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

사랑의 이해 - 수치심 탓에 어긋났던 사랑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종영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왈가왈부가 여전하다. 논쟁과 관심은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 못지않다. 아마도 방영 내내 시청자와 일종의 ‘게임’을 하듯 밀당을 거듭하던 그 탄력이 한동안 유지되는 듯하다. 나는 이혁진의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다. 대신 55분으로 축약된 ‘수수커플’ 둘만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았다.

수치심은 더 큰 어긋남과 상처로 덮이고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날 뻔했던 남녀는 각자의 이유 속으로 함몰된다. 사진은 <사랑의 이해> 한 장면

수치심은 더 큰 어긋남과 상처로 덮이고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날 뻔했던 남녀는 각자의 이유 속으로 함몰된다. 사진은 <사랑의 이해> 한 장면

“수치심은 사랑을 어떻게 무너뜨릴까?”

이런 낯선 질문을 던진 한국 드라마는 처음이다. 수영(문가영 분)과 상수(유연석 분)는 제대로 된 첫 데이트 직전 횡단보도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식당 앞에서 불시의 복병을 마주한다. 상대를 만난 게 아니라 당혹스럽게도 자신의 수치심과 맞닥뜨린 것이다. 상수는 도망쳤다가 잠시 후 다시 돌아오지만, 그 뒷모습을 본 수영은 그날로 마음을 접는다. 우린 안 돼.

상수도 수영도 수치심이 건드려졌다는 것만 알지 그 정체는 모른다. 이것은 상대방이 뭘 해서도 무슨 일이 발생해서도 아니다. 본인의 문제이기에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

“망설였잖아요. 왜 그랬어요?”

“나도 모른다고요! 금방 다시 돌아왔어요. 그런데 수영씨가 없었어요.”

수치심은 더 큰 어긋남과 상처로 덮이고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날 뻔했던 남녀는 각자의 이유 속으로 함몰된다. 상수는 돈이면 채워질 거라는 남들의 보편 상식에 한번 속아보기로 한다. 너의 99%를 채워주겠다며 밀어붙이는 미경의 조급함도 상수의 타협이 자석처럼 끌어당긴 것일 수 있다. 수영은 자격지심을 따르기로 한다. 사정이 절박한 종현에게 ‘사다리’가 돼주면, 사회적 계층을 매 순간 곱씹게 되는 은행이라는 직장에서의 비정규직 딱지가 좀 ‘편해’질까 싶기도 하다.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결핍, 동생 죽음 이후의 단절. 그렇게 여전히 옥죄는 결핍감 속을 비집고 피어난 갈망에 대한 수치심. 이해(利害)와 이해(理解) 사이는 그만큼 멀다.

결핍이 메워지면 수치심도 극복될까 싶어 상수는 부유한 집안의 상대를, 수영은 자신보다 궁한 처지의 상대를 사귄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오해였다. 그 오해는 엉뚱한 파장을 연달아 불러와 주변 수습을 더 어렵게 한다.

달린 랜서의 책 <관계 중독>은 수치심과 다른 감정을 혼동하지 말고 예민하게 알아채라고 권한다.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의 장본인 지니조차 가장 큰 수치심과 사랑의 연결고리에서 헤맨다.

수치심을 덮기 위한 선택은 애당초 올바른 방향부터 일부러 외면하게 만든다. 수영은 가족을, 상수는 자신의 망설임을 더 깊이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타이밍에 다른 쪽 방향에 서 있는 ‘나를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 과제를 성급히 해결하려 든다.

오답노트 여부는 어쩌면 당사자만이 안다. 나와 만나는 상대조차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수치심을 헤아리고 다루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아무리 길고 복잡해도 반드시 본인 손으로 해야 한다. 모래성을 짓고 스스로 무너뜨리기 일쑤였던 수영과 ‘변수’를 피하는 길을 걸으려던 상수에겐 온전함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손도 안 잡고 끝낸 ‘섭섭한’ 엔딩이지만, 그들은 세상에 마치 둘만 있는 듯 걷는다. 아무도 못 보는 공간에서 이제부터 둘만의 서사를 쌓겠다는 듯이.

<김원 드라마평론가>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