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파괴 현장에 ‘HYUNDAI’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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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야노마미 원주민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불법 도로와 굴착기 / 그린피스 제공

아마존 야노마미 원주민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불법 도로와 굴착기 / 그린피스 제공

네가 아마존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지난 2월 중순쯤, 한 동료가 말을 걸었다. 그린피스 브라질 동료들이 아마존 파괴에 한국 기업이 관련돼 있다며 협력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 속에는 나무가 잘려나간 자리에 파헤쳐진 땅과 흙탕물 웅덩이가 곳곳에 있었다. 노란색 굴착기도 보였다. 도대체 아마존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급하게 현장조사 준비를 시작한 뒤 한 달 만에 지구 반대편인 아마존 중심에 있는 마나우스로 날아갔다.

우리나라 면적의 55배에 달하는 아마존 항공조사를 위한 그린피스 최상의 팀을 구성했다. 비행기를 타고 수백m 상공에서 바라본 아마존은 정말 대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였다.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이 처음으로 판도라 행성의 숲속을 돌아다녔을 때 느낌이 이렇지 않았을까.

그린피스 항공 조사에 참여한 카야포 원주민 지도자인 도토 타칵 이레씨가 2023년 3월, 카야포 원주민 보호구역 내의 불법 금 채굴로 파괴된 현장을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항공 조사에 참여한 카야포 원주민 지도자인 도토 타칵 이레씨가 2023년 3월, 카야포 원주민 보호구역 내의 불법 금 채굴로 파괴된 현장을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그렇게 아마존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을 때 동료가 외쳤다. “불법 금 채굴 현장이야!” 동료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달 전 사진에서 봤던 것과 같이 나무가 잘려나가고, 땅이 파헤쳐져 있는 곳에서 연신 흙을 퍼올리고 있는 굴착기 두 대가 나타났다.

현재 아마존에서는 불법 금 채굴에 의한 열대우림 및 원주민 공동체 파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금값이 오르면서 굴착기까지 투입된 불법 채굴이 활개를 치고 있다.

아마존 파괴 현장에 ‘HYUNDAI’가 선명했다

원주민보호구역 내 채굴 면적은 지난 5년간 급속도로 증가했다. 2021년까지 브라질 내 채굴로 훼손된 면적이 무려 서울시의 3.5배에 달한다. 이중 90% 이상이 아마존 지역이다. 불법 채굴로 인해 원주민들은 터전에서 쫓겨나고, 채굴업자들과의 충돌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며,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불법 채굴로 고통받고 있는 야노마미 원주민보호구역을 방문해 의료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야노마미 지역은 보우소나루 집권 4년간 말라리아, 영양실조, 수은 중독 등으로 570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은 곳이다.

그린피스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조사한 결과, 아마존 불법 금 채굴 현장에서 176대의 중장비가 발견됐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조사한 결과, 아마존 불법 금 채굴 현장에서 176대의 중장비가 발견됐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브라질 아마조나스·호라이마·파라주에 있는 야노마미·문두루쿠·카야포 원주민보호구역 내 불법 금 채굴 현황을 조사했다. 이 세 곳은 원주민보호구역 내 채굴 면적의 95% 이상을 차지한다. 항공 조사를 통해 그린피스가 확인한 굴착기는 모두 176대였다. HD현대 그룹(구 현대중공업 그룹)의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가 생산한 굴착기가 75대로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어떻게 하다가 현대의 굴착기가 한국 반대편인 아마존에서 불법적인 환경 파괴에 가장 많이 동원되고 있는 것일까. 처음 이 문제를 브라질 동료에게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들이 있었다. ‘현대 굴착기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해서 현대의 책임이 있을까?’, ‘굴착기를 불법 금 채굴에 사용한 업자의 책임 아닌가?’, ‘이 문제는 브라질 정부가 채굴업자 단속을 통해 해결할 문제 아닌가?’ 이러한 의문은 브라질 동료와의 논의와 자료들을 보면서 하나하나 해결이 됐다.

