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삼성생명법과 전자 주식 매각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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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매각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소위 ‘삼성생명법’) 논의가 수면 아래에서 끓고 있다. 2014년 이종걸 의원이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융위원회도 취지에 찬성하고 여당도 마땅한 반대 논리가 없어 보인다.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 김창길 기자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 김창길 기자

삼성 총수일가에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도피처는 ‘패닉 마케팅’ 정도다. 삼성전자 지배권이 외국에 넘어가 큰일이라는 일종의 ‘국뽕 자극론’이다. 다른 하나는 수십조원의 전자 주식이 시장에 투하돼 개미들이 낭패를 볼 것이라는 ‘매물 폭탄론’이다. 물론 어느 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관련 내용의 상당 부분이 어둠 속에 감춰져 있다 보니, 국민과 삼성전자 주주들이 걱정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최대한 팩트에 기반을 두고 모자란 부분은 일부 픽션을 섞어서 바람직함과는 무관하게 상정 가능한 삼성전자 주식 매각 시나리오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팩트를 정리하자. 보험업법 제106조 제1항 제6호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가 발행한 주식을 총자산의 3%를 초과해 보유하지 못한다. 유독 삼성생명과 화재는 이 조항을 뭉개고 있다. 이런 희대의 불법이 가능한 이유는 금융위원회가 3% 비율을 계산할 때 분모인 총자산은 시가로 평가하고, 분자인 계열사 주식은 취득원가로 평가하도록 해두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분모는 증가하고 분자는 고정이어서 이 규제는 그만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소해야 마땅한가? 당연히 금융위원회가 보험업 감독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금융위원회가 이를 거부했다. 국회가 다시 나서서 “내가 애초에 제106조의 자산운용 규제를 둘 때의 취지는 분모와 분자 모두 공정가치로 하라는 거였어”라고 명시적으로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음은 숫자 팩트를 최대한 검토해보자. 우선 총자산 수치다. 이것은 별도 재무제표에 따른 일반계정 총자산을 써야 한다. 애석하게도 이 수치는 공시자료에 없다. 공시자료를 보고 도출하기도 어렵다. 현재 시중에 떠돌고 있는 수치에 따르면 2022년 6월 말 현재 일반계정 총자산은 삼성생명이 약 238조원, 삼성화재가 약 77조원이다. 이 경우 총자산의 3%인 운용한도액은 삼성생명이 약 7조원, 삼성화재가 약 2조원, 도합 9조원 정도 된다.

두 보험사, 전자 주식 최소 25조원 매각해야 다음은 삼성전자 주식 수를 보자. 삼성생명은 일반계정을 통해 삼성전자 보통주 5억815만7148주(지분율 8.5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8880만2052주(지분율 1.49%)를 보유하고 있다. 이 주식의 2022년 6월 말 현재 시장가치 합계는 약 34조원이다. 따라서 보유한 모든 계열사 주식을 다 처분하고 전자 주식만 남길 경우 매각해야 할 전자 주식은 최소 약 25조원(지분율 약 7.3%) 정도다(만일 다른 계열사 주식을 계속 보유한다면 매각해야 할 전자 주식 규모는 약 30조원 정도로 증가할 수 있다).

다음은 매각 이익의 배당 관련이다. 유배당 계약의 운용이익은 이익 발생 시점의 유배당 계약과 무배당 계약의 책임준비금 비율에 따라 유배당 계약자와 회사가 나눠 가진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삼성생명은 상장 당시 상장 차익을 유배당 계약자에게 단 한 푼도 나눠주지 않아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삼성생명의 경우에는 운용이익의 배분 비율이 이익 발생 시점과 상관없이 상장 당시의 책임준비금 비율로 고정돼 있다. 대략 이 비율은 7:3으로 알려져 있다(이 부분의 정확한 팩트는 금감원이 공표하면 된다).

이제부터는 픽션이다. 픽션에는 전제가 따른다. 여기서는 다음 몇 가지 전제를 가정한다. 첫째, 삼성전자가 25조원에서 30조원 정도의 실탄을 마련하는 것은 재무적으로 가능하다. 둘째, 삼성전자가 위 금액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셋째, 삼성물산은 어떤 경우에도 금융지주회사나 일반지주회사에 해당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전제하에서 상정 가능한 하나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주식 일부를 전자에 매각해 제2대 주주가 되고 현금도 확보한다. 둘째,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해 삼성생명 지분 5%를 물산으로부터 매입해 최대주주가 된다. 셋째, 두 보험사는 3%를 초과하는 전자 주식 매각 계획(약 25조원에서 30조원 규모)을 발표한다. 이 발표로 전자 주가는 하락한다. 넷째, 삼성전자는 주가 하락 방어 논리로 주주들을 설득해 같은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두 보험사의 매각일에 실시한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한다면 해결 가능 대략 이것으로 큰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우선 삼성물산의 입장에서 삼성전자가 자회사가 되지만 생명과 삼바가 자회사에서 탈락해 지주회사 논란이 발생할 이유가 없다. 둘째,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같거나 오히려 상승한다. 현재 삼성전자에 대한 내부 지분율은 20.75%인데 금융계열사의 보유지분은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에 일부 저촉돼 행사 가능한 총 의결권은 15%뿐이다. 즉 두 보험사가 보유한 5.75%의 지분은 지금도 의결권 행사가 불가하다. 기본적으로 이보다 같거나 큰 지분이 삼성전자 자사주로 편입되면서 의결권이 없어지므로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남는 것은 기술적 문제들이다. 우선 자사주 매입이 시장 매입이므로 삼성생명 이외에 제3자가 같은 날에 전자 주식을 매각할 경우 삼성생명 등이 목표한 주식을 전량 매각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두 보험사의 매각 규모가 25조원에서 30조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3자 매도 주식의 상대적 비중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설사 매도해야 할 잔존 주식이 일부 존재하더라도 쉽게 처리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삼성물산이 삼바 매각 대금으로 잔존 전자 주식을 매입하면 된다.

일부에서는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강제 전환을 걱정한다.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주회사 산정은 연말 수치를 기준으로 하는데, 삼성물산의 2021년 말 별도 재무제표상의 총자산은 약 44조원이었다. 따라서 삼성생명과 삼바가 자회사에서 탈락한 상태에서 전자가 자회사가 된다고 해도 계열사 지분액이 약 20조원 정도이므로 ‘주된 사업기준’을 충족할 가능성은 없다. 또 바람직함을 떠나서 정 급하면 보유 지분을 추후 삼성문화재단이나 삼성복지재단에 증여 또는 매각할 수도 있다. 두 재단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는 현재 여유가 많이 남아 있다.

결론은 무엇인가. 국뽕 자극론, 매물 폭탄론, 삼성 해체론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대신 유배당 계약자들은 매우 뒤늦었지만 투자 과실을 누릴 수 있다. 보험사의 자산운용도 정상을 회복할 수 있고. 이제 법안만 처리하면 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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