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특위 아직도 ‘공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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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개혁’으로 원점 돌린 지 한 달

“시민 참여로 연금개혁 동력 찾아야”

국회 국민연금특별위원회(연금특위)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두 달 전 ‘얼마만큼 더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이냐’에 대한 토론을 이끌었던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접어들었다. 자문위에서 구체적인 보험료 인상폭(9→15%)이 거론되자, 여야 간사가 지난 2월 8일 “(보험료 말고) 구조개혁부터 하자”며 토론을 원점으로 되돌린 영향이 컸다. 한 달이 지났지만 자문위는 구조개혁 범위, 쟁점 등에 관한 구체적인 토론에 착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 연합뉴스

잠시 달아오르던 연금개혁 논의가 식어버린 것은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구성된 국회 연금특위가 반년간 한 일은 민간자문위를 구성해 이들에게 ‘개혁 초안’을 요구한 게 거의 전부였다. 각 당 차원의 입장 없이 각자의 학문적 소신을 굽힐 수 없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밑그림 그리기’를 통째로 위임해 혼란을 자초했다. 국회 연금특위는 심지어 민간자문위원들의 토론을 원활히 뒷받침하는 역할마저 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민간자문위가 ‘보험료와 연금액 개혁안’(모수개혁안)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3개월이 흐른 뒤에야 ‘모수개혁 놔두고 구조개혁 하자’며 토론을 흔들었다.

‘시민 500명 공론화위원회’ 구성 제안도 붕 뜬 상태다. 국회 연금특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월 1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민 500명을 모아 (연금개혁에 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자는 게 (연금특위) 대다수 의견이고 그렇게 될 것 같다”며 공론화위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강의 공론화 일정조차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 국회 연금특위 관계자는 “예비비로 공론화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까지는 정해진 것으로 알지만, 공론화 의제를 연금특위가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특위 활동에 맞춰 공론화 일정표를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연금개혁 로드맵’ 마련이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자문위 보고서 공개 등을 기점으로 조만간 또 한 번의 연금 논의 ‘모멘텀’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자문위는 지난 석 달간의 토론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정리해 국회 연금특위에 곧 제출한다. 국회 연금특위 관계자에 따르면, 연금특위는 이 보고서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한 구조개혁안을 집중적으로 다룰 ‘2기 민간자문위’를 구성하고, 4월에 끝나는 연금특위 활동 기간도 연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을 논의해야 하나 연금의 구조개혁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문가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①기초연금, 퇴직연금과의 조합 ②공무원·사학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과의 통합이다.

기초연금·퇴직연금의 경우, 소득별 상·중·하 계층 모두에게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 조합을 찾아내는 일이 관건이다.

일단 저소득층에게는 기초연금이 ‘노후소득 최저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초연금은 하위 70%의 노인들에게 사각지대 없이 지급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초연금만 의지하고 있는 저소득층에겐 액수가 작은 편이다. 현재 노인의 3분의 1가량은 국민연금 수급권 없이 월 32만원의 기초연금만 받고 있다.

최악의 노인빈곤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는 2020년부터 조금씩이나마 빈곤율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통계청이 집계한 노인빈곤율은 37.6%(2021년 기준·중위소득 절반 이하인 사람의 비율)이었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악’이지만, 2010년대 내내 40%를 넘던 노인빈곤율이 2020년부터 30%대로 내려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노인빈곤율 완화에 기초연금의 기여가 컸다고 본다. 저소득 노인들의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선 기초연금 지급액을 대폭 늘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언주로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 연합뉴스

