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AI를 보는 두 개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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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공상과학소설 속에서 그려졌던 가상의 세계가 일부는 이제 실물 세계에서 실현되고 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에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대화형 AI 챗GPT가 공개되면서 그 엄청난 실력에 감탄했던 세계 시민들은 이제 이 신기술의 위험을 두려워한다. 최근에는 AI에 대한 규제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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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같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기술혁신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충격을 장기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미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파괴적 기술혁신은 파괴적이라는 수사에 걸맞게 거시적으로 사회경제적 구조에 변화를 가져온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는 기술혁신의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미시적 기술혁신과 거시적 사회경제 시스템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과거 사례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교훈을 찾아보자.

AI 기술의 파괴력

그레이엄 켄달 영국 노팅엄대학 컴퓨터학과 교수는 컴퓨팅 기술발전을 아주 실감나게 설명한다.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을 성공시킨 아폴로 11호에 사용된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2019년의 스마트폰과 비교한 것이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아폴로 11호에서 사용한 컴퓨터에 비해 RAM(임의 기억장치)으로는 100만 배 이상, ROM(읽기전용 기억장치)으로는 700만 배 이상의 용량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프로세서 속도에서는 아폴로 11호 컴퓨터는 0.043MHz로 운용되는 반면 아이폰 프로세서의 속도는 2490MHz이다. 이는 스마트폰이 연산처리 속도에서 아폴로 11호 컴퓨터보다 약 10만 배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세기 만에 이뤄진 이렇게 대단한 정보기술의 발전에도 달 탐사와 달을 활용하고자 하는 인류의 꿈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다. 달 탐사는, 그리고 외부 행성에 대한 탐사는 기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와 운용 기술만큼이나 이 활동을 통한 가치 창출이 입증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사업이 되지 않는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을 만큼 달 탐사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최근 우주를 개척해 새로운 산업으로 이용하자는 우주산업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 논의는 기업의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려는 슬로건 성격이 강하다.

원자력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원자폭탄으로 전쟁의 종식은 앞당길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인류는 공포를 느꼈다. 냉전 기간에는 미국과 구소련이 대립하면서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탄두 개발 경쟁에 돌입했다. 두 나라를 필두로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등이 원자폭탄을 보유하게 되고 북한도 보유를 주장하면서, 핵확산 방지는 인류에게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핵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하나가 1969년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이다. 원자력발전이 인류의 에너지 부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로 방사능 누출 사고에서 보듯이 원자력은 언제든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에 못지않게 원자력 이용을 줄여야 하는 게 인류의 당면과제가 됐다. 풍력·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AI 기술은 발전 속도에서는 컴퓨팅 기술을 훨씬 앞선다. 파괴력 측면에서는 어떨까. 원자력은 단일 기술이라 파악하기가 용이하지만, AI는 여러 부문에 걸쳐 활용되는 범용기술이라 특정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여러 부문에 걸쳐 있기 때문에 충격은 단일하지 않지만 넓게 퍼져 있다는 특성이 있다. AI 기술의 활용은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파괴력을 어떻게 제어해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다. 법률서비스 산업을 예시로 보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9일 국회 앞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인공지능(AI) 법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9일 국회 앞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인공지능(AI) 법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률서비스에서 AI의 사용은 이미 시작됐다. 방대한 법률 문서에서 필요한 사례와 논거를 찾아내는 작업을 컴퓨터는 인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해치울 수 있다. 미시적 차원에서 보면 법률회사에서 판례를 찾던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그러면 법률서비스 산업은 어떻게 변할까. 판례 검색에 AI 기술을 사용하는 법률회사 중에서도 이들 기술을 활용해 재판에서 더 많이 승소하는 회사에 고객이 몰릴 것이다. 법률서비스의 가치는, 결국 더 좋은 서비스(더 높은 승소율)로 결정된다. 기술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가치의 원천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경제적 활동에서 가치의 원천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결정된다.

AI 법안 논란의 핵심은

지난 2월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AI 법안)’이 통과됐다. 이에 대해 15개 시민단체는 3월 2일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반대 의견서의 요지는 ‘AI 법안’은 법안의 입법 취지와 목적인 “국민의 권익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천명한 법안의 제11조다. 여기에서 법안은 예외 조항을 서술하고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 제한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는데, 반대 의견서는 이러한 포괄적 규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위해가 있을 수 있는 AI 관련 제품을 시장에 우선적으로 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부분을 가장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AI법 제정은 공동체의 가치 체계에 영향을 주는 대단히 중요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설정하는 작업이다. AI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가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는가에 대한 의견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안의 제목은 ‘AI 산업 육성’과 ‘신뢰 기반 조성’으로 두 개의 가치를 함께 취했지만, 법안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정부의 투자 재원 확보와 역할을 설정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AI 기술발전에서 빅테크 기업의 독점에 대한 우려가 미국과 유럽에서 크게 부각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부의 투자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AI 기술의 ‘우선 허용·사후 규제’ 조항의 경우 최근 AI를 둘러싼 논란을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칠 법안의 제정에서는 인간의 기본권과 공동체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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