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식물을 오래 관찰하는 건 그들의 말을 받아적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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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식물 찾아 백두대간 누비는 식물분류학자 허태임 박사

그는 식물과 닮아 보였다. 맑은 얼굴로 조곤조곤 말했다. 낯가림이 심해 사람 앞에 나서는 게 힘들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할 때도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하지만 식물 이야기를 할 때는 작은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했다.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어 보였다. 식물을 자주 ‘그 친구’, ‘그 아이’라며 의인화해 불렀다. 그는 사람보다, 남자보다 식물이 좋다고 했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 박사(37) 이야기다.

지난 2월 6일 허태임 박사가 서울 인왕산 숲길에서 카메라를 들고 웃고 있다. 그는 “이곳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그리고 겨울에 유독 줄기가 붉게 보이는 찔레꽃과 대화하며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2월 6일 허태임 박사가 서울 인왕산 숲길에서 카메라를 들고 웃고 있다. 그는 “이곳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그리고 겨울에 유독 줄기가 붉게 보이는 찔레꽃과 대화하며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 서성일 선임기자

허 박사는 경북 봉화에 자리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 연구원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백두대간과 고산지역 산림생물자원을 수집·보존·전시·활용해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고 교육과 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7년 5월 출범했다.

허 박사는 수목원 연구실보다 야외 현장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설악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숱하게 종단하며 그곳에 사는 식물 종류를 낱낱이 밝히고, 기록하며, 특정 종을 타깃으로 표적 조사를 진행한다. 작은 체구의 젊은 여성이 이 땅의 야생식물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뚜벅이로 해발고도 1500㎞가 넘는 산을 수시로 넘나들고, 희귀식물을 찾아 무인도를 종횡무진하는 것이다.

지난 2월 6일 서울에 올라온 허 박사를 인터뷰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 소속
입춘 지나면 개화하는 식물들 현장 탐사
일주일 두 번씩 산행, 길 없는 곳도 누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어떤 곳인가요.
“고산지역의 야생식물들을 지켜낼 임무를 띠고 있는 곳이에요. 노르웨이에 있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설립한 씨앗저장고(Seed Vault)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차이점이라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인간의 식량이 되는 작물 종자들을 보관한다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들의 보관처예요. 그들이 산불이나 전쟁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해도 다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씨앗을 모으고 있어요.”

-현재 몇 종이나 보관돼 있습니까.
“2022년 기준으로 국내외 식물 5424종의 종자 19만2625점(국내 종자 62.2%, 국외 종자 37.8%)이 씨앗저장고에 보관돼 있어요. 국제사회의 권고사항이기도 한데, 적어도 한반도 자생식물의 75%까지는 지키겠다는 게 1차 목표예요. 또 중앙아시아 국가 등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종자들도 저장하고 있고요.”

-현재 한반도의 자생식물은 총 몇 종이나 되나요.
“3600여종이에요. 그중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지 몰라 목록화한 희귀식물이 600종 정도고요.”

-허 박사는 식물원에 있는 시간보다 백두대간을 누비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더군요.
“연구실에만 있으면 식물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요. 가령 제가 오늘 구상나무를 만나려면 해발고도 1000m 이상 올라가야 해요. 또 변산바람꽃을 만나려면 제가 사는 곳에서 380㎞ 떨어진 전라북도 서해 변산반도에 가야 하고, 백서향을 만나려면 도서지역의 숲을 찾아가야 하죠. 겨울 동안은 몰아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면서 보고서나 논문을 쓰지만, 나머지 계절에는 주로 야외 현장에 있어요. 원래 식물원에서 공식적으로 현장 탐사에 나가는 시기는 3월부터지만 저는 2월부터 나가요.”

