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좋아 퇴출, 미친 짓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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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신동진벼 퇴출 반발 일자 3년 유예

다수확 품종 해당 여부 논란 속 농민 ‘한숨’

전북 군산시 임피면에서 신동진벼를 재배하는 문홍인씨가 못자리 작업을 하고 있다. 못자리 작업은 모판에 흙을 덮고 볍씨를 심는 ‘파종’을 한 뒤 논에 옮겨심기 적절한 수준까지 키우는 것을 말한다. 모판엔 노란 싹이 올라왔다. / 송윤경 기자

전북 군산시 임피면에서 신동진벼를 재배하는 문홍인씨가 못자리 작업을 하고 있다. 못자리 작업은 모판에 흙을 덮고 볍씨를 심는 ‘파종’을 한 뒤 논에 옮겨심기 적절한 수준까지 키우는 것을 말한다. 모판엔 노란 싹이 올라왔다. / 송윤경 기자

소란했던 봄비가 그치고 맑게 갠 지난 5월 9일, 전북의 호남평야는 푸르렀다. 지금은 농번기가 시작되는 모내기 철. 드넓은 논 곳곳에서 이앙기(어린 모를 논에 옮겨심는 기계)가 돌아갔다.

이날 오전 전북 군산 임피면의 문홍인씨(67)는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반듯하게 도열된 모판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모판엔 며칠 전 심어놓은 볍씨에서 노란 싹이 돋아나 있었다. 그가 24년째 재배 중인 신동진벼였다.

“수확량이 많다고 없앤다는데 제가 보기엔 미친 짓입니다.” 정부의 신동진벼 퇴출 방침에 대해 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신동진쌀은 알이 굵어 식감이 좋습니다. 밥맛은 한번 길들이면 바꾸기 쉽지 않아요.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신동진쌀이 인정받기까지 농민들이 흘린 피와 땀은 왜 생각을 안 합니까.”

정부가 신동진벼의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로 퇴출 방침을 세워 논란이 일고 있다. 2027년부터 신동진쌀을 공공비축 대상에서 제외하고 종자도 보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애초 내년부터 신동진벼를 퇴출시키려 했으나 농가 반발로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특히 신동진벼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전북지역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의 신동진쌀 재배면적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9만5000㏊로 그중 6만㏊가 전북지역에 있다. 전북의 경우 벼 재배면적의 53%에서 신동진쌀이 생산되고 있다.

쌀 남아도니까 수확량 많으면 퇴출?

다른 쌀보다 쌀알이 1.3배 굵어 밥맛이 좋다는 신동진쌀. 수확량까지 많다는 건 장점인데, 없애야 할 이유라니 무슨 얘기일까. 지난 3월 농식품부가 발표한 ‘쌀 적정생산 대책’은 “쌀 수급 안정에 부담이 되는 다수확 품종을 밥맛 좋고, 재배 안정성이 높은 고품질 품종으로 전환시킨다는 기본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그러면서 신동진을 비롯한 11개 품종이 퇴출(종자공급 중단 및 공공비축미 제외) 대상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 ‘다수확’ 품종이기 때문에 다른 품종으로 대체하겠다는 얘기다.

그간에도 정부는 생산량이 많은 벼 품종을 퇴출시켜오긴 했다. 쌀이 남아돌기 때문에 수확량이 많은 벼는 재배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쌀 공급은 417만2700만t(국내 생산량 376만4000t+수입쌀 40만8700t)이었던 반면 소비량은 대략 361만t(가정 쌀소비량 약 292만t+사업체 쌀 소비량 69만t)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지난해에만 대략 56만t이 ‘공급과잉’이었다.

문제는 ‘쌀 공급축소’를 위해 그간 퇴출시켜온 벼 품종은 ‘저품질’이었지만, 신동진은 밥맛을 인정받는 ‘고품질’이라는 점이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신동진은 품질이 좋아 그간 퇴출돼온 품종들과 차원이 다르다”면서 “신동진벼가 전북지역에 적합한 품종이었는데 갑자기 새 품종으로 바꾸게 되면 적응까지 다시 시간이 걸린다. 그사이 농가 수입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동진벼 재배에 주력하고 있는 군산 농민 문홍인씨는 “신동진벼는 브랜드 가치가 있어서 나락 한 가마니(40㎏)당 2000~3000원을 더 받아왔고, 쌀값이 폭락할 때는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이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6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쌀 판매대. 오른쪽에 신동진쌀이 보인다. / 연합뉴스

2016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쌀 판매대. 오른쪽에 신동진쌀이 보인다. / 연합뉴스

20년 전 수치를 적용했다?

신동진쌀이 정부가 제시한 ‘다수확 품종’(10a당 570㎏ 이상 수확)에 해당하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신동진벼 생산량이 10a당 596㎏으로 기준(570㎏)을 넘겼다고 본다. 596㎏이라는 수량은 24년 전 신동진 품종이 국립종자원에 등재될 때 기록된 것이다. 농민들은 24년 전과 재배방식이 달라져 수확량이 당시보다 줄어든 것은 왜 감안하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전북지역 농업기술센터의 한 관계자는 “신동진벼를 처음 보급할 때는 질소질 비료를 10a당 12~13㎏ 줬지만, 이후에는 대개 9㎏ 수준까지 낮췄다”며 “비료가 줄어든 지금의 재배방식으로는 10a당 대략 540㎏ 수확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질소질 비료를 줄이면 쌀 수확량이 줄어드는 반면 품질은 좋아진다.

농업진흥청이 2020년 신동진벼에 대해 실시한 시험결과에서도 단위면적(10a)당 수확량은 536㎏으로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업진흥청의 해당 시험이 이뤄졌던 2020년은 작황이 안 좋았던 해로, 한 해에만 이뤄진 시험결과를 공식 수확량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24년 전의 수확량 기록을 재배방식이 달라진 지금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농민들의 지적에 대해선 “재배방식과 관련한 문제는 농업진흥청의 설명을 들으라”며 답을 피했다. 농업진흥청 측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해 언급하기는 힘들다”고 답했다.

정부는 신동진의 대체 품종으로 참동진을 제시한다. 참동진은 신동진의 밥맛은 유지하면서도 이삭도열병·벼흰잎마름병엔 취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진흥청이 최근 새로 개발한 품종이다. 정부는 참동진으로의 대체가 농가에도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농민들은 “당장 신동진이 아니면 가격을 낮게 쳐 주는데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고 반박한다. 농민들에게 신동진을 포기하라는 것은 20년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다 허물고 새로 시작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전북지역의 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신동진쌀이라는 브랜드가 잘 알려진 상태에서 다른 품종으로 대체하라고 하면 농가들이 당장 손해를 보는 것은 맞다”면서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농가들과 정부 간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량과학원 등은 앞으로 3년간 신동진쌀의 실제 수확량이 정부 기준(570㎏)을 넘기는지 등을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근본적으로는 쌀 공급과잉을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밥맛 좋은 쌀이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로 퇴출 대상에 오르는 일은 쌀이 남아도는 한 또다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쌀 소비가 줄어든다고 강조만 할 게 아니라 수입물량 조정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호 단국대 교수는 “2015년 쌀 전면개방 이후 40만8700t의 쌀을 5%의 관세만 물려 매해 의무수입하고 있는데 이 물량이 쌀소비의 12%를 차지한다”며 “향후 협상을 통해 의무수입량(이른바 TRQ 물량)을 줄일 수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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