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공공요금 현실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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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분야 공공요금 현실화가 큰 국가적 과제로 닥쳐왔다. 오래 누적된 문제라 현 정부뿐 아니라 전임 정부들도 책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전기와 가스요금을 현실화하려니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반이 두려울 것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커다란 제약요인이다. 현실화를 유보하려니 에너지 공기업 적자가 심각하다. 가스공사는 적자를 미수금으로 가리고 있다. 한전은 적자를 한전채를 발행해 채권시장에서 해결하고 있는데, 발행 규모가 크다 보니 채권시장에서 민간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렵다.

공공요금은 공공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이다. 공공서비스는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활동의 중요한 통로이기에 재정학의 중요한 연구영역에 속한다. 공공요금의 징수도 세금 징수와 마찬가지로, 공공성의 관점에서 분석돼야 한다.

너머서울·서울민중행동·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4월 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공공요금 인하, 노동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너머서울·서울민중행동·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4월 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공공요금 인하, 노동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공요금 책정 원칙과 현실적 대안

정부 활동의 부담은 여러 소득계층의 국민에게 어떻게 파급되는가. 세금의 경우 직접세는 납세자가 부담하나 일부 부담이 전가되기도 한다. 간접세의 경우 납세자와 담세자는 다르며 재화의 최종소비자가 주로 부담한다. 통상 직접세는 소득에 누진적이며 간접세는 역진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나라의 세 수입구조에서 간접세 비중이 크면 조세제도 전체적으로 역진적 성격이 두드러지므로 공정성 차원에서 열등하게 여겨진다. 재정정책과 함께 경제정책의 대표적 수단인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통해 정부 재정지출 활동을 직접적으로 가능하게도 하지만 주로 통화정책의 완급조절을 통해 경기흐름을 조정한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과정에서는 일자리를 늘려서 소득취약계층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자산가격의 상승을 통해 자산양극화를 야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정성에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다른 한편 공공요금을 부과하는 공공서비스의 경우 사용량에 비례하는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일견 계층 간 부담 배분의 공정성 이슈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공요금의 수준을 결정하면서 소득취약계층에게 직접적으로 어려움을 야기하는 경우를 배제하기 어렵다.

에너지 관련 요금 수준의 설정은 에너지 소비자들의 행태를 크게 결정짓는다. 한국의 경우 발전 및 난방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도 절약이 필요하지만, 온난화라는 인류를 위협하는 중차대한 위기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도 절약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한국 전기요금은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에 책정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주거용의 경우 OECD 국가들 평균의 60% 수준이며 산업용은 89%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전력에 부과되는 세금이 산업용의 경우 면제되거나 공제받는데, 이 세금이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문제에 예민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국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크다. 주거용의 경우 이들 나라의 전기요금이 우리의 2.1배에서 3.5배, 산업용의 경우 1.4배에서 2.0배에 이른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심각한 적자 상황을 생각해보면 전기와 가스요금의 현실화는 정당성을 가진다. 한전의 전력판매단가는 발전자회사에서 사오는 구입단가를 크게 밑돈다. 전력을 화석연료를 사용해 만들어내는 우리나라의 경우 발전원가뿐 아니라 환경피해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해야 한다.

전력 및 가스요금의 인상은 한편 물가에 영향을 미치며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을 야기한다. 요금을 인상하지 않는 경우도 다른 경로로 부정적인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 한전은 막대한 규모의 한전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며, 이는 회사채시장에서 이자율을 끌어올려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정부가 재정으로 이를 보전해 준다면 2023년 현재의 세수입 여건에서 볼 때 국채발행으로 이어진다. 회사채시장에 미치는 효과 측면에서 볼 때 한전채 발행보다 나을 일도 없다.

따라서 발전 및 송전에 소요되는 원가를 적절하게 반영해 전기요금의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가스요금도 같은 원칙에 의거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에너지 소비행태가 비용을 반영하도록 조정돼야 한다.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문제는 이 경우 시간을 두고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전기소비가 줄면 유류나 석탄, 가스의 수입감소로 이어져 무역적자도 줄일 수 있다. 국민의 저항은 설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서민들의 생계비 문제다. 연료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소득하위계층의 경우 난방비 부담으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게 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4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4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 중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룹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소득취약계층에게는 에너지요금을 생활이 유지되고 지불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소득취약계층이 전력요금이나 가스비의 인상으로 겨울에 난방 때문에 굶주려야 하는 상황(Heat or Eat)이라면, 그것은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가까운 예로 문재인 정부에서 경유 가격 인상이 경제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정책 대안을 모색한 적이 있다. 화물자동차를 보유하며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에게 큰 비용상승 요인이 되며, 이를 화물 운송서비스의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적합한 공공요금 책정은

지난겨울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이 단절되면서 급등하는 가스 및 전기요금으로 국민의 어려움이 크지 않도록 80% 원칙을 도입했다. 가계에 전년 대비 80%까지 사용하는 한도 내에서 가스와 전기료를 전년도의 단위당 가격의 1.5배로 고정하고 그 이상의 사용량에 대해서는 그보다 4배, 5배 높은 시장가격을 부과하도록 했다. 80%까지의 사용량에 대한 시장가격과의 차액은 에너지기업에 정부가 지원했다. 에너지 사용 절감의 인센티브를 확실하게 제공하면서 국민의 고통을 정부재정으로 보듬어 주는 방식이었다.

우리의 경우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80% 수준을 60% 수준으로 더 낮출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이미 우리보다 2배 이상 높은 전기요금에 적응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에너지 절약의 길은 더 멀고 길다. 다만 소득취약계층, 예를 들어 소득하위 50% 계층에 대해서는 지난해 에너지 단위 가격의 1.5배가 아니라 1배를 적용하는 방식을 택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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