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운명은 인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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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니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던 대부분의 사람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마침내 세계경제 10위권 안에 들었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1년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한다고 공표했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 중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는 우리가 최초다.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오랜 노력으로 전 국민적 소망을 이뤘으나 곧바로 곤두박질칠 위험 앞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병원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보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아기침대는 비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의 한 병원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보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아기침대는 비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2월 22일 통계청은 2022년 인구동향 조사 발표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8명으로 전년(0.81명)보다 0.03명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2.1 정도라고 하는데 이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59명이다.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제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 아니고 인구다. 기술력은 인구가 탄탄히 받쳐준 상태에서 더 높이 치고 나갈 수 있는 중요 요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구의 성장 없이 기술력 혼자만으로 성장은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대기업이 갖추고 있는 경쟁력으로서 기술력을 어떻게 더 높일까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 자체다.

지역소멸이나 초고령화 사회, 인구감소는 해묵은 주제다. 이는 이미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색 코뿔소’라는 명칭을 얻어가며 개선을 촉구받았다. 이번 통계청 발표가 인구와 관련된 분기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인구문제는 지역에서 인구 유출을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에서 통계청은 2030년보다 훨씬 이전에 5000만명 아래로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기존에는 5000만 인구의 붕괴 시점을 2030년으로 점쳤으나 무려 2~3년 정도를 앞당겼다. 심각한 경고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또 한 차례 앞당겨질 수 있다. 이제 인구문제는 지역소멸이나 지역소외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단계로 부상했다고 봐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나라의 운명은 인구에 달렸다

인구문제 다루는 정책이 실패한 이유 인구정책의 목표는 출산율이 아니라 생활 수준의 향상과 경제적 복지여야 한다. 저출생은 현상이자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 지역소멸이나 인구소멸 등 인구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왜 출산을 하지 않는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하나?” 등으로 잘못된 과녁을 설정하고 정책을 추진했다.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가임기 여성이나 그 가족은 현재의 삶에 너무 지쳐 있고, 또 경제적으로도 버겁기 때문에 출산하지 않거나 못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지역소멸이나 인구감소 현상이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높고 경제적 복지가 견고하면 아이는 자연스레 생긴다. 우리 사회는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결실이 국민에게 고르게 분배되지 않아 생활 자체가 힘든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를 놓고 불평등의 심화,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부른다. 10억원 이상의 자산가가 넘쳐나고 아파트값이 수십억원에 달하지만, 우리나라 월평균 임금은 320만원 정도다. 이는 고액 연봉자를 모두 합한 후 평균을 구한 값이기 때문에 평균의 함정이 존재하는 수치다. 이보다 중앙값을 구해야 정확하다. 굳이 구해보지 않더라도 300만원 미만의 월급쟁이가 훨씬 많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통계청이 지난 2월 20일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마냥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즉 핵심은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느냐다.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재정지출을 늘리더라도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나라의 운명은 인구에 달렸다

기후변화법, 덴마크와 미국의 교훈 인구문제는 국가 수준으로 인식하고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비로소 해결 가능하다. 국가 수준의 사안은 중앙정부의 인식과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이 협력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진다. 이런 의미에서 거버넌스는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덴마크와 미국의 사례를 통해 국가적 사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훈을 얻어보자.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대대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왔다. 법안 하나 없이 추진했다는 사실을 알고선 많은 사람이 놀란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법안을 마련해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 바이든은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치 인프라가 왜 그토록 취약한지 설명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백악관 국내 기후정책실과 국가기후TF를 가동 중이지만, 정권이 바뀌면 근본부터 흔들릴 게 뻔하다. 정책의 지속가능성의 기준에서 보면, 트럼프와 바이든의 기후변화 정책은 정반대다. 따라서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덴마크는 견고한 대응 기조를 펼치고 있다. 이는 덴마크가 기후변화법을 제정하면서 8개 주요 정당의 합의를 기초로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2019년 98%의 찬성률로 기후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국가 수준의 컨트롤타워는 ‘기후변화위원회’가 맡고, 기후법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형에 가깝다. 이런 거버넌스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방향이든, 사람이든 모두 바뀌어 인구문제 대응의 지속가능성과 정치적 인프라가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구문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100년지 중대사지만 당장에 꺼야 할 불이 있다면 지혜롭게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초당적인 합의 속에서 국가 수준의 컨트롤타워를 세워내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인구문제 대응 추진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송종운 나라살림연구소 지방의정센터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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