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방지법 말고 탈출 지원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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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5일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 장애를 빚은 카카오톡에서 오류 메시지가 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15일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 장애를 빚은 카카오톡에서 오류 메시지가 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카카오 사태의 보상 절차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무료 이모티콘이나 자사의 서비스 90일 이용권이 보상이란다. 그냥 마케팅이다. 무료 체험 기간이 지나면 과금으로 자동 전환된다니, 국민의 일상이 멈춘 사태도 그저 기회로 활용했다.

카카오톡 사용자가 사고 후 200만명 정도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역시 금세 복귀했다. 시장경제라면 처참할 정도의 책임감 부재를 드러낸 먹통 사태로 소비자의 대거 이탈이 벌어져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았다. 동급 대기업의 라인이라는 완전 대체재가 있음에도 그렇다. 카카오톡을 그만 쓰는 방법이 한국에선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 특유의 록인(lock-in) 효과 탓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 홀로 그만 쓸 수 없다. 온갖 인정과 사정으로 점철된 단톡방의 관계가 발목을 잡는다. 카카오 플랫폼에 의존해 장사하는 사업자도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정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카카오 서비스에 연동된 안전신문고가 멈췄고, 단톡방으로 병상을 배정하던 보건소·지자체·중앙사고수습본부 역시 업무에 큰 차질을 겪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로 전환하는 사이 회복 불가능할 수준으로 기대지 않을지 걱정이다. 정부로선 독자적 디지털 역량을 지니는 대신 하청에 의지해왔기에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국회에서는 카카오 먹통 방지법이 통과됐다며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카카오 탈출 지원법이다. 상호운용성과 데이터 반출 기능을 의무화했다면, 사고 발생 시, 아니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톡방 정도는 즉시 이사가 가능했으리라. 신규 서비스로 데이터를 옮기고 미가입자는 자동으로 초대되는 방식으로 대거 탈출이 가능했을 터다. 이러한 서비스를 데이터 센터도 이중화하지 않는 기업이 나서서 해줄 리 없다.

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DSA), 디지털 시장법(DMA), 미국의 서비스 전환에 의한 상호운용·경쟁 강화법(ACCESS) 등 참고할 만한 입법 사례는 많다. 만약 사전 규제가 싫다면 사후적 정의라도 바로 서야 할 텐데, 미국식 집단 소송이 불가능한 한국에서는 몇 명이 전체를 대신해 승소해줄 수도 없다. 다 같이 몰려가 소송해도 스스로 손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도 이용자 소송은 한 건도 없었다.

우리는 내심 국내 기업을 응원한다. 이름난 기업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공감대에 만족한다.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국산 공산품에는 감정이입도 쉽다. 대기업의 성장이 낙수효과를 만들어주리라는 기대가 뿌리 깊다. 실제 치밀한 하청구조는 사회 전체를 대기업이 정점에 서는 피라미드로 만든다. 국민주라는 단어가 있는 것처럼 중산층의 재테크 수단이 돼주기도 하니, 시민도 팔이 안으로 굽듯 대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정책을 눈감아준다. 심지어 응원하기도 한다.

큰 기업이 성장을 견인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낙관, 전통적 재벌들이 성장을 멈추고 곳간에 현금을 쌓아두자 디지털 기업이 그 역할을 대체해줄 것이라 기대했겠지만 재벌 2.0도 다르진 않았다. 하청이 플랫폼 노동이라는 요즈음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재벌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의 가치를 빨아들이면서, 낙수는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그대로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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