브라질 연방환경청(IBAMA)이 불법 금 채굴 단속과정에서 찾은 현대 굴착기를 파기하고 있다. / IBAMA

브라질 연방환경청(IBAMA)이 불법 금 채굴 단속과정에서 찾은 현대 굴착기를 파기하고 있다. / IBAMA

우선 아마존 및 원주민 공동체 파괴에 있어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채굴업자에게 있다. 그린피스도 이에 동의한다. 브라질 정부 역시 이미 불법 채굴업자 단속을 시행 중이다. 연방환경청(IBAMA) 소속의 중무장한 팀이 불법 채굴 현장을 급습해 업자들을 체포하고, 현장 시설과 장비를 파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이 워낙 방대하고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어 금 채굴의 규모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아마존 파괴 현장에 ‘HYUNDAI’가 선명했다

둘째, 현대는 아마존 불법 채굴 문제에 있어서 단순한 장비 제조업체 이상의 기여를 하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는 2013년 브라질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판매망을 구축했다. 문제는 굴착기를 필요로 하는 건설 수요가 거의 없는 아마존 보호구역 인근에 현대 공인 대리점이 6곳이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불법 금 채굴의 중심인 이타이투바시의 현대 대리점 대표는 이곳에서 (불법적인) 채굴업자에게 중장비를 팔면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한국인들을 설득했고, 그 결과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00대가량의 굴착기를 팔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대가 2021년 7월에 브라질산 중남미 굴착기 누적 판매대수 1000대를 기록했으니, 불법 채굴업자에게 판매된 굴착기가 중남미 굴착기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했다는 뜻이다.

그린피스는 지난 4월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HYUNDAI 중장비 아마존 판매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중장비들이 불법 금 채굴에 동원돼 아마존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밝혔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는 지난 4월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HYUNDAI 중장비 아마존 판매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중장비들이 불법 금 채굴에 동원돼 아마존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밝혔다. / 그린피스 제공

셋째, 현대는 불법 채굴로 야기된 심각한 환경·보건·인권 문제를 이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해결을 위한 브라질 정부와 사회의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2022년 8월 브라질 비영리 언론매체인 ‘리포터 브라질’은 <살인 기계(The Murder Weapon)>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며 현대에게도 해명을 요구했지만, 현대는 응답하지 않았다. 또한 브라질 연방 검찰청도 현대에게 “귀사의 장비가 불법 금 채굴에 활용되지 않도록 효과적인 사용 통제 조치를 취했는지”와 “보호구역 내에서의 사용을 막기 위한 기술적 접근이 가능한지”를 문의했지만, 현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불법 채굴로 파괴된 아마존 카야포 원주민보호구역. 2023년 3월 항공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 그린피스 제공

불법 채굴로 파괴된 아마존 카야포 원주민보호구역. 2023년 3월 항공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 그린피스 제공

한국에 돌아온 후 현장조사 자료를 정리해 지난 4월 12일 그린피스 주관으로 보고서 <아마존 파괴의 조력자: HYUNDAI 중장비가 동원된 금 채굴로 인한 아마존 우림과 원주민 공동체 파괴>를 발간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마존 카야포 원주민 지도자인 도토 타칵 이레(Doto Takak Ire)와 다니클레이 디 아기아르(Danicley de Aguiar) 그린피스 브라질 아마존 선임 캠페이너가 지구 반대편 서울까지 날아왔다. 현대에 아마존 파괴가 아니라 아마존 보호에 함께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불법 금 채굴업자 단속과 중장비 제조업체들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브라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현대를 비롯한 중장비 제조업체들이 아마존 열대우림과 원주민 공동체 파괴의 조력자가 아니라 보호의 조력자로서 문제 해결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자사의 장비가 불법 금 채굴에 사용되지 않도록 막는 제도와 시스템을 브라질 정부와 함께 구축하고 그때까지는 아마존 인근에서 중장비 판매를 멈춰야 한다.

이제 그린피스는 HD현대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 초 열린 CES2023에서 HD현대 정기선 대표이사 사장은 “그동안 인류가 너무 오랫동안 지구 환경에 지속 불가능한 압력을 가해왔다”며 “지금의 환경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에 대한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고 연설했다. 친환경 경영을 강조해온 HD현대가 아마존 파괴의 조력자로 남을지, 아마존 보호의 조력자가 될지는 HD현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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