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원자력발전 지속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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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5월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 시위자가 배낭에 인형을 매단 채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1년 5월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 시위자가 배낭에 인형을 매단 채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료사진

탈원전을 말하는 사람들을 인사 조처하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다. 우리 사회에 원자력발전의 역할이 얼마나 남아 있나. 원자력발전은 과연 지속가능한 정책인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산업생산은 늘어왔다. 지구촌 사람들의 소비도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자원 소비는 지구를 황폐화했다.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이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있으나 그 경제적·분배적 귀결에 대한 인지는 불충분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의무들을 책임질 준비는 아직 충분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원전 결별’이 주는 의미

지난 4월 15일은 독일의 역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당일 최후로 남은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게 됐으니 말이다. 당초에 예정됐던 2022년 12월 말의 시점을 몇 달 넘기기는 했으나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탈원전을 결정하면서 계획했던 일정에 거의 맞춰 원전의 가동은 정지됐다.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는 원자력발전소를 유지하던 나라가 원자력발전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원전과 완전한 결별을 실행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원전의 중단을 둘러싸고 독일에서도 사회적으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원전 중단 찬성의견은 원칙적으로 원전은 위험하고 비싸며 사회가 오래전에 원전폐쇄를 결정했으니 이를 이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다. 반대의견은 현재 에너지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이고, 가스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에너지전환의 과정이 큰 무리 없이 이뤄질지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다. 3기의 마지막 원전은 아주 안정적인 기술로 만들어졌으며, 몇 년 더 운영한다고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에너지전환 국면의 몇 년이 문제라면 이 점에서는 원전 연장 사용론자의 논지도 합리성을 가진다. 현재 독일의 경우 원전을 폐쇄하면 석탄으로 가동하는 화력발전을 유지해야 하는데 탄소 배출 측면에서 원전이 석탄가동 화력발전보다는 나은 측면도 존재한다. 다만 독일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했던 것은 이 단기간의 연장 여부였다. 원전의 영구적 폐쇄라는 원칙적 입장에 대해서는 사회의 컨센서스가 존재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일도 핵연료 폐기물의 영구처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핵폐기물에 대한 해법도 찾지 못하면서 원자력발전을 계속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국가의 정책인가.

에너지전환이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는 스스로의 역할을 잘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는 전환과정을 설계하고 이행시키며 기업과 가계의 개별경제 주체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일정과 가이드를 제시해야 한다. 소득 취약계층의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재정정책을 수반한 배려도 제공해야 한다. 전환과정에서는 국가가 해야 하고, 국가만이 할 수 있는 혁신적 역할이 있다. 이 또한 큰 규모의 재정지출을 수반한다. 국가가 먼저 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고 민간의 행동 변화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장기적 원가 개념을 이용한 분석에 따르면 장기적인 비용 비교에서 원자력발전이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풍력과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 장기적 원가는 발전의 종류별로 모든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발전소의 설치비용, 가스, 오일, 석탄, 우라늄 등 에너지원의 구매비용, 발전소 유지보수비용, 공해 방지에 들어가는 환경비용 등이 있다. 환경비용에는 핵연료 폐기물 처리 및 리스크 비용도 포함된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초기에 설비투자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 이후에는 유지보수비용 이외에 에너지원 구매와 환경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가스, 석탄, 유류 등 화석원료 발전소의 경우 에너지원의 구매와 환경오염비용이 발생한다. 원자력발전의 경우는 핵폐기물의 처리 및 보관이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이후에도 환경비용이 거의 영구적으로 발생한다. 그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기간에 발생하는 비용으로 시야를 국한해 문제를 판단하려 한다면 매우 잘못된 일이다. 후대에 큰 환경비용을 떠넘기는 것이다. 때문에 판단은 모든 비용을 포함한 장기적인 원가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가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적합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에너지전환의 목표를 당연히 그렇게 설정할 수밖에 없다.

전환과정의 비용폭발을 통제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에너지믹스(다양한 에너지원 활용)는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소 설치의 초기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비용이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높아질 수 있어서다. 전환과정 초기, 재생에너지 발전에 국가가 과감하게 투자해 민간의 투자를 유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전환과정의 비용관리를 위한 적절한 에너지믹스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스·석탄·원자력 발전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존재한다.

에너지전환, 정부 역할은

정부는 국익을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이 향후 택할 에너지전환 관련 기술경로에 집중해 자원을 투자하고 선도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향후 수십 년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뤄질 일이다. 재생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미래성장을 선도할 신기술이 펼쳐지고 있는데 2차전지, 전기차, 태양열, 수소에너지, 히트 펌프(Heat Pump) 등이다. 이러한 신기술은 동시에 공공교통수단 및 체계, 선박, 항공, 난방체계, 건축 등 다른 산업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 간의 생산력 확대 및 제조원가 절감 경쟁이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산업 분야를 기술적으로 선점하려는 경쟁으로 대체되게 된다. 국가 간의 경쟁력 차이는 국가가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원자력발전이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남게 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거 및 상용건물의 난방체계 혁신이 우리에게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큰 부분이 난방에 사용되기 때문에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지 않을지라도 화석에너지 사용 절감의 규모 측면에서 사회경제적 가치가 크다. 독일의 경우 2024년부터 가스 및 오일 히터의 신규설치는 금지되고 개인주택에서도 지열, 외부공기열, 수열, 바이오 분야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하는 난방체계가 의무화된다. 비용은 국가가 상당 부분 지원한다. 취약계층한테는 지원 비중을 더 높게 가져가려고 하고 있다. 화석연료 에너지를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가 특히 중요하게 참고해야 하는 대목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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