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으로 시작해 김연경으로 끝났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프로배구 2022~2023시즌은 ‘배구 여제’ 김연경(35·흥국생명)으로 시작해 김연경으로 끝났다. 지난해 6월 21일 여자부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2020~2021시즌을 마치고 중국리그로 떠났던 김연경은 한 시즌을 소화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배구는 단체 스포츠지만 김연경의 합류 효과는 굉장했다. 지난 시즌 6위를 기록했고, 이번 시즌에도 전력에 큰 변화가 없었던 흥국생명은 하위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연경의 합류만으로 흥국생명은 3위까지 할 수 있는 팀으로 떠올랐다.

4월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경기에서 흥국생명 김연경이 동료의 득점에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경기에서 흥국생명 김연경이 동료의 득점에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흥국생명 성적과 흥행 모두 잡아

김연경은 팀의 성적과 흥행을 모두 잡았다. 시즌 개막부터 중반까지 현대건설의 독주 체제였으나 정규리그 우승은 흥국생명 차지였다. 감독과 단장이 시즌 중 동반 사퇴하는 내홍을 겪었음에도 흥국생명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아쉽게 한국도로공사에 우승 트로피를 내줬지만, 개막 전 흥국생명을 향한 시선을 고려하면 엄청난 반전이었다. 이만한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 모든 게 ‘김연경 효과’였다. 김연경의 개인 기록을 보면 공수에서 팀의 중심을 단단히 받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규리그에서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669득점(전체 5위)을 기록했다. 공격 성공률은 45.76%로 1위에 올랐다. 공격뿐만이 아니었다. 수비에서도 리시브 효율 8위(46.80%), 디그 10위(세트당 3.713개) 등을 기록하며 ‘톱10’에 진입했다. 김연경의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히터다. 2명 이상의 몫을 하기에 팀으로선 더 많은 선수를 데리고 리그를 치르는 것 같은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경기 외적인 부분도 김연경의 영향이 컸다. 흥국생명이 시즌 중 흔들릴 때 김연경은 중심을 잡고 팀을 이끌었다. 그는 “지금 같은 상황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팀을 향한 쓴소리도 몸을 사리지 않고 했다.

김연경은 V리그의 흥행을 이끌었다. 흥국생명의 홈구장인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은 매 경기 팬들로 붐볐다. 올 시즌 18번의 홈 경기에서 8만1708명을 동원했다. 평균 관중은 4539명이다. 여자부 평균 관중 2500명과 2000명 이상 차이가 난다. 흥국생명이 원정경기를 치를 때면 홈 팀들이 김연경의 덕을 보기도 했다.

김연경이 나타나는 곳에는 언제나 팬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관중석에선 김연경을 향한 애정어린 메시지가 담긴 플래카드가 종종 눈에 띄었다.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은 경기 후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도 김연경의 모습을 보려는 팬으로 북적거렸다. 김연경 역시 팬들을 향한 애정이 컸다. 해외 리그에서 생활하는 동안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한국 복귀 후에도 팬 서비스에 아낌이 없었다.

김연경은 시즌 후 열린 V리그 시상식에서 마침내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단독 후보로 선정된 김연경은 기자단 투표 31표 중 만장일치로 MVP에 선정됐다. 2018~2019시즌 흥국생명 이재영 이후 V리그 역대 두 번째이자 단독 후보로는 첫 만장일치 MVP다. 김연경이 MVP가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날도 김연경은 배구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시즌 중 은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던 그는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현역 생활 연장을 두고 고민하던 김연경은 챔프전 우승을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역대 프로배구 FA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김연경은 결국 계약기간 1년, 총 7억7500만원(연봉 4억7500만원·옵션 3억원)에 흥국생명과 잔류 계약을 맺었다.

김연경이 예상보다 빠르게 잔류 결정을 내리면서 V리그 FA 시장은 활발히 움직였다. 박정아가 페퍼저축은행으로 떠났고 김수지가 흥국생명, 황민경이 IBK기업은행으로 이적하는 등 연쇄 작용이 일어났다. 가장 뜨거운 비시즌이었다.

이 모든 일이 김연경이 뛴 한 시즌 동안 발생했다. 김연경은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스타로서의 기질을 타고난 선수였다. 2005년 흥국생명에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연경은 데뷔 첫 시즌인 2005~2006시즌부터 신인왕과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석권했다.

2005~2006시즌을 포함해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3회를 일궜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도 3차례나 들어올렸다. 통합 우승도 달성했다. 이런 그에게 국내 리그는 좁았다. 김연경은 2009년 해외 리그로 진출했다. 국내 프로배구 여자선수 최초로 해외에 발을 들였다. 일본 리그 활약을 시작으로 중국, 튀르키예 등을 오가며 활동했다.

오랜 해외 활동에도 김연경은 태극기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비며 한국 배구를 빛냈다. 주니어 시절이던 2004년 아시아청소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5년에는 세계유스여자선수권대회에서 대표선수로 뛰었다. 수원한일전산여고 3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국제배구연맹(FIVB) 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 성인 대표팀 선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IOC 선수 위원직에 도전할 뜻도

이후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까지 세 번의 올림픽, 네 번의 아시안게임, 세 번의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수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해 우리나라 여자배구의 중흥을 이끌었다.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대표팀 은퇴를 결심한 김연경은 울컥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김연경이 없는 여자배구대표팀은 이후 국제대회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현역 생활 연장 결정으로 한국 배구를 위해 다시 한 번 뛰어오르는 김연경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최근 여자배구 대표팀 어드바이저(고문)로 위촉됐다. 자신이 은퇴한 뒤 어려움을 겪는 대표팀 후배를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경험을 거울삼아 노하우 전수에 나서기 위해 대표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문’ 직급으로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단 김연경은 5월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 출전한다. 이를 위해 여자배구 대표선수들과 함께 지난 4월 24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했다. 오는 5월 22일 대표팀의 튀르키예 전지훈련도 함께 떠난다. 김연경은 “진천에 올 때부터 설레는 마음이 정말 크게 느껴지고 선수들을 볼 생각에 즐거웠다.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게 돼서 기쁘다”면서 “의사소통 등 여러 가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연경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자라고 있다. 배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연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직에 도전할 뜻을 굳혔다고 한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2004 아테네올림픽 탁구남자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 현 대한탁구협회장이 IOC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유 위원의 임기는 ‘2024 파리올림픽’ 때 끝난다.

대한체육회는 내년 3월 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국내 후보 1명을 선정할 계획이다. 해당 후보는 파리올림픽 기간 열리는 선수위원 선거에 나서게 된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