식물이 살아온 지구의 시간 생각하면
거대한 ‘대선배’ 앞에서 겸손해지는 마음
“남자보다 식물…다들 ‘식물 또라이’래요”

-왜요.
“입춘(立春·올해는 2월 4일)이 지나고부터 남쪽에선 식물들이 개화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니 그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려면 서둘러야죠. 시기를 놓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요. 작년과 비교해 올해는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해를 거르고 개화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해 기록하는 거예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저의 하루 일과 역시 식물 사이클에 맞추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달라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4월 중순 곡우(穀雨)부터 6월 중순 하지(夏至)까지는 저도 하루를 길게 써요.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하면 오전 7시에는 어디든 웬만한 산에는 도착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교통사고를 겪기도 했어요.”

-어쩌다가요.
“2020년 여름이었는데, 그날은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자동차를 운전해 수목원에서 멀지 않은 산에 갔어요. 그곳에서 왕팽나무 꽃을 관찰하고 사진 찍고 채집한 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그새 비가 내렸는데 도로에 수막현상이 생긴 거예요. 자동차가 어느 순간 뱅뱅 돌더라고요. 폐차까지 한 큰 사고였지만 다행히 저는 멀쩡했어요.”

-백두대간이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데, 얼마나 자주 산행을 하는 건가요.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설악산, 지리산 등 여러 산을 오르는데, 일주일에 평균 두 번은 가죠. 가령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오르면 희귀한 식물이 꽤 많아요. 금강초롱꽃도 있고, 남한에서 유일하게 그곳에만 있는 눈잣나무도 볼 수 있어요. 그 식물들을 만나려면 새벽 4시에 산에 오르기 시작해 정상에 도착하면 오전 10시쯤 돼요. 그때부터 업무가 시작되죠. 그런데 설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일반인 미개방 구역은 특히 험해서 혼자선 못 가요. 2인 1조 또는 3인 1조가 돼 같이 올라요.”

허태임 박사가 지난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 허태임 제공

허태임 박사가 지난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 허태임 제공

-걸어서 정상까지 가는 건가요.
“당연히(웃음).”

-체격도 작아 보이는데,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저희 팀원 중 여성은 저 혼자예요(웃음). 저는 다행히 산이 잘 맞아요. 어릴 때 100m 달리기를 하면 늘 꼴찌였는데, 장거리 달리기에선 1등을 했어요. 지구력이 있는 거죠. 하지만 외모는 포기해야 해요. 다리는 굵어지고 선크림을 발라도 땀을 많이 흘려 얼굴이 다 타니까요.”

-산이든, 섬이든 가려면 장비가 많이 필요하겠어요.
“길이 잘 정비돼 있고 대피소가 있는 설악산 같은 국립공원은 상대적으로 장비가 덜 필요해요. 하지만 덤불로 뒤덮여 길 자체가 없는 곳을 갈 때는 정글낫과 로프도 챙겨가야 해요. 채집칼과 봉투, 휴대용 루페(확대경)와 카메라, 수첩과 노트, 스마트폰 등도 필수품이에요. 예전엔 나침판과 GPS 수신기, 종이 지도, 손전등을 따로 들고 다녀야 했는데 스마트폰 하나로 많이 간소화됐어요. 여기저기 긁히기 때문에 복장은 긴팔·긴바지·모자 차림이어야 해요. 넣을 게 많으니 주머니가 많은 낚시조끼도 입고요. 등산화는 고산지대용과 저지대용 두 켤레를 용도에 따라 바꿔 신어요.”

-무인도에서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암벽도 타던데, 위험한 일은 없습니까.
“위험에 노출될 일이 많죠. 깊은 산속을 헤매다 멧돼지나 반달가슴곰 등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산짐승들에게 인기척을 내기 위해 딸랑딸랑 울리는 종을 배낭에 걸고, 저 역시 다른 기척에 귀를 기울이며 걸어요. 그르렁대는 소리라도 들리면 줄행랑쳐야 하니까요. 진드기도 위험해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요. 저도 물려 격리 입원한 적이 있어요. 측백나무 개체수를 로프를 매고 파악하다가 추락사한 후배도 있었고, 최근엔 동물을 쫓아 보내려고 사람이 설치한 전기 울타리에 감전돼 세상을 떠난 연구원도 있었어요.”

