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대접해서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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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환경대사와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이라는 감투가 동시에 주어졌습니다. 범(汎)정부 차원에서 똘똘 뭉쳐 진력해도 될까 말까 한 중차대한 과업입니다. 어찌 ‘가문의 영광’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편집실에서]이리 대접해서 될 일인가

그런데 나경원 부위원장의 행보가 수상합니다. 오는 3월로 예정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출마설(說)이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를 주저앉히려는 대통령실과 나 위원장 사이 갈등설까지 불거집니다. 결국 나 부위원장이 대통령실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임명된 지 불과 3개월 만입니다. 별 뜻도 없는 인사를 대통령실은 중책에 앉혔고, 당사자는 이를 받아들여 놓고도 어떻게 하면 소임에 충실할까에 골몰하는 대신, 당심(黨心)이 대통령을 향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향하는가만 끊임없이 저울질해왔다는 얘기 아닙니까. 인류 앞에 도사린 ‘저출생’과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무슨 천덕꾸러기마냥 이런 식으로 취급해도 괜찮을까요. 윤석열 정부가 저출생과 기후위기를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상징적 장면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며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당 지도부를 대동한 채 ‘정적 제거’, ‘날조 수사’, ‘야당 탄압’, ‘사법 쿠데타’를 외쳤습니다. 야당은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박정희 정권의 김영삼 국회 제명 사건’ 등을 언급하며 군사독재에 맞서 일평생 민주주의를 일군 YS와 DJ를 소환하기도 했습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 의혹 수사를 군사독재 시절 야당 파괴 공작과 동일선상에 놓고 견줄 일 맞습니까. ‘김만배 일당’과 한겨레,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에 속한 일부 중견기자들의 돈 거래 사실이 드러나 언론계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이 또한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한 ‘언론탄압’, ‘언론말살’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을까요. 박근혜 정권 때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을 정점으로 하는 검찰권력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의 실체에 접근해 들어가려는 언론권력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조선일보 주필의 칼럼대필 및 향응접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주필도 ‘희생양’ 운운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면 여론이 받아들였을까요. 의도가 불순하다고 불순한 결과의 책임까지 덮을 수는 없습니다. 한동훈이 노웅래를 치니 대통령의 장모를 말합니다. 이재명을 수사하니 검사 명단을 공개합니다. 대장동 비리를 추궁하니 ‘50억 클럽’으로 맞받아칩니다. 너희는 뭐 깨끗하냐 서로 따집니다. 모두 심각한 불신의 덫에 걸려버린 형국입니다. 여와 야는 물론, 법조, 언론까지 속속 드러나는 부패사슬을 보며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의 서글픈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는 대중은 참담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다간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탈출구가 안 보입니다. 아득해지고 맙니다. 차라리 어느 한쪽에 서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들 철저히 둘로 쪼개진 ‘광장’을 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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