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키우고 ‘팬’은 뒷전이었던 SM 인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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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하이브와 대결구도서 ‘공개매수’ 선언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 행보에서 SM 사태 비롯

이달 말 주총…팬들은 논의서 소외된 채 발 동동

기묘한 일이다. 1995년 설립된 이 회사는 시장을 개척하며 30여년 동안 존속했다. 후발주자들의 견제 속에서도 수익구조를 다각화했고 그 결과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매출이 발생한다. 지속적인 인재 공급, 끊임없이 유입되는 수요 등의 환경적 수혜를 받을 뿐 아니라 시장 선점을 통한 안정적 홍보 체계도 구축했다. 창립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2000년 4월에는 코스닥시장에도 입성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8484억원, 영업이익은 935억원이다. 전년 대비 각각 20.9%, 38.5% 증가했다. 그런데 이런 회사가 어느 날 시장에 매물로 던져졌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 연합뉴스

성장 동력을 잃은 것도, 적자가 누적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막혔던 수익원에 숨통이 트이면서 새로운 투자를 준비 중이었다. 업계 선두권을 유지하며 한창 재도약을 준비하던 상황에서 회사는 사실상 멈춰섰다. 최대주주 및 경영권 변경이 예고됐다. 기업 존속성 측면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제는 “어떻게 회사를 정상화할까”보다 “누가 얼마에 이 회사를 사갈까”에 더 이목이 쏠리는 신세가 됐다. 매수 참여자가 얼마 전까지 업계 선두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곳들이라는 점은 상황을 더욱 기묘하게 느끼게 한다. K팝 시장의 개척자란 평가를 받았던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는 이렇게 변화의 기로에 섰다.

SM 경영권을 둘러싼 치킨게임

SM 경영권을 노리는 곳은 국내 굴지의 회사 하이브와 카카오다. 이들의 시도를 적대적 합병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것은 SM 내부에 이들과 손잡고 조력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창업자 이수만씨와 손을 잡은 하이브와 현 경영진의 손을 잡은 카카오의 대결구도다. 이들 사이의 대결은 지난 3월 7일 정점을 찍었다. 이날 카카오는 SM 주식 ‘공개매수’를 신고했다. 매수 목표 주식 수는 833만3641주로 SM이 발행한 총주식 수의 약 35% 수준이다. 이를 카카오와 자회사 카카오엔터가 각각 절반씩 매입하는 방식이다. 카카오의 주식 매수 목적을 두고는 ‘안정적인 파트너십 구축’부터 ‘자율적 경영 보장’까지 각종 해설이 붙는다. 하지만 ‘신고서’에 적힌 그대로 보면 M&A, 즉 경영권 확보가 목표다. 매수 가격은 주당 15만원으로 책정됐다.

하루 전인 3월 6일 SM의 종가는 13만100원이었다. 카카오의 공개매수가 발표된 당일 주가는 약 15% 상승해 종가 14만9700원을 기록했다. 3월 8일에는 장중 16만1200원까지 올랐다. 이날 장 시작 전까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역사적 ‘신고가’다. 그런데 이날 SM은 줄곧 카카오의 공개매수 가격인 15만원 이상에서 거래됐다. 시장은 경쟁자인 하이브의 참전을 기다리며 여전히 욕망을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왼쪽부터 방시혁 하이브 의장,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 하이브 제공

왼쪽부터 방시혁 하이브 의장,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 하이브 제공

신사업이 발표된 것도,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성공을 거둔 것도, 미국 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SM 주가는 이미 2022년 종가 대비 2배 넘게 상승했다. 단순히 투자자들의 탐욕만으로 주가가 이 정도로 치솟긴 어렵다. 실제로 판을 키운 것은 이른바 ‘쩐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하이브와 카카오다.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는 이들 역시 주식회사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카카오가 SM 주식 공개매수를 발표한 후, 카카오와 하이브 주식은 연이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들 회사를 포함한 시장은 15만원이라는 주당 가격이 비합리적이라고 인식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경영권 분쟁이 알려진 후 나온 각 증권사 리포트의 SM 목표가는 12만~13만5000원 수준이었다.

