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의 뒷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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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는 2009년에 처음 무대에 오른 극작가 존 로건의 작품입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의 관계와 대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2인극입니다. 연극 내내 주인공 로스코는 예술의 개념과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두고 켄과 설전을 벌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강렬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사고의 틀을 깨는 창의적인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은 통찰력 있는 대본, 강력한 연기 그리고 추상적인 관념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널리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예술과 창의성, 인간이 갖춰야 할 조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봐야 할 작품입니다.

[편집실에서]장강의 뒷물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드>에 대한 인공지능(AI)의 설명입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연극 <레드>에 대한 짧은 칼럼 부탁해”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MS가 투자한 인공지능 스타트업 오픈AI의 ‘챗GPT’가 위와 같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살짝 가다듬긴 했지만, 영문 자체로만 보면 하나의 칼럼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서비스 오픈 두 달 만에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입자 1억명을 달성하고 유료화까지 시작하는 등 대화형 생성AI(챗GPT)가 선풍적인 인기몰이에 나선 시점에 공교롭게도 이 연극을 봤습니다.

이번이 마크 로스코 역을 맡은 세 번째 시즌인 정보석 출연 회차를 선택했습니다. 야수파(마티스)와 입체파(피카소)를 뛰어넘은 거장의 자부심, 당대 최고의 액션 페인팅 화가로 군림했던 잭슨 폴록과의 경쟁,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자기절제로 색면 추상에 몰두했던 예술 철학과 신념 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마크 로스코의 내면이 속사포처럼 정보석의 입을 통해 쏟아집니다. 그는 신출내기 화가지망생인 켄을 업신여기고 ‘갑질’로 부려먹으며 훈계까지 일삼다 이에 저항하는 켄과 격렬한 설전을 주고받습니다. 결국 돈과 예술 사이에서 고뇌하는 자신의 ‘이율배반’과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아집’을 깨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버텨봤지만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를 향한 대중의 열광적인 관심을 인정해야 했지요.

애플의 아이폰, 구글 검색에 이어 인류를 송두리째 흔들 혁명이 시작됐다고들 합니다.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맞춤형 답변을 생성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헤아려 계획하고 선택하고 구매하는 ‘실행AI’의 시대가 만개할 날도 머지않았답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 고민인 세상에서 ‘절대자’처럼 AI가 알아서 척척 궁금증을 풀어주니 이보다 더 편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마저 챗봇에 맡겨버립니다. AI한테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데 기자들은 계속해서 인간의 방식으로 현장을 찾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아야 할까요. 여러분은 AI가 쓴 기사와 인간이 쓴 기사 중에서 앞으로 어느 쪽을 더 믿으시겠습니까. 둘을 구분해낼 수는 있으시겠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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