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시똥 누는’ 쑥국 선생님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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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서해초 5학년 4반 어린이시집 <우리 반이 터지겠다>

“어머니가 빨아놓은 빨래가 잘도 말라요/ 이젠 정말 봄이 되었나 봐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쓴 시 앞부분이랍니다. 하교 후 동시 숙제를 하려고 봄빛 가득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엎드려 끙끙거리는데,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넣어놓은 빨래가 눈에 들어왔지요. 본 그대로 써서 냈습니다. 숙제 검사를 하던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거 어디서 베꼈냐”였습니다. 아니라 해도 믿어주지 않더군요.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아직도 마음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송숙 선생님(왼쪽)과 <우리 반이 터지겠다> 표지 / 도서출판 학이사어린이

송숙 선생님(왼쪽)과 <우리 반이 터지겠다> 표지 / 도서출판 학이사어린이

재미난 시 너무 많아 선별 어려워

전북 군산서해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시와 동식물,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쑥국 선생님이 계시니까요. 쑥국은 송숙 선생님의 닉네임입니다. 선생님은 해마다 아이들과 학교 공터에 화분을 들여 꽃을 심고 밭을 일구며 작은 연못도 가꿉니다. 선생님과 같이 일을 하는 아이들은 이곳에 찾아오는 곤충들의 이름을 알아가며 ‘시똥 시간’에는 시를 씁니다.

<우리 반이 터지겠다>는 군산서해초 5학년 4반 어린이 25명이 쑥국 선생님과 2022년을 함께 생활하며 겪은 일을 시와 그림으로 엮은 어린이시집입니다.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 가족들, 자연과 함께한 일상, 삶의 지혜를 깨닫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나가는 소중한 순간들이 솔직하고도 엉뚱한 아이들의 문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쓴 시도 많고 수준도 높아 시를 선별할 때마다 선생님과 출판사는 머리를 싸맨다고 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읽다 보니 재미있는 시가 많아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시집 제목은 송은서의 시 ‘우리 반 쉬는 시간’에서 가져왔습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우리 반은/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뛰어다니는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실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한데 “이러다가/ 우리 반이 터지겠다”고 합니다. 풍선 같은 교실이 소리로 가득 차 포화상태가 되면 펑 터진다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인상 깊은 시는 이서권의 ‘국어시험지’입니다. 5학년이 된 후 처음으로 국어 100점을 맞아 엄마한테 기분 좋게 보여줬더니 대뜸 “너 이거 뭐니? 남의 거 베낀 거 아니야?” 했답니다.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100점이라 “정말 뿌듯”했다고 의연하게 마무리합니다. 기분이 좋은 엄마가 웃는 얼굴로, 반어법으로 한 말이겠지요. 그래도 아이는 서운할 수 있으니, 칭찬은 돌려 말하기보다 직접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소중한 시 책으로 엮어 선물

화단이나 밭, 연못에 찾아온 동물이나 농작물 수확이 시의 소재에서 빠질 수 없겠지요. 김누리는 “이서권이 내 어깨에/ 지렁이를 던”(‘지렁이’)지는 장난을 쳤고, 깜짝 놀라 어깨를 털었는데 다행히 지렁이가 시멘트 바닥이 아닌 마늘밭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또 마늘을 수확하는데 “한 번에 안 뽑혔다”(이하 ‘마늘’)며 뒤로 넘어질 뻔할 만큼 힘을 줘 뽑았답니다. 뽑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작아 “쪼끄만 게 힘은 세네” 한마디 툭 던집니다. 이태연은 수확한 마늘을 까는 어려움을 옷에 비유한 시 ‘옷을 꽉 껴입은 마늘’을 썼습니다. “오늘 마늘을 캐고 껍질을 깠다./ 마늘은 옷을 꽉 껴입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옷을 꽉 껴입었나 보다./ 옷을 하나하나 벗기는데 힘들었다./ 마늘의 옷을 다 벗겼으니/ 마늘이 시원하다고 할 것 같다.” 마늘을 수확하는 시기가 초여름이니 마늘이 시원할 만도 합니다. 마늘뿐 아니라 벼도 수확하지요. 최다빈은 3교시에 낫으로 벤 벼를 “손으로 꼭 쥐고 있다가/ 홀태로 훑었더니/ 낟알이 후두두두 떨어졌다”(이하 ‘벼’)는데 떨어지는 낟알을 보니 쾌감이 엄청났다며 “다음에 또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일들이었을 테니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송시우는 직접 키운 땅콩을 먹던 날 “힘들게 물 주며 키웠더니/ 땅콩이 효도를 하는구나”(‘땅콩’)라고 합니다. 신민은 교실 창문의 매미를 보고는 “우리 반이/ 곤충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같다”(이하 ‘매미’)면서 “선생님이 매미에게/ 우리 반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동식물의 관찰과 감상은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송민채는 “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이하 ‘미꾸라지’) 미꾸라지가 수염이 있어 “왠지 할아버지 같다”면서 “너 어린 미꾸라지 맞지?” 말을 건네고, 이우찬은 깨워도 안 일어나는 동생을 애벌레와 번데기로 비유하며 “번데기를 콕콕 건들면/ 이불을 버리고 일어나/ 나비가 된다”(‘내 동생’) 하고, 이승제는 학교 오는 길에 본 지렁이똥이 “울퉁불퉁 여드름 같다”(‘지렁이똥’)고 합니다.

