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김치 종주국’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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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김치와 가격 경쟁 어려워

자동화·현지화·차별화 등 요구

지난해 김치 수출이 1년 전보다 줄었다.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중국산 김치 수입은 크게 늘었다. 고물가와 작황 부진이 직접적 요인이다. 문제는 중국산 김치의 국내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산 김치의 판매가격을 낮춰 중국산 김치와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제조시설 공정의 자동화와 저장시설 확충과 같은 국내 김치산업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치의 품종을 다양화하고 맛과 기능성을 강화하는 차별화 전략도 요구된다.

지난해 12월 14일 인천시청 앞 광장인 인천애뜰에서 열린 ‘힘내라 인천! 다시뛰자 2023!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에서 인천시새마을회·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이 김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4일 인천시청 앞 광장인 인천애뜰에서 열린 ‘힘내라 인천! 다시뛰자 2023!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에서 인천시새마을회·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이 김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치 수출, 미국 늘고 일본 둔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2020년, 한국산 김치는 가파르게 팔려 나갔다. 수출액은 전년 대비 37.6% 급증한 1억4451만달러를 기록했다. 전통 발효식품인 김치가 면역력 강화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수출 상승세는 2021년에도 이어졌다. 전년보다 10.7% 증가한 1억5992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수출이 늘면서 2010년부터 이어졌던 무역적자도 이때 흑자(1917만달러)로 돌아섰다. 수출 대상 국가는 2011년 61개국에서 2021년 89개국으로 늘어났다.

김치 수출이 크게 늘어난 건 ‘한류 열풍’ 속에 한식 문화인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과 ‘코로나 특수’가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2020년의 열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년 전인 2018년 국산 김치의 수출액 국가별 분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9.2%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20.7%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난해 10월에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광고판에 김치 광고가 등장했다. 광고 영상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기획하고 국내 김치 제조업체인 대상의 글로벌브랜드 종가가 후원해 제작됐다. 30초 분량의 ‘Korea’s Kimchi, Now For Everyone(한국의 김치, 이제 모두의 김치)’라는 주제로 4주 동안 모두 6720회 상영된 영상은 한국의 김치를 맛보는 세계인들의 감정 변화를 흑백의 슬로 모션으로 보여주고 김치만 붉은 색감으로 표현했다.

국내 김치 제조업체들의 미국 시장 진입도 활발하다. 대상은 지난해 3월 미국 LA에 1만㎡ 규모의 김치공장을 완공하고 현지 생산에 들어갔다. 종가집 오리지널 김치, 비건 김치, 비트 김치 등 현지인 입맛에 맞춘 제품 10종을 연간 2000t까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보다 40%가량 수출이 늘었고, 풀무원은 전북 익산의 젓갈을 넣어 만든 전통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

‘김치의 날(11월 22일)’ 제정도 대부분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앞서 2020년 해외 각국에 김치의 우수성과 김치 종주국 한국의 김장문화·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11월 22일을 법정 기념일인 ‘김치의 날’로 제정한 바 있다. 김장하기 좋은 시기이고, 김치의 여러 재료가 ‘하나하나’(11) 모여 ‘스물두 가지’(22) 이상의 건강 기능적 효능을 나타낸다는 상징적 뜻이 담겨 있다. 현재 김치의 날을 제정한 곳은 미국 워싱턴과 캘리포니아·버지니아·뉴욕·뉴저지주와 영국 킹스턴구 등 6곳이다. 미국 미시간·메릴랜드·조지아주 등 3곳은 김치의 날 제정을 선포했고, 미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김치의 날 제정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에는 캐롤린 멀로니 연방 하원의원 주도로 연방정부 차원의 김치의 날 제정안이 하원에 발의됐다.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류 열풍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 주목도가 커진 상황에서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김치의 효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미국 내에서 한식당이 늘고 국내 김치 제조업체들의 현지화 작업도 활발하다. 현지인들이 김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김치의 날 제정과 같은 의미 있는 이벤트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의회 도서관에서 열린 김치 데이 행사에서 앤디 김 하원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의회 도서관에서 열린 김치 데이 행사에서 앤디 김 하원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치에 열광하는 미국 내 분위기와 달리 지난해 국산 김치의 전 세계 수출액은 전년에 비해 줄었다. 2020년과 2021년 누렸던 코로나19 특수가 2022년에는 사라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세청과 세계김치연구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1억4082만달러로 전년보다 11.9% 줄었다. 2016년(7890만달러)부터 이어지던 수출 성장세가 7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 지난해 김치 수출액을 국가별로 보면 일본이 6100만달러로 가장 많고 이어 미국(2911만달러), 홍콩(727만달러), 네덜란드(643만달러), 호주(588만달러), 대만(549만달러), 영국(531만달러) 등 순이었다. 무역수지도 1년 만에 적자를 봤다. 지난해 김치 무역수지는 2858만달러 적자로, 2018년(-4076만달러)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한국산 김치 최대 수입국인 일본의 수출 감소 영향이 컸다. 일본은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 김치 수출 대상국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2011년 83%에서 2017년 56%, 지난해 43.3%로 갈수록 비중이 쪼그라들고 있다. 젓갈 등을 거의 쓰지 않는 자국 내 기무치(김치의 일본식 표현) 수요가 여전한데다 최근에는 한국산 김치에 가까운 맛을 내는 기무치가 현지에서도 비교적 많이 공급되면서 한국산 김치 수요를 잠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엔저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비싸진 한국산 김치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고물가 등에 수입 김치 수요 증가

