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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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아파도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은 아픈 게 아니지 않냐, 다 나은 게 아니냐고 해요.” 산업재해를 목격한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노동자의 말이다.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를 받는데 주변에서 “밥을 먹을 정도면 괜찮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는 거였다. 트라우마에 대한 낮은 이해에서 비롯된 무례한 질문이지만 당사자들은 위축된다고 했다. 먹는 걸 ‘변명’해야 하는 자신이 싫어 사람을 기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주변의 삐딱한 시선 중 이 말이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먹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써 일상에 복귀하려는 이에게 “진짜 아파요?”라는 말보다 “밥은 먹는다고요?”라는 말이 더 잔인하지 않은가. 주변의 무례한 시선이 먹으려는 의지를 꺾는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헨미 요는 저서 <먹는 인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옥 같은 그 일을 하면서도 먹어야 하는 비참한 시간을 기민하게 포착한다. 일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보낸 세계는 “끼니와 끼니 사이”로 표현된다. “아침 8시에 식사를 마치면 일반 병사들이,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부사관들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장교들이 찾아왔다. 병참부 군인들이 가져오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미쓰코 같은 여자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그것이 시작되었다.”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끼니는 먹는 것보다 해치우는 것에 가깝다.

가난이 먹는 행위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미혼모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는 식료품 지원소에서 나눠주는 통조림을 그 자리에서 뜯어 손에 붓고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간다.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워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한 탓이다. 식료품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먹기엔 케이티는 너무 배가 고팠다. 통조림 국물로 엉망진창이 된 손을 떨며 케이티는 “너무 비참해요”라고 말하며 울먹인다. 그런 케이티 옆에서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은 말한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네 잘못이 아니야.”

주변에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사례들을 본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지’를 묻는 한 시나리오 작가의 쪽지가 많은 사람을 울렸다. 여전히 생활고로 이웃들이 숨진다. 먹는 것조차 부끄럽게 만든 이 사회가 비참하다.

‘먹는 것’을 단순히 섭취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거다. 먹는 데서 오는 기쁨과 재미, 행복이 크다는 건 방송 매체에서 여전히 ‘먹방’이 인기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반대로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오히려 먹는 일이 고통스러운 이웃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어떤 이들은 먹는 행위로 삶의 의지를 찾으려고 발버둥친다. 어떤 이들은 빠져나오기 힘든 늪의 현실을 처절히 느끼기도 한다. 거창하게 도와주진 못해도 위로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네 잘못이 아니야.”

<유선희 뉴콘텐츠팀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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