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연금개혁, 퇴직급여와 개인연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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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서 시도되는 연금개혁은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 관점만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 연금급여와 보험료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틀 안에 생각을 국한할 경우 머지않아 기금이 고갈된다는 재정계산의 결과를 감안하면 제도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연금수급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액 평균이 2021년 말 기준 약 55만원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연금의 보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의 노후소득보장체계는 보장수준과 재정지속성이 충돌하는 양면적 문제를 안고 있다.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 연합뉴스

우리 연금체계는 아직 자리 잡는 과정에 있고 보장수준이 취약하다. 높은 노인빈곤율이 잘 말해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강한 소득재분배적 요소, 즉 국민연금 내에서 소득이 취약한 계층에게 유리하도록 급여 수준을 조정하는 기제의 존재가 중상위소득계층의 국민연금에 대한 기대 수준을 저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연금에 국한하지 말고 전체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의 구조에 시각을 둘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틀 안에서는 가능한 모든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의 조합을 검토해도 급여의 보장성과 재정의 지속성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전체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의 구조에 시각을 두고 보면 투입한 재원에 비해 노후소득보장에 기여가 낮은 제도가 눈에 보인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그것이다.

고용주인 기업이 노동자를 위해 국민연금에 납부하는 보험료(2018년 18조6000억원)보다 2배에 달하는 더 큰 부담을 하는 것이 퇴직금(2018년 36조8000억원)이다. 기업이 국민연금 보험료로 노동자 연간 월급여의 54%를 부담하는데 퇴직금에 대한 기여금은 연간 월급여의 100%를 부담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동자의 노후소득에 의미 있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퇴직금제도, 공적연금화 검토해야

노동자들의 급여에서 직접 공제되는 노동자 몫의 국민연금에 대한 부담은 2018년 기준 23조3000억원이다.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합해도 공적연금 전체의 노동자 몫은 31조5000억원이다. 이에 비해 개인연금과 퇴직연금(IRP)으로 구성되는 사적연금에 제공하는 개인들 몫의 부담은 2018년 기준으로 각각 33조1000억원과 3조원으로 모두 36조1000억원에 달했다. 노동자들이 기여하는 몫이나 기업이 노동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몫이나 두 경우 모두 사적연금에 기여하는 부담이 공적연금에 제공하는 것보다 큰 것으로 나타난다.

적립된 퇴직금과 개인연금 펀드의 수익률과 수수료 구조를 살펴보자. 퇴직금 적립금의 수익률은 2021년 2.0%에 그쳤다. 개인연금의 수익률도 높지 않았다. 광고비, 보험판매원의 인건비, 임대료 등 금융기관의 비용구조를 감안할 때 당연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총비용 부담률은 0.08%에 그치나 퇴직연금은 평균 0.45%, 개인연금의 경우 0.37%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개인연금은 낮은 계약유지율의 문제도 가진다. 10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는 비율이 절반이 안 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 논의 관련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 논의 관련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퇴직금은 기업이 사외에 적립한다.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운용하는 것인데 투자 리스크, 낮은 수익률, 높은 수수료의 문제가 있다. 또 기대수명 이상의 장수, 인플레이션에 대해 취약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연금보다는 일시금으로 미리 받아가는 것을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일시금 수령의 비중은 계좌 기준으로는 95.7%, 금액 기준으로는 65.7%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노후소득보장체계로 기능하기 어렵다. 동일한 자원을 공적연금체계로 투입했을 때의 노후소득보장효과와 비교했을 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된다.

투입한 재원에 비해 노후소득보장에 기여가 낮은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투입재원이 큰 퇴직금이 노후소득보장체계에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나라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그러기에 여기가 연금제도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기업이 근로자를 위해 부담하는 재원의 측면에서 퇴직금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규모의 보험료를 국민연금에 납부하는데 이 국민연금의 틀 내에서만 제도개혁을 하자면 국민에게 적절한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득비례로 운영되는 국민연금 II

퇴직금제도를 공적연금으로 운영해야 한다. 기존의 국민연금과 별도로 소득비례연금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중상위 소득계층의 경우 퇴직금제도를 국민연금처럼 공적연금화하는 것을 그 재분배적 요소로 인해 꺼리는데 공적연금 내에 별도의 펀드를 만들어 현재의 퇴직금제도처럼 소득비례적으로 운영한다면 가입을 꺼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펀드 I은 현재와 같이 운영함으로써 연금에서의 재분배적 기능을 유지하고 펀드 II는 소득비례연금으로서 기여금과 기금수익률 등을 감안해 재정지속성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높은 급여액을 설정한다. 퇴직금제도의 국민연금 II로의 전환은 강제성을 부여하는 경우 현재의 공적연금에 대한 신뢰수준을 생각할 때 반작용이 우려되므로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

더불어 소득비례적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 II에는 기업의 기여분과 동액의 근로자 기여분을 노동자가 추가할 수 있도록 하며 이 역시 선택적으로 운영한다. 이를 선택한다면 당연하게 혜택은 두 배가 돼야 할 것이다. 노동자는 이 경우 늘어나는 기여금의 부담을 기존의 개인연금을 해지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선택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기존의 개인연금에 대한 소득공제 지원은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비효율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에 대한 정부의 소득공제를 통한 지원은 비중립적일 뿐 아니라 세수손실의 의미를 가진다. 조세지원이 소득상위계층에만 혜택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문제다.

퇴직금과 개인연금에 투입되던 기업과 개인들의 재원이 소득비례적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 II에 집중된다면 중상위소득계층의 경우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소득의 보장이 충실해지고 부동산투자 등 별도의 노후대책의 필요성은 크게 줄 수 있다. 이렇게 연금제도가 개혁된다면 정부는 가용재원을 동원해 취약계층의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정책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정부의 일반재정을 동원한 연금재정 지원은 소득취약계층에 대한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정책목표에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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