SM 경영권을 어느 쪽이 획득하든 이를 위해 사용한 비용은 사후 평가를 받는다. 벌써 ‘승자의 저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누가 이기든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임을 방증한다. 그런데 SM 인수를 둘러싼 돈 문제에 관심이 쏠리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대체 이 문제가 왜 시작됐느냐’와 ‘하루아침에 회사 주인이 바뀌어도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는 물음이다. 전자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이라고 알려진 자칭 ‘행동주의 펀드’와 연결된다. 얼라인은 SM 경영권 분쟁이 시작하고, 격화되는 과정에서 빅마우스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브의 공개매수 과정에서 나온 “12만원은 너무 낮다. SM 주가는 3년 뒤 30만원을 갈 수 있다”는 발언이다.

후자는 ‘소속 아티스트, 아이돌 팬덤의 동향’과 연결된다. SM이 판매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과 연결돼 있다. K팝 산업을 ‘마음의 산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SM의 불안정한 상태는 소속 아티스트의 지위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는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팬들도 덩달아 불안하게 한다. 실제로 K팝 시장에서 기획사의 일방적 결정, 아티스트와의 갈등 문제로 하루아침에 ‘아이돌 그룹’이 해체돼 버리는 사례가 있었다. 즉 아티스트든 팬이든 기획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이는 기획사 규모가 클수록 더해진다. SM 사태는 이러한 K팝 시장의 계층적 구조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SM의 주당 가격이 얼마냐’는 것 외에 시장을 만들고, 키우고, 유지하는 데 협력한 아티스트, 팬에 대한 배려, 문서화된 약속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엄청나게 커진 산업자본 앞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불만이 있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얼라인,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저희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예전 같으면 시끄럽게 군다고 비난받고 진압당했겠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주주들의 목소리와 이익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대표가 언급한 주식시장의 행동주의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국내 주식시장에 행동주의가 소개된 것이 15년 정도로 짧고, 사례도 많지 않다. 심도 있게 진행된 학계의 연구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동주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신화가 존재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지배 문제를 개선하고’, ‘배당 등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스스로 행동주의 펀드라고 밝힌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 홈페이지 갈무리

스스로 행동주의 펀드라고 밝힌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 홈페이지 갈무리

따지고 보면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신화를 만든 것은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이들이었다.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로 출범한 얼라인이 행동주의 펀드로 유명해진 것도 SM 지분 약 1% 정도를 보유한 상태에서 이수만 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종료하라는 주주서한을 보내면서였다. 고작 1%였지만 실제로 이 전 프로듀서가 라이크기획을 통해 SM 매출의 일정 비율을 인세로 받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며 여론이 얼라인 쪽으로 넘어갔다. SM과 라이크기획의 기형적 계약은 2022년 12월 31일부로 종료됐다. 행동주의를 등에 업고 단 1%의 지분으로 최대주주를 이겨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SM 경영진을 견제하는 위치에서 손을 잡고 함께 뛰는 위치로 지위가 변화하면서부터 시작됐다. SM을 둘러싸고 벌어진 하이브와 카카오의 인수경쟁에서 얼라인은 카카오 편에 섰다. 펀드가 의사결정을 했다고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들이 해당 결정을 여전히 행동주의와 연결해 ‘옳은 것’으로 포장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 경우 얼라인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하이브는 ‘불의’가 된다.

다시 카카오가 공개매수를 시작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얼라인은 즉각 지지 입장문을 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경쟁사이면서 40% 지분 인수 후 SM 추천 이사들에 반대하고 자사 추천 인물들로 이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하이브와 달리 카카오는 SM 경영진이 추천한 독립적 이사회(카카오에서 구성한 이사회가 아닌)를 지지한다’,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15만원으로 제시하여 기존 하이브 측 공개매수 가격인 12만원보다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주주 관점에서 좋은 일이다’는 것이다.

3월 9일 종가 기준 최근 7거래일 간 SM 주가 차트 / 네이버 증권

3월 9일 종가 기준 최근 7거래일 간 SM 주가 차트 / 네이버 증권

첫 번째, ‘이사회’ 문제다. 얼라인은 이 전 프로듀서가 최대주주로 군림하며 만든 이사회가 문제라며 견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후 꾸려진 SM 경영진이 만들겠다는 이사회도 논리구조상 이 전 프로듀서가 만든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달라진 것이라면 이창환 대표가 기타비상무이사 후보로 직접 이름을 올렸고, 사외이사 후보에게도 얼라인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정도다. 얼라인 스스로 강조한 논리대로라면 하이브가 이 전 프로듀서의 경영배제를 밝힌 시점부터 그들이 하이브 편을 들지 않을 이유도 없어진 셈이다. 선진적이고 독립적인 이사회는 SM 현 경영진, 얼라인만 꾸릴 수 있다는 ‘유아독존’식 인식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3월 9일 종가 기준 최근 7거래일 간 카카오, 하이브의 주가 차트 / 네이버 증권

