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제왕적 1인체제 해체, K팝 전환기 맞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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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의 ‘문화적 관점에서 본 SM 사태’

SM 경영권을 둘러싼 관심은 온통 ‘누가, 얼마에 SM을 살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SM이 K팝이라는 문화를 판매하는 대표적인 회사임에도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SM이 만들어온 콘텐츠의 색깔은 유지될 수 있는지’ 등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단순히 ‘이수만 전 프로듀서가 경영을 잘못했다’로 끝내기에는 이번 사태의 함의가 결코 작지 않음에도 말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가 지난 3월 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가 지난 3월 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3월 7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를 만났다. 김 평론가는 “이수만 1인 지배체제의 해체가 한국 음악계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 수도, 한국 음악계의 다양성을 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SM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의 성공이 하이브 자본의 성공처럼 말하는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하이브가 투자한 것은 맞지만 실제 전략을 수립하고 운영한 것은 레이블의 독자적 재량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엔터산업은 전문적인 음악 제작을 위해 레이블 체제를 구축하여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SM은 굉장히 독특한 회사로 남아 있었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이끄는 외주업체 라이크기획이 SM이 제작하는 음악 프로듀싱 계약을 맺고 음악 제작에 관여하며 수익을 가져갔다. 1인 지배 체제가 유지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운영이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는 몰라도 이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거센 비판을 받는다는 점이다.”

-‘레이블’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자회사 같은 것인가.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과거 K-POP(케이팝) 산업은 프로듀서라는 불리는 특정 인물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투영한 회사를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며 성장했다. 실제로 3대 기획사라고 불렸던 SM, YG, JYP의 이름이 모두 프로듀서 이니셜일 정도로 이른바 ‘오너’의 존재감이 컸다. 그런데 이런 체제가 소속 아티스트가 많아지고,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아티스트 각자의 색깔이 반영된 다양한 음악을 만들기 위한 분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마치 기업이 회사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확장했다. 하이브라는 큰 회사 아래 어도어, 플레디스 같은 회사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가 된 것이다.”

-SM은 이런 변화를 거부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SM 아래에도 슈퍼주니어만 담당하는 SJ레이블, 일렉트로닉 음악을 담당하는 스크림 레코즈 등이 존재한다. 문제는 SM의 레이블은 타 회사들에 비해 구체화되지 않았고, 그룹의 핵심 프로젝트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통해 프로듀싱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케이팝 기업이 변화를 가져가는 가운데 독특한 구조였다.”

-이수만 프로듀서의 방식이 무조건 실패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이수만 프로듀서에 대해서는 경영자적 측면과 프로듀서적 측면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경영적 측면에서는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등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 동시에 그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남을 만한 성과를 만들어 온 것도 사실이다. 공과 과가 별도의 영역에서 동시에 존재하다 보니, 그를 맹목적으로 비판하기도 옹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현재는 잘못이 부각되며 앞으로 SM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 유력해 보이지만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그런데 그의 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프로듀서로서 만들어낸 결과물들까지 완전히 지워버려야 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광야’라는 컨셉이 비판을 받지만 에스파가 해당 컨셉을 기반으로 데뷔했고,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가 없다. 또 이를 버린다면 다른 그룹들과 어떤 차별점을 갖느냐의 문제도 있다. 이는 결국, 하이브든 카카오든 거대 회사의 레이블로 SM이 들어갔을 때 기존의 색채를 유지할 수 있느냐, 이수만 없는 SM의 색깔은 대체 무엇이냐는 논란과 이어진다.”