2007년 월 8만4000원으로 시작한 기초연금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20만원, 30만원으로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40만원으로의 인상을 공약했는데, “앞으로 기초연금이 생계급여 수준(1인 가구 기준·약 62만원)이 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기초연금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폭 인상 때는 현재 ‘하위 70%’인 대상자를 좁혀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기초연금이 저소득층의 노후소득 보충 수단이라면, 퇴직연금은 중·상위층을 위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퇴직금은 ‘퇴직 때 받는 목돈’ 정도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은퇴 후 월급’ 역할을 할 잠재력이 있다. 매해 걷히는 국민연금 보험료(약 53조)만큼의 돈이 퇴직금으로도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으로 굴릴 수 있도록 제도만 잘 갖추면 중·상위층에는 국민연금만큼이나 든든한 노후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퇴직연금 제도는 어떻게 강화돼야 할까. 일단 일시금으로 찾아가려는 이들에게 ‘연금화’ 실익이 더 크다는 점을 설득시켜 퇴직연금 제도를 안착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 퇴직연금을 굴릴 ‘공적 기관’을 둘지 여부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이 퇴직금 대신 퇴직연금을 선택하고, 금융투자사를 통해 수익을 내고 있지만 통념과 달리 ‘퇴직연금 시장’의 수익률은 2% 안팎으로 높지 않다. 올해 국민연금이 큰 폭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간의 연평균 수익률은 6%대였다. 국민연금처럼 공공 투자기관을 만드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 외에 기초연금·퇴직연금의 기능을 강화하면 OECD 등이 권유하는 ‘연금 다층구조’가 한국사회에서도 가능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지난 2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개혁 목소리’ 토론회에서 “기초연금은 연금액을 높여 저소득층의 ‘최저소득 보장’ 수단으로 기능케 하고, 퇴직금은 연금화해야 한다”면서 적극적으로 공적연금 다층체계 작업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다만 다층체계론에 대해 “국민연금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정용건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 위원장은 “퇴직연금은 은퇴 후 본격적인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브릿지 연금’ 역할을 하는 정도라고 봐야 한다”면서 “퇴직금을 공공연금화해서 따로 굴릴 경우, 퇴직연금 기금을 가지고 국민연금 재원을 충당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금통합’은 어떻게 구조개혁의 또 다른 갈래인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과 국민연금의 통합’ 역시 손대기가 만만찮은 과제다. 통합을 주장하는 쪽은 형평성을 내세우는 반면 ‘하향평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서다.

2019년 기준으로 국민연금·공무원연금 수급자가 받는 돈은 각각 월 53만원, 월 284만원(국민연금연구원, ‘공적연금 제도 간 격차와 해소방안’)이었다.

공무원연금이 보험료가 국민연금의 2배(18%, 절반은 국가 부담)이고, 공무원들의 가입 기간이 더 긴 데다(국민연금은 17.4년·공무원연금은 26.1년), 소득대체율 역시 공무원연금이 더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은 보험료를 내던 청·장년 시기 월 100만원을 벌었다면 나중에 월 연금으로는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국민연금은 42만5000원(소득대체율 42.5%·40년 납부 기준)인 반면 공무원연금은 61만원(소득대체율 61%·36년 납부 기준)을 보장한다. 공무원연금의 기금은 2000년에 이미 바닥나, 정부가 적자분 1조4000억원가량을 매년 메우고 있다.

2015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가 입법한 기초연금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2015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가 입법한 기초연금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군인연금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군인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년 복무 기준으로 38%다. 특수직역 연금 가운데 가장 높은 급여 수준을 자랑한다. 국민연금에선 이 정도의 소득대체율을 보장받으려면 보험료를 38년 납부해야 한다. 거칠게 말해 군인연금은 국민연금의 2배 가까운 지급액을 보장하고 있다. 군인연금 기금 역시 오래전 소진돼, 정부가 매년 약 1조7000억원씩 투입하고 있다. 군인연금의 보험료는 14%로 절반은 국가가 부담한다.

사학연금 역시 수술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학연금의 재정수지는 아직 흑자이지만, 인구구조 변화로 빠른 기금소진이 예상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금전문가는 “저출생 쇼크 여파로 우리 생각보다 학교들의 폐교가 빠를 수 있고, 30~40대의 젊은 수급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 경우에도 연금을 그대로 지급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대책을 세울 주체조차 없다”고 말했다.

구조개혁 동력 찾을까 공적연금 구조개혁은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퇴직(연)금,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전반의 설계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다. 쟁점이 다양하고 이해관계자가 많아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보험료·연금지급액을 중심으로 한 모수개혁보다는 구조개혁에 대한 여론 지지가 높아 정부와 정치권이 노력한다면 ‘개혁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성인 1010명 대상으로 실시한 엠브레인퍼블릭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초연금, 공무원 연금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구조개혁)는 응답자가 56%에 이르렀다. ‘시급성을 고려해 기존 국민연금 제도 틀 안에서 개혁해야 한다’(모수개혁)는 응답자는 31%였다. 세대나 이념성향에 관계없이 구조개혁에 대한 지지가 전반적으로 더 높았다.

문제는 더딘 ‘연금 공론화’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후 연금개혁은 1998년(소득대체율 70→60%)과 2007년(소득대체율 60→40%·2028년 도달) 단 2차례 이뤄졌다. 16년째 ‘개혁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연금개혁 시도 역시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결국 좌초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전문가 그룹에선 ‘시민 참여’로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에 관한 구체적 팩트를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문위의 토론 역시 꼭꼭 숨기지 말고 회의록을 남기거나 생중계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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