3월 9일 종가 기준 최근 7거래일 간 카카오, 하이브의 주가 차트 / 네이버 증권

두 번째, ‘공개매수 가격 15만원이 주주 관점에서 좋은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은 이 대표 스스로의 밝힌 30만원 가치와 배치된다. 12만원은 나쁜 일이고, 15만원은 좋은 일이 되는 논리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 주장을 다각도에서 이해하기 위해 카카오에 ‘공개매수 가격을 15만원으로 책정한 근거’를 물어봤다. 카카오 관계자는 “시장 가격이 12만~13만원에 형성된 상황과 SM 경영성과 전망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핵심은 경영성과 전망이다. 이 대표 역시 경영성과 전망을 고려해 30만원을 외쳤다. 이 대표 논리대로라면 15만원은 카카오의 일방적 후려치기다. ‘15만원이 어떻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이 대표와 얼라인 측에 전화 연결을 시도하고, 문자도 남겼지만 회신은 없었다.

증권가에서는 얼라인의 이 같은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얼라인의 행보를 논리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정상”이라며 “카카오와 하이브에 들이대는 잣대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가장 웃긴 것은 카카오가 SM을 인수하면 이해상충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운 게 카카오의 ‘말’뿐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돈이 아닌 말을 믿는다는 것을 보면 알면서도 속아주거나 이들 사이에 별도의 합의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별 행동주의 펀드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합리적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존재한다”며 “현재 행동주의 펀드와 기업의 경영권 분쟁 사례들을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업가치 제고 가능성보다는 단기간의 주가 상승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에 종속된 생산자와 소비자

그렇다면 SM 사태에서 하이브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일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카카오의 공개매수 방침 발표 후 하이브 측에 두 가지를 물었다. ‘SM 인수 추진을 지속할 것인지’, ‘15만원 공개매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이다. 이에 대해 하이브 측 관계자는 “첫 번째는 질문은 포괄적이라서 대답하기 어렵고, 공개매수 건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대부분의 언론이 ‘하이브, 공개매수는 내부논의 중’으로 인용해 보도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하이브의 12만원 공개매수는 주가가 해당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며 실패했다. 쉽게 말해 주주들이 더 비싸게 팔 수 있는데 하이브에 주식을 넘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하이브는 이미 이 전 프로듀서 지분을 인수해 약 20% 정도의 주식을 확보하고 있다. 카카오는 확보한 것이 기껏해야 5%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무리한 공개매수로 지분을 높이기보다 카카오의 공개매수가 실패로만 끝나면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식시장을 떠돌아다닐 ‘하이브가 15만원보다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 하는 것 아닐까’라는 기대 섞인 소문이다. ‘내부논의 중’만큼 사람을 궁금하게 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답변이 없다. 군불만 잘 피우면 주가는 계속해서 15만원 위를 떠다닐 수 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SM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에서 팬들이 SM 소속 연예인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에 있는 SM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에서 팬들이 SM 소속 연예인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 / 연합뉴스

SM 사태는 결국, 오는 3월 31일 주주총회까지 가야 일단락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 지난한 과정에서 소외된 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아티스트와 팬은 K팝 산업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이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나마 아티스트들은 지식재산(IP)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가치 산정에 포함된다. 팬은 이마저도 아니다.

‘K-POP 산업의 리더십’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동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은 “K팝 시장이 산업화, 단순화되며 돈의 논리가 먹혀들어가고 있다”며 “기획사가 만든 연습생, 전속계약이라는 시스템을 거쳐 배출된 아티스트와 역시 기획사가 만든 플랫폼을 중심으로 모인 팬들은 과거보다 수동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의 성향, 특성, 구매력을 파악해 만든 플랫폼의 존재는 팬들이 이곳을 떠나기 더욱 어렵게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의 활성화는 과거 하나의 중심점을 갖고 움직였던 팬 액티비티를 수동적·연성적으로 변화시켰다”며 “규모가 커진 자본 역시 팬들이 소액주주 운동을 해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을 키운다”고 말했다. “우리(기획사)가 이런 아티스트, 시스템을 만들어 뒀으니 너네(팬)는 돈만 갖고 들어와.” SM사태로 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현실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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