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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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혹시…” 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습니다. 정답이 안 떠올라서요. ‘만 나이’와 ‘연 나이’, ‘세는 나이’가 한꺼번에 떠올라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돼버립니다. 언젠가부터 “OO년생입니다”라고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자한테 나이 계산을 미룬 셈이니 불친절한 답변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자칫하다간 “한국식으로는 몇 살인데 만으로는 몇 살”이라는 식으로 주저리주저리 대답이 길어지게 생겼으니까요.

[편집실에서]나이를 안 먹는다?

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는 행정기본법과 민법 일부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법령대로라면 내년 6월부터 한국식 세는 나이는 사라집니다. 12월에 태어났다고 칩시다. 나자마자 한 살, 해 바뀌었다고 한 살 이렇게 해서 태어난 지 불과 두 달 된 아이가 정초에 친지들을 만나 “저는 올해로 두 살입니다” 하고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돌도 안 지난 아이의 나이를 굳이 따지자면 그는 ‘영(0) 살’입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제4차 중장기 보육 기본계획’ 확정으로 내년부터 부모급여(만 0세 아동은 매달 70만원)가 신설되면서 ‘태어나자마자 연봉 천만원’과 같은 기발한 헤드라인의 기사가 탄생하기도 했는데요. 조금 낯설지요. 동양권 문화에서 0이란 곧 없다는 뜻의 무(無) 아닙니까. 0세 아동이라고 하면 도대체 실체가 있다는 얘기입니까, 없다는 얘기입니까. 한 살(생후 12개월 경과) 전까지는 ‘생후 몇 개월’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답니다. 개정법령을 떠나 다들 이미 그렇게 쓰고 있지요. “아기가 너무 예뻐요. 몇 살이에요?” 물으면 적어도 생후 36개월(3년)은 지나야 “O살입니다”라는 부모의 답변이 돌아오던데요. 그전까지는 모두 “30개월입니다”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통에 “30개월이면 몇 살이지? 세 살? 네 살?” 하고 중얼거려야 했습니다. 한국식 세는 나이가 큰 문제였던 것처럼 말하지만 각종 공문서나 행정서류에서는 1962년부터 이미 만 나이를 쓰고 있습니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셈입니다. 외려 혼선만 커지게 됐습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 나이가 다릅니다. 생일이 지나면 그렇지 않은 친구에 비해 한 살 많아집니다. 학년은 달라도 생일이 몇 개월 차이 안 나면 동갑이랍니다. 생일을 기준으로 형(동생), 언니(누나), 선배(후배)의 호칭과 개념을 다시 정립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한국사회에서 ‘연 나이’의 위세는 쉬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취학, 입대 등의 기준이 되는 교육 관련 법과 병역법은 지금처럼 연 나이를 그대로 사용한다니까요. 또 모르죠. 같은 학년이라도 ‘나이’가 다른 데서 오는 현장의 혼선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일단 형·동생부터 정하고 보는 한국사회의 특징을 근본부터 바꾸는 일대변혁의 계기로 작용할지도요. 존댓말(반말)과 결부되는 문제라 역시 간단치는 않아 보입니다. 나이에 민감해지는 연말연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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