시 속에는 하은후, 임근우, 이우찬, 최다빈, 조범준, 신이환 등 반 아이들이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이중 이길성이 가장 많이 나오지요. 함준혁은 “길성이는 친구를 잘 놀린다./ 길성이는 내가 누굴 좋아한다고 놀린다./ 그런데 사실이라서 반박을 못 한다./ 길성이는 착하지도 않고/ 나쁜 애도 아니다”(‘이길성’)라고 합니다. 조범준은 길성이와 ‘도둑과 경찰’ 놀이를 하고, 신민은 “이길성이랑 수학 시험 대결”(‘음치’)을 합니다. 이길성의 시에도 친구들과 내기한 내용이 많습니다. “우찬, 근우, 준혁, 범준이랑 진실게임”(‘진실게임’)을 했는데, “얘들은 벌써 이성에 눈을 떴다”고 합니다. “준혁이랑 딱지치기”(‘고수’)를 하고, “신민이랑 시험 내기를 했는데/ 신민 100점, 나 77점”(‘벌칙’)을 맞아 벌칙으로 쉬는 시간마다 신민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했답니다. 이길성은 내기를 좋아하는 개구쟁이 같습니다.

쑥국 선생님은 그동안 어린이시집 <시똥누기>, <분꽃 귀걸이>, <호박꽃오리>, <감꽃을 먹었다>, <돌머리가 부럽다>를 엮었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우리 반이 터지겠다>는 6학년이 되는 반 아이들에게도 큰 선물입니다. 올해에는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요. 그 아이들이 괜히 부럽습니다.

▶시인의 말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김경미 지음·민음사·1만2000원

[김정수의 시톡](19)‘시똥 누는’ 쑥국 선생님반 아이들

펜과 함께 놓여 있던 그 메모지, 그 램프, 그 방, 그 호텔, 그 마을, 그 밤. 다음 날 아침엔 안개 속으로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졌던….

▲저녁의 마음가짐
박용하 지음·달아실·1만원

[김정수의 시톡](19)‘시똥 누는’ 쑥국 선생님반 아이들

다 사랑할 수는 없으리. 다 노래할 수는 없으리. 나는 시를 멈춘 적이 없었다. 시는 나의 언어였고 언어는 나의 일이었다.

▲럭키와 베토벤이 사라진 권총의 바닷가
송진 지음·작가마을·1만2000원

[김정수의 시톡](19)‘시똥 누는’ 쑥국 선생님반 아이들

백오십여덟 개의 길고 흰 천, 지구의 그림자는 피투성이 보름달.

▲크로노그래프
강순 지음·여우난골·1만2000원

[김정수의 시톡](19)‘시똥 누는’ 쑥국 선생님반 아이들

그리고 여전히 신은 불면의 질문들에 대답이 없다. 슬픔의 내핵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창문이 밝아온다.

▲아돌프, 내가 해롭습니까
임재정 지음·시인의일요일·1만2000원

[김정수의 시톡](19)‘시똥 누는’ 쑥국 선생님반 아이들

믿어, 비 올 때의 물속이 가장 고요하다는 거. 불빛을 떠받치는 것은 어둠이라는 거.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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