말끝에 그는 “진짜 공포는 어둠”이라고 말했다. 그가 조난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받기 십수년 전의 일이다. 혼자 산에 올라 식물에 하염없이 빠져 있다가 하산이 늦어졌다. 산은 순식간에 돌변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손전등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나무들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당시 길잡이가 되어 나를 구해준 것은 나무, 즉 식물들이었다”고 회상했다.

2018년 바이오블리츠 참여자들에게 식물수업을 하고 있다. / 허태임 제공

2018년 바이오블리츠 참여자들에게 식물수업을 하고 있다. / 허태임 제공

-그런 위험을 무릅쓸 만큼 식물 탐구가 마냥 좋습니까.
“저는 사람보다 식물이 좋아요. 이 친구들과 있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라요(웃음).”

-결혼을 안 한 것으로 아는데, 남자친구가 있다면 질투하겠어요.
“어딘가에 얽매여 감정 소모하는 시간이 저는 아까워요. 식물하고는 그런 게 없잖아요(웃음).”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요.
“사람의 삶 속에서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작은 일에 매여 있을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식물들을 만나면 경계 같은 게 허물어져요. 이 친구들이 살아왔던 지구의 시간을 생각하게 되죠. 그러면 이 아이들이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시기에 먼저 지구에 출현해 지금까지 어떤 역경을 겪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면서 이런 거대한 대선배 앞에서 인간은 한낱 작은 존재임을 자각해요. 겸손해지고 한편으로는 대범해지죠. 저는 이 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관찰하는 것이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식물들의 말을 받아 적는다고요.
“관찰을 통해 알아낸 결과물들을 논문이나 보고서, 책으로 엮어 이 친구들을 직접 만날 수 없는 분들께 제공하니까요. 그게 식물의 말을 받아 적어 사람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식물은 나무와 풀이니까, 풀 초(草)에 기록할 녹(錄), 나무 목(木)에 역시 기록할 녹(錄)을 써서 초록목록(草錄木錄)이 제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그래서 지난해 <나의 초록목록>이라는 제목의 과학에세이도 펴낸 거고요. 동료들은 식물에 빠져 사는 저를 두고 ‘식물 또라이’래요(웃음).”
그는 1986년생이다. 그해 가야산국립공원을 통과하는 구간인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의 경계에 있는 성주군 수륜면에서 태어났다. 세 자녀 중 둘째딸이다. 마을에서 유일한 초등학교, 중학교에는 학년당 한 학급씩만 있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고등학교는 없어 진학하려면 읍내로 나가야 했다. 칠원 제(諸)씨 집성촌이었다. 논밭이 지천인 데다 가야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소녀는 숨을 쉬듯 자연 속에, 식물 속에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고 편했다. 산을 좋아한 아버지는 내성적인 둘째딸과 자주 동행했고, 집에 온갖 식물을 키우는 온실도 꾸몄다.

-어떤 소녀였나요.
“지금도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몹시 힘들어하는데, 어려서부터 낯을 많이 가렸어요. 단짝 친구는 있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까.
“어릴 때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자주 받았거든요.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 문고의 관리를 맡았어요. 그때 많은 문학서를 읽었죠.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시가 저의 영역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너무나 훌륭한 시인이 많으니까요. 그러다 박상진 교수님이 쓰신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를 읽게 됐어요. 자연을 좋아한 저는 식물을 공부해야겠다, 기왕이면 박상진 교수님이 계신 대학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허태임 박사가 2020년 제주도 식물탐사 희귀식물 물까치수염을 촬영하고 있다. / 허태임 제공

허태임 박사가 2020년 제주도 식물탐사 희귀식물 물까치수염을 촬영하고 있다. / 허태임 제공

-그래서 2005년 경북대에 진학해 목재해부학을 전공한 거군요. 목재해부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나무토막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그 안에 나열된 세포의 모양으로 나무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학문이에요. 손톱만 한 조각 하나로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연구하죠.”