-SM을 인수하려는 하이브나 카카오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진 것인가.
“K-POP 시장 자체가 레이블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SM을 인수하는 것이 하이브든 카카오든 기존 색채를 지워버리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SM이 지금과 같은 온전한 형태로 레이블화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SM을 인수한다면 이수만 프로듀서가 구상한 것들이 이어질 수 있겠나. 당장 이성수 SM 공동대표가 그룹 NCT의 무한확장을 종료한다고 했다. 애초에 NCT는 기획부터 운영·유지 모두 이수만 프로듀서가 구상한 것을 현실화 한 것이다. SM 현 경영진은 이수만과 그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수만의 비전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SM의 기존 색채가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이브로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 경영진에 찬성하는 아티스트나 구성원들이 빠진다고 하면 그때도 SM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이브든 카카오든 SM을 인수한 후 레이블로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브나 카카오는 SM 인수로 어떤 이득을 노리는 것인가. 자칫 ‘승자의 저주’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투자 가치가 분명히 있다. SM 안에는 단순히 음악 레이블 뿐만 아니라 키이스트, C&C 같은 배우 레이블, 팬 플랫폼을 운영하는 디어유 같은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 하이브의 경우 방탄소년단이라는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상황에서 SM에 소속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흡수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음악적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SM의 연습생 풀까지 생각하면 굉장히 좋은 기회다. 게다가 하이브가 운영하고 있는 팬 플랫폼 위버스에 SM의 디어유를 더하면 독보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카카오는 팬 플랫폼, MD(굿즈상품), 영상 콘텐츠 사업 등의 2차 지적재산(IP) 분야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카카오가 멜론이라는 음원 사이트를 보유한 상황에서 SM 아티스트들의 음원 유통권만 독점해도 엄청난 성과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약세라 평가받던 케이팝 부문에서 단숨에 치고올라가며 상장 시 가치를 드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SM 사태가 다른 회사들의 인수·합병과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팬’의 존재 때문인 것 같다. 엔터기업은 결국 팬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 아닌가. 지금 SM 사태에서는 팬에 대한 고려가 사실상 없는데.
“SM 현 경영진이 ‘하이브에 인수되면 SM 가수들이 좋은 곡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팬들을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주주총회와 관계없는 팬들까지 신경쓰기 어려운 것은 안다. 그럼에도 엔터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SM 인수 후 팬들이 더욱 만족할 수 있는 형태의 개선 방안을 내놓고, 안정적인 미래를 약속하여 향후 그들의 의견을 검토하겠다는 등 그들을 안심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제대로 팬들에게 와닿는 형태의 소통이었는지 모르겠다. 이성수 SM 대표가 이수만의 역외 탈세 문제를 지적하며 거친 언어로 비판하고, 하이브 정진수 CLO가 카카오와 SM의 계약을 ‘을사늑약'이라 이야기하는 등 자극적인 단어가 난무한다. SM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들만의 유산(레거시)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하이브가 대세이지만 SM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데’ 하는 식이다. 실제로 한 시대를 풍미한 SM 소속 가수들의 곡을 후배 SM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이어가기도 한다. SM 차원에서 이런 부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런 문화적 유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팬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팬들이 소액주주가 돼 발언권을 얻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단합된 목소리가 없는 것 같다.
“팬덤도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 팬들은 SM이란 회사가 아닌 특정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최대한 피해를 받지 않는 쪽을 더 선호하기에 의견이 하나로 모이기 어렵다. 단합된 의견이 없다는 것 보다 큰 문제는 이런 사태가 장기화되고,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미뤄지거나 콘서트가 취소되는 경우다. 팬들의 상처도 깊어질 것이고 이는 K-POP 팬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은 최대한 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 돼 빨리 안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SM 사태도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사실상 일단락될텐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봐야하나.
“K-POP이 전환기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특정 프로듀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끌고가는 체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여럿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각자 잘하는 영역에서 책임을 지고 활동하는 방식으로의 전면적 개편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제왕적 지배구조를 가진 에스엠이 내부적 한계를 드러내고 이런 사태까지 왔다는 것이 시대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SM을 어디에서 인수하든 K-POP 시장에는 공룡기업 하나가 등장하게 됐다. 특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국내시장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세계시장의 음악 레이블들과 대결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닌가 싶다. 카카오가 SM을 인수해도 거대 기업이 등장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국내 시장 1등인 하이브의 경쟁자가 생겨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카카오가 운영 중인 각 종 플랫폼들에 SM 아티스트들이 결합하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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