반대로 수입은 크게 늘었다. 지난해 김치 수입액은 전년보다 20.4% 증가한 1억6940만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수입액 증가율은 2010년(53.8%) 이후 12년 만의 최고다. 수입 김치는 모두 중국산 김치다.

김치 수입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고물가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배추와 무, 고춧가루 등 김치 재료 가격이 오르자 국내 시판된 국산 김치 가격도 인상됐고, 이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김치를 예년보다 더 많이 찾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5.1%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의 최고치를 보였다. 특히 외식물가는 7.7% 올라 1992년(10.3%)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인상된데다 국내적으로 기상 악화로 인해 농작물 작황이 부진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자료를 보면 폭염과 폭우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여름부터 추석 즈음까지 김치 재료인 농산물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15일 배추 1포기 평균 소매가는 1만204원까지 치솟으며, 1년 전(5448원)보다 87.3% 올랐다. 무 1개 가격은 3940원으로 1년 전(2048원)보다 92.3%나 상승했다. 김치 재룟값이 폭등하자 김치 반찬을 무료로 내놓지 않는 식당도 부지기수였다.

지난 1월 25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김치 판매대 모습 / 연합뉴스

지난 1월 25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김치 판매대 모습 / 연합뉴스

원자재 가격뿐 아니라 물류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업체의 생산비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원가 압박이 커지자 식품업체들은 일제히 김치 판매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9월 15일 CJ제일제당은 비비고 김치 가격을 평균 11.0% 수준으로 올렸다. 포기배추김치(3.3㎏)의 마트 가격은 3만800원에서 3만4800원으로 올랐다. 대상은 10월부터 종가집 김치 가격을 평균 9.8% 끌어올렸다. 이들 업체는 앞서 지난해 2월과 3월 한 차례씩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추가로 가격 조정을 했다. 두 업체는 지난해 9~10월 된장 등 장류 가격도 추가 인상했다.

국산 김치 판매가격과 재룟값이 뛰자 식당 등 외식업체들은 값싼 수입 김치, 즉 중국산 김치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수입 김치의 1t당 평균 가격은 643달러로, 국산 수출 김치(3425달러)의 18.8% 수준이었다. 이를 두고 중국산 ‘알몸 김치’에 대한 두려움보다 물가 공포가 더 무서웠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알몸 김치’는 2021년 3월 중국에서 포클레인으로 배추를 운반하거나 상의를 벗은 남성이 구덩이에 들어가 일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국민적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2021년 연간 김치 수입액이 1억4074만달러를 기록, 전년보다 7.7% 줄어들기도 했다. 당국이 국내 업체와 동일하게 해외 김치 제조업체에도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을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입 김치 위생관리 규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국산 김치 대비 훨씬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김치의 국내 수요를 꺾기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알몸 김치 영상 파문으로 충격이 컸던 2021년 당시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4월 20~30일 국내 음식점 10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식업체 중국산 김치 파동 영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산 김치 파동 전후 수입 김치 구매 비율은 47.1%에서 43.1%로 4.0%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중국산 김치 파동 이후 국산 김치로 바꿀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없다’고 답한 비율도 67.9%에 달했다. 업종별로 보면 중식(81.2%), 서양식(70.0%), 김밥 및 기타 간이음식점 (69.9%), 한식(62.6%), 일식(50.0%) 순으로 국산 김치로 바꿀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수입 김치를 국산으로 바꾸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의 53.2%가 국산 김치 단가가 비싸다고 응답했다.

