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 신카이 마코토가 재난을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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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속’이라는 건 끔찍하고 흉한 기억을 봉인하는 의식적 행위다. 영화는 끔찍한 기억을 없었던 일인 것처럼 일부러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자 재난을 직시해야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셈이다.

제목 스즈메의 문단속(Suzume)

제작연도 2022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22분

장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판타지

감독 신카이 마코토

캐릭터 디자인 타나카 마사요시

작화감독 츠치야 켄이치

미술감독 탄지 타쿠미

개봉 2023년 3월 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미디어 캐슬

㈜미디어 캐슬

일본 규슈의 시골, 학교에 가던 주인공 소녀 스즈메는 사는 동네 인근에 문이 있는 폐허가 있지 않냐고 묻는 낯선 청년을 만난다. 다크투어리즘이 유행이니까 뭐 그런 것에 빠져든 사람일 수도 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소녀는 이 청년을 감싸고 있는 아우라에 꽂힌다. 학교에 가다 다시 청년이 갔음 직한 폐허로 향하는 소녀.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물이 찰랑거리는 실내엔 낡은 문 하나가 있다. 문을 열어본 순간 문 안에는 낯선 시공간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곳으로 갈 수가 없다. 문을 통과하면 다시 그 자리, 건너편의 공간은 문턱 너머에만 펼쳐진다. 말하자면 피안(彼岸)의 세계다. 덜컥 겁이 난 스즈메는 엉겁결에 문 앞에 놓인 요석(要石)을 건드리는데, 그 요석은 고양이로 변해 떠나버린다. 말하자면 봉인을 풀어버린 셈이다.

재앙을 막기 위한 소녀의 사투

그리고 그 ‘사건’이 스즈메의 어떤 능력도 일깨운다. 다시 등교한 스즈메가 그 산속의 폐허가 있던 공간을 보니 연기도 아닌 이상한 기운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스즈메의 눈에는 보이는데 친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울리는 지진경보. 영화에서는 그 이상한 기운을 ‘미미즈’라고 언급하는데 영화를 보고 와서 돌아와 궁금해 찾아보니 미미즈(ミミズ)는 지렁이다. 생각해보니 과연, 하늘 높이 퍼지는 그 재앙의 징조가 꿈틀대며 하늘로 치솟다 땅으로 내려오는 모양새가 지렁이를 닮기는 했다. 다시 급히 폐허로 돌아간 스즈메는 그 청년을 만난다. 둘은 합심해 문을 닫아 재앙을 막았다. 청년의 이름은 소타. 교육공무원을 준비 중인 대학생인데 대대로 내려온 가업이 있다. 번역하기 쉽지 않은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일은 토지시(閉じ師), 말 그대로 ‘닫는 술사’ 정도로 재앙의 전조를 보면서 전국을 돌며 재앙이 빠져나오는 문을 단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때 고양이로 변한 요석이 이들 앞에 나타난다. 요석은 봉인으로 돌아가는 걸 거부하고, 소타를 스즈메가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생일선물-다리 하나 빠진 나무의자-로 만들어버리는 사술을 발휘한다. 졸지에 스즈메는 나무의자로 변한 소타와 함께 전국투어를 하며 토지시의 일을 대신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스즈메의 문단속>. 정확히는 소타를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요석이 변신한 고양이 ‘다이진’을 뒤쫓는데 떡 본 김에 굿한다고 가는 곳마다 재앙의 전조를 알리는 ‘미미즈’가 나타난다. 그걸 막기 위해 스즈메-나무의자 콤비가 사력을 다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로드무비다.

일본에서는 <너의 이름은>(2016)부터 <날씨의 아이>(2019)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세 작품을 묶어 재난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혜성이 떨어져 한 마을이 초토화된다거나(<너의 이름은>), 기후변화로 한여름에 눈이 내리고 비가 끊임없이 내려 도쿄가 물에 잠기는 파국(<날씨의 아이>)과 같은 이야기가 다크판타지로 해석된 현실 재난류의 영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아주 직접적으로 실제의 사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기억을 소환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영화에서 사실적으로 묘사된 재난의 순간 울리는 경보 메시지 같은 사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본 쪽 정보를 찾아보니 지난해 11월 이 영화가 개봉한 뒤 일부 관객들이 실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고 한다.

‘문단속’에 담긴 현대사회에 대한 급진비판

사실 주술행위로 해석된 ‘문단속’이라는 것이 보기 싫은 것, 끔찍하고 흉한 기억을 봉인하는 의식적인 행위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끔찍한 기억을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일부러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재난을 직시해야 다음 단계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인데, 남녀주인공의 애정행각이라는 당의정으로 포장된 현대사회에 대한 급진적 비판 메시지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감독의 전작들을 가족들과 함께 여러 번 봤다. 이 영화가 정식 개봉하면 역시 가족들과 함께 극장 나들이할 예정이다. 강력 추천한다.

‘재난 3부작’ 이후 신카이 감독의 행보는

㈜미디어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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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주목한 것은 그의 초기작 <별의 목소리>(2002),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때부터지만 당대의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주목하게 된 건 아무래도 <언어의 정원>(2013) 때부터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를 상업영화 감독으로 정상에 올려놓았던 영화는 역시 이 코너에서도 리뷰했던 <너의 이름은> 때였다. 당시 리뷰에서 ‘과거 그의 작품들이 이야기 구축에는 신경쓰지 않고 정지화면과 같은 그림빨, 영상미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을 소개하고 마침내 그런 비판점을 스스로 넘어섰다는 점이 이 감독을 주목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앞서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했는데 실제 이 작품부터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일본에서는 세 작품 연속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메가히트작을 잇달아 내고 있다. <너의 이름은>은 한국에서도 379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 중 현재까지 역대 흥행 1위작을 기록 중이다(최근 30·40대 원작만화팬의 성원 속에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2)의 실시간 관객 수 데이터를 보니 364만4128명(3월 1일 현재)이다. 곧 일본영화 역대 흥행 1위 기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앞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영상 작화를 넘어 이야기 능력도 정복하고 말았다, 고 이야기했는데 <날씨의 아이>에 이어 여전히 리즈 시절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규슈에서 시작돼 시코쿠, 고베, 도쿄로 이어지는 ‘전국재난 투어’가 이제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국민감독이 된 그의 장소 캐스팅 치고는 너무 상투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실제 있는 장소들을 그의 배경 작화에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 이 영화 개봉 뒤에는 한국관광객들에게도 유명 애니메이션 로케이션지로 등극할 장소가 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재난 3부작을 마무리한 만큼 다음 작품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다루게 될까. 기대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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