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맘’을 응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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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 없이 유튜브 ‘쇼츠(1분 이내 짧은 영상)’를 넘겨보던 중 영상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인기 캐릭터 ‘서준맘’이 아들 서준군의 양치를 시키는 영상이었다. 카메라는 서준군의 1인칭 시점에서 촬영됐다. “(치약) 하나도 안 맵지” 하며 혀 안쪽까지 꼼꼼하게 양치를 시키는 서준맘의 모습에 어린 시절 엄마가 씻겨주던 기억이 강제 소환됐다. 이 영상은 ‘영유아 체험기’라는 설명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 중이다.

희극인 박세미씨가 연기하는 ‘서준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서준이’ 시점 브이로그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미’ 갈무리

희극인 박세미씨가 연기하는 ‘서준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서준이’ 시점 브이로그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미’ 갈무리

서준맘은 가상의 인물로 이른바 ‘신도시 엄마’를 콘셉트로 한다. 희극인 박세미씨가 연기한다. 서준맘은 “내가 우리 동네에서 완전 이거(대장)잖아”, “완전 기절이잖아” 등 특유의 화법을 구사하며 처음 본 사람과도 금방 친해진다. 코스트코,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는 ‘꿀팁’을 공유하며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여성이다.

서준맘은 ‘신도시 아재들’을 주인공으로 한 피식대학의 ‘05학번이즈히어’ 시리즈에 조연으로 처음 등장했다. 서준맘으로 불리지만, 시리즈에서 원래 이름은 류인나다. 고깃집 ‘배가네’를 운영하는 배용남(이용주)의 아내이자 네일아트와 속눈썹 연장 전문가로 일했다. 현재는 아이 육아로 휴직한 상태로, 서준맘의 최근 관심사는 영어 유치원이다. 어렵게 들어간 영어 유치원에서 원어민 선생님이 배정되지 않자 분노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서준맘 블로그’를 앞세워 미용실이나 네일숍에서 가격 할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동네 언니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한편 중간중간 ‘남 얘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준맘은 허영심 많은 ‘된장녀’와 극성스러운 ‘애엄마’의 특징을 모두 가졌다. 중요한 건 결코 밉지 않다는 점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뒤끝 없는 성격으로 점차 팬을 끌더니 이제는 자체 콘텐츠까지 생겨 ‘인기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서준맘 채널 영상 아래엔 ‘고맙다’는 댓글이 종종 눈에 띈다.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신도시 엄마의 이미지가 서준맘의 등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이 엄마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서준맘의 경계를 허문 건 ‘서사’다. 여성과 아이들의 크고 작은 잘못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맘충'이란 비하 표현에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늘 ‘공백’으로 남았다. 누구도 그들의 사정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준맘이 보여주는 30대 기혼 여성의 서사는 그에 대한 인간적 애정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핵심은 ‘디테일’이다. 손목에 찬 보호대에서 육아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서준이 시점’으로 촬영된 브이로그에선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초보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구독자들과 진행하는 ‘고민상담’에서 서준맘은 영락없는 이웃집 언니다. “곧 스물네 살이 된다”는 한 구독자가 “여태껏 밟아오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 다른 길을 가봐도 괜찮을까”라고 질문하자 대뜸 “어려!” 하고 소리친다. “여러 길을 가봐. 하고 싶은 거 다 해. 인생의 시작은 30대야. 20대 때는 도전하고, 만져보고, 먹어보고, 실패하고, 무너지고, 30대부터 달리면 돼.” 그의 말처럼, 지금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서준맘이 앞으로도 늘 행복하길 응원한다.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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