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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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애 시인 신간시집 <일출보다 큰 사랑>

‘여울’이라는 말, 참 좋아합니다.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니까요. 여울의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울’은 여가 만들어낸 물의 흐름과 소리일 것입니다. ‘울다’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 소리는 ‘여’가 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희덕 시인은 시 ‘여, 라는 말’에서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며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고 했습니다. 망각의 물결 앞에서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정애 시인(왼쪽)과 <일출보다 큰 사랑> 표지 / Human & Books

조정애 시인(왼쪽)과 <일출보다 큰 사랑> 표지 / Human & Books

억울함과 분노로 출렁이는 바다

1990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한 조정애 시인(1947~ )의 다섯 번째 시집 <일출보다 큰 사랑>의 맨 앞에 놓인 시는 ‘조춘호 여객선 침몰사건’입니다. <2017 대한민국 해양안전 백서>(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의하면, 1950년 12월 6일 오전 8시 30분경 부산 남항방파제 앞에서 급전타(急全舵·갑자기 조타기를 최대각으로 꺾는 행위)해 급선회하면서 심한 선체 횡요(橫搖·배가 좌우로 흔들림)로 전복·침몰해 127명의 인명 손실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조춘호는 부산항~여수항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대동상선㈜ 소유의 여객선으로 탑승 정원이 100명인데, 이날 정원의 2.3배인 227명과 갑판에 화물 120상자를 싣고 여수항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여객 과승과 부적절한 화물 적재로 배의 복원성이 나빠진 상태에서 부적절하게 급전타해 복원성을 상실한 선장의 운항 과실이 사고 원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고로 네 살이었던 시인은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시인은 “조춘호를 출항시킨 부산 수상경찰서도/ 사고를 총괄하는 해양경찰청도” 그런 일조차 없고,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뿐 아니라 “모든 역사의 기록에서 (이 사건을) 빼버렸다”고 합니다. 사실 이 사건은 주요 해난 사고 기록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시인은 은폐 원인을 “조춘호 사고를 일으킨 대동상선”이 당시 권력자인 “교통부 장관의 아들이 부사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춘호 사고 “2년 뒤 창경호 여객선 침몰사건을 일으킨 선박회사”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네요.

일본 게이오대학 영문과를 나온 시인의 아버지는 “임시정부에 참여하러 가는 길에/ 만주에서 체포되기도”(이하 ‘그리운 아버지’) 했고, “고향의 가난한 청년 30명을/ 부산 부두에서 일”을 주선해주고, “집에서 3년을 무료 숙식”해줬다고 합니다. 미 군정 때는 “미 6사단 사령부 통역책임자를 지내셨고/ 수많은 귀환 동포들에게 적산집을 구해”주고, “6·25 때는 피란민을 위해 분골쇄신”했는데, 사고 당시 “아버지가 몸에 지녔던 돈”조차 돌려주지 않았답니다. 시인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덮어버린 사고 원인을 다시 조사하고 하루속히 진상을 규명해줄 것을 호소하면서 “우리의 삶을 피눈물로 얼룩지게 한 그 억울함과 분노는/ 오늘도 성난 파도가 되어 출렁이고 있다”고 절규합니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시적 미학보다 객관적 사실을 부각시킬 수 있는 서사적 구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내 슬픔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시인은 “내 슬픔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이하 ‘시인의 말’)고 했습니다. 제5 육군병원 옆 일본식 이층집 다다미방에서 낮에는 영도다리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고, 밤에는 영문원서를 읽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밤늦게 돌아올 때 “나무계단을 저벅저벅 오르는” 발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합니다. 그날 지프를 타고 출근한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우리 집 넓은 창으로 가득히 별빛만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던 크리스마스가 유난히 서러웠다고 합니다.

‘조춘호 여객선 침몰사건’ 다음에 나오는 시가 ‘나무계단’ 연작입니다. 남편인 오태규 작가는 발문에서 “시인의 어린 기억 속 아버지의 발소리를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미지화했다고 평했습니다. 시인은 궁금해합니다. “무엇이 운명을 넘어뜨려/ 계단 아래로만 가게 했을까”(‘나무계단 1’), “난파선 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네 살배기 내 이름을 불렀을까”(‘나무계단 2 -일출보다 큰 사랑’), 아버지가 읽고 있던 영문원서 책갈피에서 피어난 것은 “묵향이었을까/ 숲속에 퍼지는/ 낙엽 타는 냄새였을까”(‘나무계단 4’). 시인은 “그리움을 밟고/ 한걸음 내려서면/ 설움이 북받쳐 목이 메”(‘나무계단 1’)입니다.

바다의 이미지가 원망과 분노라면 나무계단은 그리움과 회상이겠지요. 부산 “영도다리 근처에서 태어난”(이하 ‘영도다리’) 시인은 하루에 두 번씩 올라가는 영도다리를 보며 자랐습니다. 6·25전쟁 때는 “얼굴이 누렇게 뜬 피란민들/ 다리목은 사태가 났”고, “닥지닥지 붙어 있는 점(占)집들”은 피란민들의 한숨을 들어주는 곳이었습니다. 다리를 건널 때면 “아비를 앗아간 물귀신이 난간 위로 불쑥 얼굴을 내밀까 봐”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자지러지게 울곤 했답니다. 시인에게 영도다리는 그리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시 ‘엄마 생각’은 “지난해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태풍이 몰아쳐 잠 못 이루는 밤, 유리창이 깨질 듯 광풍이 몰아치자 시인은 회초리 들고 호통치는 어른의 말씀을 연상합니다. “깨진 화분 흙을 다 쓸어놓고”는 “무궁화 열차 타고 무거운 짐 지고 들고/ 부산서 올라”온 엄마를 떠올립니다.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지 못한”, “못 할 짓 많이” 한 불효를 후회하지요. ‘일출보다 큰 사랑’을 받은 시인은 소외된 사람에게 베풀고 끌어안아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억울함의 자리에서 “돌아올 줄 모르는 양심”(‘동방의 나라로 다시 돌아오라 -세월호에 숨진 꽃들에게’)의 회복과 “큰 사랑이 이 거리에 넘치”(‘세검정 삼거리에서’)기를 기원합니다. “시 한 편이/ 세상의 가슴을 울리”(‘시와 풀잎으로’)기를 소원합니다.

시인의 말

▲슬픔도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이순옥 지음·현대시학·1만2000원

[김정수의 시톡](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너를 홀대하고 외면하던 배반의 시간들.
시여 용서하시라.
내가 너를 용서하듯이.

▲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
김윤삼 지음·삶창·1만원

[김정수의 시톡](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못난 삶의 언어들을
도와주신 분들이 많다.
모든 것은 원이다.
살아가면서 되새김질하며
갚겠다.

▲화요일 자정에 걸을 수 있는 여자는 모두 나오세요
임헤라 지음·북인·1만원

[김정수의 시톡](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볕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젖은 등을 말린다. 따뜻해진다.
볕이 자꾸 달아난다.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신윤서 지음·시인의일요일·1만원

[김정수의 시톡](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현기증 나는 마당을
걸어오던 옛집의 식구들, 입속에 가둔 무수한 말들은 그리움에 걸려 오늘도
문장이 되어 나오지 않고.

▲가장 희미해진 사람
김미소 지음·걷는사람·1만2000원

[김정수의 시톡](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죽고 싶다고 말하면,
더 살고 싶어져
온갖 아픈 장면을
흔들어 깨웠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김정수의 시톡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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