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길이 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요즘 ‘지방’에 꽂혔습니다. 여기서 지방이라 함은 수도권 이외 지역을 일컫습니다. 수도권보다 뭔가 열등한 변두리 느낌을 주지요. 지금부터 지방 대신 ‘지역’이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뉴스를 봐도 지역(local) 소식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맛집 얘기가 나와도 서울보다 지역 음식점이나 카페에 더 눈길이 갑니다. 여행을 넘어 아예 한달살이를 꿈꾸기도 합니다. 워케이션(일+휴가)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내친김에 귀촌·귀향까지 선택의 범주에 넣어버립니다.

[편집실에서]지역에 길이 있다

실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지역소멸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초·중·고등학교가 줄을 잇습니다. 정원 모집조차 쉽지 않은 지방대의 위기는 어제오늘 현상이 아닙니다. 14년째 동결 중인 등록금 인상 카드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지만 향후 2년간 인상은 없다고 교육부가 못 박았습니다. 문화체험 기회를 비롯한 각종 기반시설 격차는 새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여차하면 지역의료기관 다 제쳐두고 서울의 ‘빅5’를 향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숫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역의대생들마저 수도권 의대에 들어가겠다고 반수나 재수를 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 앞에선 할 말을 잃습니다.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라남도에 순천대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정치권의 구상은 현업 의료단체의 반발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1인당 환자비율을 놓고 볼 때 신설 필요성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전국의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방안도 좀처럼 여론의 힘을 받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정부가 잇따라 대책을 내놓습니다. 최근에는 전국 지자체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넘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여의도 3분의 1에 해당하는 비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여부를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하게끔 하겠답니다. 방향은 옳습니다. 문제는 난개발입니다. 가뜩이나 얘기가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달려드는 바람에 지역의 특성은 고사하고 천편일률적인 사업이 판을 치는 형편 아닙니까.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치적이랍시고 갈아엎는 통에 예산 낭비도 심각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자체별로 조성한 남북교류협력기금 규모가 광역단체만 해도 1740억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남북 교류가 꽉 막혀버린 지금은 또 기금 용도를 놓고 장고를 거듭 중이라지요. 올해 시작된 고향사랑기부제도 지자체 간의 과당경쟁으로 흘러버리면 내실은커녕 무늬만 요란한 부실이벤트로 전락하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워낙 복잡하고 오래된 문제라 어지간한 충격파로는 꿈쩍 안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마음만 급해서 함부로 달려들 일도 아닙니다. 당장 지자체 차원에서 2022년부터 적립하기 시작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취지에 맞게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방안부터 잘 궁리해야 합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