-그런데 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선 식물분류학을 공부했나요.
“그 일을 얼마간 하다 보니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살아 있는 식물들이 너무 궁금했어요. 지도교수셨던 박상진 교수님도 식물분류학이 식물의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라며 공부를 권하셨고요. 그때부터 식물분류학을 공부하며 전국을 누비고 나무와 풀꽃을 탐닉한 거예요. 늘 저를 설레게 하는 일이에요.”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읽고 결심
학부선 목재해부학, 대학원선 식물분류학
식물의 이름 불러주고 관계 밝히는 설렘

-식물분류학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은가요.
“세상 모든 식물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식물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이죠. 예를 들면 인간이 침팬지와 가깝고 침팬지가 오랑우탄과 가깝고 그 아이들이 사람과를 이루잖아요. 또 고양이와 삵, 호랑이, 표범이 고양잇과로 묶이고요. 이처럼 식물들도 같은 과끼리 그룹을 지어주는 일이에요. 하지만 같은 종이라고 해도 개체 하나하나마다 고유의 얼굴과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탐구할 게 무궁무진해요.”
그는 민간인 통제선 이북에 있는 DMZ자생식물원에서 2014년부터 3년간 비무장지대의 식물을 연구하기도 했다. 박사과정을 병행한 그곳에서 대학생 연수생들에게 ‘식물분류학의 이해’, ‘식물 채집과 표본의 중요성’ 등의 수업도 도맡아 진행했다. 2017년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직한 후에는 ‘생물다양성 탐사대작전’으로 번역되는 ‘바이오블리츠’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생물 분야의 전문가들과 아마추어, 일반인이 함께 모여 24시간 내에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생물종을 찾아내는 과학참여 활동이다.

-지난해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 대형 산불이 나면서 큰 피해를 입었어요. 식물학자로서 누구보다 참담했을 것 같아요.
“산불이 난 구간은 희귀식물이 정말 많이 서식하는 곳이에요. 특히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경계지역인 응봉산을 기준으로 영동과 영서가 있는데, 그 부분이 엄청난 오지예요. 골짜기가 깊은 만큼 희귀식물들이 훼손되지 않은 채로 많이 살았죠. 그런데 산불이 다 집어삼킨 거예요. 당시 산불이 번지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됐잖아요. 그걸 접하며 아, 지금 어느 식물이 어느 정도 탔겠구나 하며 발을 동동 굴렀어요. 현장에 직접 달려가 온통 잿빛으로 변한 처참한 서식지를 목도하기도 했고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아이는 소나무 밑에 사는 꼬리진달래였어요. 집단 군락지가 싹 다 타버렸거든요.”

[박주연의 메타뷰](32)“식물을 오래 관찰하는 건 그들의 말을 받아적는 것”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처절했지만 감정에만 치우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의 재난으로 이렇게 중요한 식물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산불이 나면 흔히 인명 피해, 재산 피해만 이야기하고 자연이, 어떤 식물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잖아요. 이들 피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임에도요.”

산불 나면 인명·재산 피해만 말하지만
식물 피해야말로 돈으로 환산 불가능
“지구는 인간만 생각해선 지속 어렵죠”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 화두예요. 관련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지구에는 인간 외에도 많은 생물종이 살아가고 있어요. 모두가 지구의 공동체죠. 하지만 많은 분이 인간 중심적 사고에만 젖어 있어요. 저는 식물들을 한 종, 한 종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만 생각해선 절대 오래 지속될 수 없겠다고, 우리가 함께 잘살기 위해선 주변의 다양한 생명체를 챙겨야 한다고. 그래야만 지구의 생태계 훼손이 덜 될 테니까요. 내 주변에 어떤 식물종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또 내 삶 안에서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는 게 출발선인 것 같아요.”
그에게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평소 해왔던 것처럼 식물들을 만나 사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안부를 묻고 그들로부터 들은 여러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식물들과 함께 하는 삶을 담은 새 에세이도 집필 중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봉화로 내려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간다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총총히 사라졌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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