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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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뛰어넘는 크로스오버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 JTBC의 <팬텀싱어> 시즌1에 출연해 우승을 거머쥐었던 손태진이 최근 MBN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인 <불타는 트롯맨>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포르테 디 콰트로’라는 4인조 팀의 멤버로 묵직한 저음의 베이스바리톤 목소리가 일품인 그가 전혀 안 어울릴 듯한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는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니 더욱 놀랍습니다. 성악 전공 이력에 뮤지컬 넘버, 팝송, 칸초네, 샹송, 가곡, 오페라 아리아를 아우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던 걸까요. 특정 분야에 머물러 있기엔 그의 재능이 너무 흘러넘쳤던 걸까요. 언뜻 양극단으로 비치는 클래식과 ‘뽕짝’의 경계를 일거에 무너뜨린 일대 사건으로 보입니다, 제게는….

[편집실에서]알다가도 모를 세상

얼마 전 타계한 테너 박인수가 떠오릅니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9년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이동원과 함께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를 듀엣으로 불러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요. 하지만 국립오페라단 단원에서 제명되는 등 국내 성악계에선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대중 가수와 클래식 성악가의 구분이 엄격하던 시절의 웃지 못할 풍경이었습니다.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됐지만요.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은 이미 빠른 속도로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성악 발성과 트로트 창법은 서로 호환될 수 없다는 기존의 통념 자체가 진부하기 그지없는 발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성악 전공자가 부르는 트로트는 여전히 제 귀엔 어색합니다. 성악과 트로트를 멋지게 결합시킨 창법(‘성악 트로트’라고 부른다지요)에도 불구하고 엊그제까지 중후한 목소리로 다양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이던 4인조 중창단의 멤버였기에 그가 트로트 무대에서 단독으로 가수 남진의 ‘상사화’를 부르는 모습은 더 생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격을 시도한다고, 변신을 도모한다고 손태진처럼 다 대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자칫하면 트로트도 아니고, 성악도 아닌 정체불명의 노래가 돼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나한테 맞는, 나만의 방법으로, 나만의 길을 찾을 때 변화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 바꾼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옳은 방향이어야겠지요.

현 정부 들어 기존 정부의 정책이 180도 바뀌는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합니다. 최근에는 환경부가 근 40년을 끌어오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내용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신 것처럼 ‘조건부 동의’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26년이면 설악산에 추가로 케이블카가 들어서게 됩니다.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을 벌여온 환경단체들은 다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은 이번 1519호에 녹색당의 기고 ‘설악 케이블카 동의, 환경부가 할 일인가’를 실었습니다. 정부가 과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두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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