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의료현장’ 특별기고

(1) 시장에 맡긴 의료가 무너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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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수술 집도의가 없어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최근 대형병원들은 전공의가 없다며 소아청소년과 응급·입원 진료를 축소·중단하고 있다. 중증외상, 심근경색, 허혈성 뇌졸중 환자 2명 중 1명은 ‘골든타임’ 내에 응급치료를 받지 못한다. 지역 상황은 더하다. 지방의료원 35곳 중 18곳이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진료과를 폐쇄하고 있다.

2020년 2월 19일 경북대학교 병원 응급실 앞에서 의료진들이 한 코로나19 의심환자를 구급차에서 선별진료실로 이송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2월 19일 경북대학교 병원 응급실 앞에서 의료진들이 한 코로나19 의심환자를 구급차에서 선별진료실로 이송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력을 쥐어짜는 병원공장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보상이 적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특히 ‘필수과’가 돈이 안 된다고 한다. 정부도 수가 인상을 답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수가를 높이는 정책은 늘 실패해왔다. 2009년에도 정부가 흉부외과 수가를 2배로 올려줬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늘어난 수익을 병원이 그대로 가져가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은 “일부 병원들은 수가 가산금 전액을 착취한다”며 “병원장과 흉부외과 의사 개인이 싸워야 가산금을 지원받는다”고 했다.

기업이 돈을 번다고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제조업·건설사들도 매년 엄청난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만, 현장 인력은 늘 부족하고 산재 사망도 끊이질 않는다. 문제는 병원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병원을 국가가 운영하는 OECD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의료기관의 95%를 민간이 소유한다. 환자 건강보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운영 중이라는 뜻이다. 전문의를 고용하기보다는 인건비를 절감하려고 현장실습을 하는 ‘값싼’ 수련 전공의(인턴·레지던트)에 의존해 진료한다. ‘기피과’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 문제라고들 하지만 실상 배출되는 전문의를 병원이 다 고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보니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의사의 상당수는 동네 의원을 차려 전공과 관련 없는 진료를 한다. 전공을 살릴 기회가 줄어들고 앞날이 불투명하니 의사들은 더 필수과에 지원하지 않는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하루 평균 12.7시간, 일주일에 63.5시간을 일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들 중 51.7%가 번아웃에 시달리고, 93.9%는 이런 노동조건이 환자에게 위해가 될까봐 걱정을 한다.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병원들이 적정 수의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면 된다. 무려 2732병상을 운영하면서도 뇌수술 전문의를 단 2명만 두어 자기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를 숨지게 한 서울아산병원은 2021년 순이익이 1183억원이었다. 소아과 수련 전공의에 의존하다 소아청소년과 병동 문을 닫은 길병원은 2021년 942억원을 벌었다. 그래놓고선 두 병원 모두 이 와중에 외려 규모를 늘리고 있다. 조만간 수도권에 각각 800병상, 1000병상짜리 분원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은 의사, 간호사 등 인력충원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돈 되는 데 집중하는 의료시장
일부 의사들은 이런 현실에서도 환자를 살리겠다며 필수과에 지원하지만, 많은 의사는 다른 선택을 한다. 활동 의사 10만여명 중 약 3만명이 미용성형에서 일한다. 꼭 미용성형이 아니더라도 큰 병원 밖을 나와 동네 의원을 열면 월급의사 수입의 약 2배를 번다. 2019년 의원 원장들은 연간 평균 3억1700만원을 가져갔다. 이는 노동자 평균임금의 10배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부의 무규제 속에 마늘·백옥 주사,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가 만연하고 실손보험이 이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피과’ 현상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피부·성형외과, 그리고 개원하기 쉬운 소위 ‘인기과’들이 있다. 의대 열풍의 주요 배경이자, 필수과 붕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근본 책임은 국가에 있다. 병원 설립과 의료인 양성에 아무런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의료를 시장에 맡겨버린 탓이다. 실손보험 돈벌이를 장려하고 ‘신시장’을 창출한다며 비급여를 양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시장에서 의료기관은 몸집을 불려도 인건비는 최소화하고, 돈 되는 환자 중심으로 진료하는 ‘단물 빨기(cream skimming)’를한다. 지역 공공병원에 의사가 가지 않는 것도, 인구가 적은 지방에 민간병원이 생기지 않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동네 의원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의 한 병원 건물 /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네 의원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의 한 병원 건물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슷한 문제가 3년의 팬데믹 기간에도 계속 불거졌다. 전체 의료기관의 5%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의 70~80%를 진료하는 동안 민간병원들은 일상진료로 수익을 냈다. 민간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공공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가난한 환자, 이주민, 홈리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등도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자 쫓겨났다. 이들의 생사는 알 길도 없다. 뒤늦게 민간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한 것은 막대한 보상을 약속한 뒤였다. 코로나19 중환자를 치료하면 평소 수익의 10배를 보상하고, 병상을 비워놓기만 해도 5배를 주고서야 겨우 나섰다. 보상금만 챙기고 환자를 받지 않은 민간병원도 많았다. 정부가 이렇게 민간병원에 퍼준 돈이 4조원이었다. 공공병원에 투자했으면 양질의 400병상짜리 병원 스무 개는 지을 수 있었다.

생명에 가격 매기는 시장주의 멈춰야
최근에도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라며 소아과 의사회는 수가 2배 인상을, 산부인과 의사회는 ‘더 파격적인 보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민간에 의료를 의탁한 상황이라면 과연 우리는 얼마를 더 지불해야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코로나19 때처럼 10배를 보상하면 될까. 그것이 정말 정당한 해결책일까. 안 그래도 서민들은 고물가·고금리로 신음 중이다. 이들이 앞으로 건강보험료와 의료비를 얼마나 더 내야 한단 말인가.

오늘날의 위기는 의료를 생명을 살리는 일로 보기보다는 ‘산업’이라며 영리화를 장려해온 역대 정부가 초래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아예 “보건복지부는 곧 보건산업부”이고, “나랏돈 쓰지 말고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야 한다”며 더 노골적인 정책을 편다.

이런 사회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행위도 ‘경제성’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최근 코로나19를 계기로 울산과 광주에 지을 예정이던 공공병원 설립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기재부가 병원을 세우면 살릴 수 있는 생명에 가격을 매겨 ‘편익’을 계산하고, 공공병원을 세우는 데 들어갈 ‘비용’을 계산한 모양이다. 후자가 더 비싸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이 같은 냉혹한 신자유주의가 의료를 무너뜨리는 진짜 원인이다.

정작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건 민간병원의 영리추구를 통제하며 인력충원을 강제하는 일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 공공적으로 의사를 양성·배치하고, 지역마다 공공병원을 세워야 한다. 기후위기 가속화와 맞물려 팬데믹은 더 자주 엄습하고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다른 재난도 빈번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공공의료 복원과 반대의 길만 걷는 한 의료현장의 붕괴는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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