를 가는 등 다른 자치구의 앵커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라며 “만약 해당구가 자기 구민만 받겠다고 하면 마포구민의 이익 또한 훼손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일방통행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지난해에도 관내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용도 변경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려다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마포구청은 지난해 10월 27일 작은도서관 9곳의 수탁 운영을 맡길 기관 선정 결과를 발표했으나, 열흘 만에 이를 번복하고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직영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마포구청은 기존의 작은도서관 기능은 유지하면서 야간에 이용가능한 스터디카페를 결합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작은도서관 이용자들에 따르면 작은도서관 대부분이 동주민센터와 연결돼 야간출입이 어렵고 규모가 워낙 작아 스터디카페를 설치할 만한 공간이 없다. 주민들의 반발로 마포구청은 이후 정책을 전면 철회했다.

지난 5월 3일에는 당시 구청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는 이유로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을 파면해 또 한 차례 논란을 빚었다. 송 관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예산 30%를 삭감하라는 지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위·수탁 협약 체결이 다 끝난 작은도서관들을 독서실로 전환해서 ‘동(洞)문고’가 운영하라는 지시는 더 이해가 안 간다”라고 적었다. 인사위원회는 “사실관계와 전혀 다른 내용을 게시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마포구청장의 작은도서관 운영 검토 방향에 대해 불신과 오해가 생기도록 했다”며 징계 사유를 밝혔다.

구청의 정책에 비판하는 의견을 개인 계정에 올렸다는 이유로 최고 중징계에 해당하는 파면이 결정된 데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포구립작은도서관을지키는사람들’을 비롯한 마포 주민들은 마포구청에 송 관장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성명서를 전달했다.

작은도서관은 오랜 세월 마포구 지역 주민들과 함께해온 풀뿌리 공간이다. 플랫폼P는 오랜 세월 출판산업의 거점이 됐던 마포구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공간이다. 지역 주민들, 업계 종사자들과의 소통 없는 마포구청의 일방통행식 행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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