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이 비디오 - 20년 전 그 인물·설정, 왜 다시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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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다. 가만, 인물 이름도 비슷하다. 감독은 “<목두기 비디오>는 당시 치기어린 영화학도로서 만든 작품”이라며 “오랫동안 숙제처럼 남아 있던 것”이라 했다. 아쉬운 것은 재해석이나 확장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목 마루이 비디오(Marui Video)

제작연도 2020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7분

장르 공포, 미스터리

감독 윤준형

출연 서현우, 조민경

개봉 2023년 2월 2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 CGV

마루이유한회사

마루이유한회사

어어. 이건 아닌데. 신기한 경험이다. 감독의 전작 <목두기 비디오>(2003)를 본 것도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다. 신기한 경험이라는 건, 영화를 보면 볼수록 또렷이 <목두기 비디오>의 장면들이 떠올랐다는 거다. 십수 년이 흘렀으면 잊힐만한데도.

여관방에서 찍힌 화면 속에 우연히 등장하는 ‘유령’은 아버지를 찾았고, 그 여관을 운영하던 주인이 관련된 살인사건이 있었다. 주인은 여관 맨 꼭대기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입구는 철제창살로 막혀 있었다. 똑같다. 가만, 이름도 비슷하지 않았나. 가족을 몰살하고 죽은 장남의 이름도 경호였다. 심지어는 여관주인의 이름도, 여관주인의 쌍둥이 형제인 아버지의 이름도 성만 다를 뿐 똑같지 않았나.

전작 <목두기 비디오>와 연관성?

몇몇 설정만 바뀌었을 뿐이지 거의 비슷한 탐문 절차와 취재를 통해 결론에 도달한다. 아,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목두기 비디오>는 여관방에서 만든 도촬 영상이다. 도촬 영상에 홀연히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교복 입은 소년 유령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과거 사건들의 연결고리를 다큐제작팀이 발견해낸다는 이야기다. 기억에 따르면 <목두기 비디오>가 촬영된 곳은 서울의 한 여대 근처였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부산의 일가족 몰살사건으로 넘어간다. <마루이 비디오>의 무대는 처음부터 부산이다. 1992년 ‘동성장’이라는 여관에서 느닷없이 여자친구에게 칼부림을 벌이고 실성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때 이들이 설치해놓은 비디오카메라 속에 문제의 교복 입은 소년 유령 영상이 찍혔다는 설정이다. ‘마루이 비디오’는 검찰 내의 은어로, 사건현장을 적나라하게 기록해놓은 형사사건 자료를 말한다. 이를테면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고문하는 장면 따위를 담은,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종류의 자료를 말하는 것이라고 영화는 설명하고 있다.

저 비디오가 유명세를 갖게 된 것은 혼자 실성해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 뒤의 거울에 10대 후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교복을 입고 나와 “아버지…”라고 하는 장면이 찍혀 있는 심령영상 때문이다. 이 소년 유령과 살인사건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우선 궁금한 점. 생각해보니 <목두기 비디오> 때도 도대체 ‘목두기’란 게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마루이 비디오라는 은어로 통용되는 비디오가 진짜로 있긴 있는 걸까. 요즘엔 거의 사라졌지만 사스마와리(察廻·경찰서 순회), 도쿠다이(단독)와 같은 일본어 잔재가 언론계에 있었다. 검찰 쪽에서도 ‘빠다질(버터의 일본어 발음으로 플리바게닝)’이라는 일본어에서 기원한 ‘입고(수감시킨다)’와 같은 은어를 쓰니 저런 단어가 실제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마루이(まるい)는 ‘공이나 원 모양을 그리며 순환하는’ 정도의 의미인 모양이다. 참, 언론계 은어인 마와리도 돈다는 뜻이었지.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판단은 아무래도 저 마루이 비디오라는 은어까지 다 창작인 듯싶다.

페이크다큐가 성공하려면

영화는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팔짱을 끼고 보게 된다. 파운드푸티지나 페이크다큐라는 게 성공하려면 ‘이건 진짜일까’라는 헷갈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십수 년 전 봤던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따라가니 도무지 이입이 되지 않는다. 감독이 굳이 이 시점에 거의 똑같은 설정의 영화를 다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확장된 면은 있다. 1시간 남짓 분량이었던 첫 영화에 비해 상영시간이 거의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의혹 제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디오의 저주가 계속 이어진다. 취재에 나섰던 여기자에 빙의해 사건은 종결된다. 마루이 비디오 속 남자가 중얼거리는 혼잣말의 의미도 뚜렷해지고. 결국 <목두기 비디오>와 이번에 만든 영화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감독은 “<목두기 비디오>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파운드푸티지물인 셈인데 당시 치기어린 영화학도로서 만든 작품”이라며 “내겐 오랫동안 숙제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영화를 만들 때 아쉬움이 많이 남았나 보다. 두 영화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답은 리메이크다. 아쉬운 것은 재해석이나 확장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이크다큐 홍보마케팅의 기원 <블레어 위치>

마루이유한회사

마루이유한회사


시사회장에서 명함을 건네받았다. ‘프러덕션秀’라고 찍혀 있다(사진), 다큐멘터리PD 김수찬이라고. 밑에는 제보 전화와 인스타그램이 있다. ‘명함에 휴대전화번호도 개인 e메일도 공개하지 않다니’ 생각하며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니 주인공 이름이 김수찬이다.

그러니까 실제 인물이 아니라 저 명함도 마케팅이다. 영화 개봉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정체불명의 영화를 만든다는 ‘마루이유한회사’라는 회사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아, 이거까지 홍보는 아니고 실제로 궁금증을 품은 누리꾼의 조사인 듯싶다. 이 누리꾼은 영리하게도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 등의 등급 대기 게시물 등을 활용해 영화감독과 실제 제작사를 알아냈고, 감독이 비슷한 파운드푸티지물을 찍은 전력이 있다는 걸 밝혀냈다. ‘뭐 더 알아볼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 이 누리꾼의 결론.

여러 차례 이 코너를 통해 다뤘지만, 파운드푸티지/페이크다큐의 기원에 대해 대체로 합의된 것은 1999년 개봉한 <블레어 위치>다. 당시 초저예산으로 찍은 이 영화는 ‘미국 메릴랜드 버키츠빌 숲에 실제 존재하는 마녀전설을 확인하러 떠난 영화학도들이 실종됐는데, 그들이 남긴 필름이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버키츠빌 숲? 진짜 존재한다. 영화의 주무대였던 흉가? 영화를 찍은 직후까지 실존했다. 이들이 마녀전설을 찾아 떠났다가 실종됐다고 주장하는 수배 웹사이트는 가짜였다. 말하자면 ‘마케팅’이 이 영화의 유명세를 만든 셈이다. 한국에서 몇 달 뒤 개봉했을 때는 그리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이미 많은 사람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돼 끊임없이 흔들리는데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자막으로 읽어야 하는 것도 이입을 방해한 사정일 것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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