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나는 - 청춘의 고통과 희망, 봄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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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독립영화’적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젊은 세대의 현실적 이야기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시선은 섬세하고 감정적으로 풍성하다. 동년배에게는 공감대를, 선배세대에게는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를 제공할 만하다.

제목 그 겨울, 나는(Through My Midwinter)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0분

장르 로맨스, 멜로

감독 오성호

출연 권다함, 권소현, 오지혜, 이한주, 정수교

개봉 2022년 11월 3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일명 ‘독립영화’로 통칭되는 작은 영화들의 부정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적은 예산과 규모로 만들어지는 만큼 현실적 배경과 소재가 주를 이루는데, 이들 대다수는 조금 유별난 신변잡기의 재연 이상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풀자면 예술적 성취나 재미는 둘째치고라도, 전 세대의 관객을 아우르는 대중적 공감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작품이 대다수라는 말이다.

21세기 들어 급속도로 양산된 저가 촬영, 편집기기의 보급으로 제작 전반의 비용이 감소하고, ‘작가적 리얼리즘’의 몰이해와 흉내 내기가 범람하면서 이런 작품들의 출몰이 가속화했다. 사실 상업영화의 형식과 고정관념의 틀에 갇히지 않는 열린 가능성 자체가 독립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교적 측면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영화들을 끊임없이 목격해야만 하는 현실이란 버겁지 않을 수가 없다.

모처럼 ‘독립영화’적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났다. 영화 <그 겨울, 나는>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장편제작과정을 통해 나온 작품이다. 젊은 세대의 현실적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시선은 섬세하고 감정적으로 풍성하다. 동년배에게는 현실적 공감대를, 선배세대에게는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를 제공한다.

현실 속에 시들어가는 유약한 순수

경찰 공무원을 꿈꾸며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하는 공시생 경학(권다함 분)은 취업을 앞둔 여자 친구 혜진(권소현 분)과 동거 중이다. 서로를 의지하며 힘겹게 유지해오던 두 사람의 소박한 행복은 한통의 전화를 발단으로 서서히 무너져간다. 경학은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배달라이더 일에 뛰어든다. 때마침 혜진도 취업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진다. 각자 새로운 환경에 시달리며 지쳐가는 두 사람에겐 서로를 향한 애틋함과 염려마저 간섭과 부담으로 왜곡돼 전해지고 상처는 커져만 간다. 그렇게 그들에겐 ‘사랑’조차 피곤한 ‘일’처럼 힘겨워진다.

감독과 두 주연배우 모두에게 <그 겨울, 나는>은 첫 장편 데뷔작이다. 다수의 단편영화를 통해 ‘연애’와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온 오성호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들며 크게 2가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진지함이다. 진지할수록 그 마음이 영화에 묻어난다고 생각했기에 모든 과정에 있어 진지함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단다.

두 번째는 배우들의 연기다. 영화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한테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해 설득하는 매체란 지론을 가진 그는 이번 캐스팅을 위해 3차에 걸쳐 진행한 오디션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장에서도 배우들과 함께 공부하듯 머리를 맞대고 ‘이게 진짜 같냐’를 의논했다.

봄의 온기를 기다리는 혹독한 시간

사계절 중 겨울은 인생의 ‘혹독한 시기’로 상징된다. 반면 ‘잉태의 계절’, ‘휴식의 시기’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긍정적 해석을 무책임한 위로나 낭만적 수사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겨울의 추위가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생명의 의지를 쉽게 꺾지 못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봄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런 믿음을 끝까지 부여잡는다.

공식 인터뷰에서 영화의 배경이 겨울인 이유에 대한 질문에 정작 감독이 밝힌 내용을 보니 예상 밖의 대답이라 허를 찔린 느낌이다. “제작사인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과정의 시스템상 늦가을이나 겨울에 촬영할 수밖에 없어 겨울이 배경이 됐다”고 한다.

다행히 뒤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또한 ‘겨울’은 혹독하고 춥고 배고픈 이미지가 있다. 아마 이 작품을 여름에 찍었으면 땀을 많이 흘리는 그런 고통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럼 그렇지. 영화 속 계절이 달라졌다 해도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진심은 당연히 변함이 없었겠지.

지난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올해의 배우상(권다함)’, ‘한국영화감독조합상-메가박스상’, ‘왓챠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고,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았다.

‘한국영화의 등용문’ 한국영화아카데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한국의 영화사관학교로도 불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Korean Academy of Film Arts)는 영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984년 설립한 국립영화학교다. 높은 입시관문과 소수정예 교육에 걸맞은 철저한 이론교육과 현장에 버금가는 실기과정을 통해 실전형 전문가 양성을 실현 중이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전문인력만도 700여명에 이른다. 허진호, 임상수, 봉준호, 김태용, 최동훈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현장인력 중 다수가 이곳 출신이고, 매년 새로이 주목받는 유망주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수준의 영화학교이며, 전 세계에서도 매년 30위 안에 드는 최고 수준의 영화학교로도 알려졌다. 또한 영화산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영화 전문 교육기관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영화 제작사이기도 하다. 중단편을 포함해 현재까지 제작한 작품이 500여편에 이른다. 2009년부터는 장편제작과정을 신설해 매년 4편씩의 장편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교육 시도’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장편제작과정은 단순한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기획부터 제작, 후반 작업, 극장 개봉까지의 전 과정이 전문적 커리큘럼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제작지원방식과 차별된다.

10여년간 영화 <파수꾼>(2011),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등의 작품이 극장 개봉을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에는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 임상수 감독의 <파로호>, 이재원 감독의 <썬더버드>와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가 개봉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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