알몸 김치 파동과는 별개로 중국산 김치에 대한 국내 수요가 꾸준했다는 의미다. 2019년 3월 6일 농림축산식품부의 ‘김치산업 육성 방안’ 발표 기자회견에 동반 참석한 당시 하재호 세계김치연구소장은 “중국산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판을 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중국산 김치를) 먹을 만하다는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국내 들어오는 중국산 김치의 가격이 ㎏당 대충 1000원에서 1200원 정도 된다. (반면) 국내산은 4000원 내외 수준”이라고 했다.

김치 종주국 위상 정립, 어떻게

국내 김치산업은 중국산 김치의 위협과 국내 소비 유형의 변화로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소비 측면에서는 1인 가구 증가, 저염 식품 선호도 증가, 편의성 중시 경향 등으로 매년 줄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0년 10월 내놓은 ‘국내 농산물 수요 확대를 위한 김치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보고서를 보면, 1인당 평균 김치 섭취량(1인 1일 기준)은 2008년 79.4g에서 2018년 63.0g으로 연평균 2.29%씩 감소했다. 같은 기간 여성의 연평균 김치 섭취량 감소율은 3.15%로, 남성(1.67%)에 비해 높았다.

지난해 11월 29일 부산 사상구 엄궁농산물도매시장에서 도매시장종사자들과 새마을부녀회 등 관계자들이 김장배추를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9일 부산 사상구 엄궁농산물도매시장에서 도매시장종사자들과 새마을부녀회 등 관계자들이 김장배추를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김치산업의 전반적인 개선이 시급하다. 박기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산 김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김치 제조시설 공정의 자동화가 시급하다. 또 저장시설의 확충도 중요하다. 배추는 저장하지 않으면 금방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가격이 쌀 때인 봄에 배추를 신선하게 저장해뒀다가 여름철 물량이 부족해질 때 보급하는 식이다. 정부는 이 시설을 업체들이 공동 이용할 수 있도록 임대료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 측면에선 한국산 김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차별화와 현지화, 원료 수급의 안정화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김치 국가명 지리적 표시제’가 대표적인 차별화 방안 중 하나다. 국산 원료를 사용해 우리 고유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김치에만 ‘한국 김치(Korean Kimchi)’ 표기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 간 이견이 크다. 김치를 담그는 데 수십 가지 재료와 양념이 들어가는데 국산 원료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부터 난제다. 예컨대 김치를 담그는 주원료(최종 제품에 혼합된 비율이 높은 순서로 3개 이내의 원료)인 고춧가루의 경우 김치 제조업체들은 수출용에는 값싼 외국산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국내 농가들은 값싼 수입 고춧가루를 쓰도록 허용하면 농가의 생산기반 붕괴뿐 아니라 한국산 김치의 차별화와 저변 확대라는 제도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한다. 해외 현지에서 한국산 김치를 생산하는 국내 김치 제조업체들의 경우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들을 활용해서 김치를 담가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한국산 김치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원칙론과 현실론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당국이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위협받는 ‘김치 종주국’ 위상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국내 김치산업 측면에서 보면 중국산 김치와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식당 주인한테 중국산 김치를 쓰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국산 김치의 가격대를 하향 평준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김치의 맛과 기능성을 향상시키고 품종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수출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때 김치 수출이 늘었던 것은 특수한 상황으로 봐야 한다. 품종과 가격대를 다양하게 구성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미국 내에서 한국산 김치가 프리미엄 상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확산하고 있듯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산 김치를 떠올리면 맛과 품종에서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김치산업 육성 방안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육성 방안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짜일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김치의 맛과 품종을 개선한 김치 종균을 업체에 무상으로 보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또 현지화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수출용 김치찌개의 경우 이슬람 국가에는 돼지고기를 활용하지 않는 레시피를 개발해 보급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처럼 시장이 포화상태인 국가에 대해서는 김치의 기능성을 강화한 제품 수출에 주력하면서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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