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불평등을 키우는 조세·재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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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에서 소득이나 자산의 계층별 격차가 커지는 현상을 양극화라고 한다. 양극화가 진전되면, 즉 사회가 불평등해지면 사회갈등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의 경제발전 속도도 늦어진다. 이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를 필두로 일군의 학자들이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증명해냈다. 경제성장과 분배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인 것처럼 말하며 기업과 특정계층에게만 봉사하던 경제학에 경종을 울렸다.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그러나 정치의 영역에서 실현된다. 지난한 정치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불평등한 경제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사람들은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 추구를 바람직하게 본다. 출발지점의 상황을 유사하게 만들어 준다면 개인이 획득한 경제활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국가의 재분배적 개입이 필요없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요인을 살펴보면 불평등도 여기서 유래된다. 유전적 요인과 교육적 환경 그리고 경제적 환경을 들 수 있다. 유전적 요인과 교육적 환경은 지적인 능력과 성취동기와 같은 정서적 측면, 지구력이나 손재주 같은 육체적 측면, 외향성의 정도 같은 심리적인 측면에 모두 영향을 준다. 경제적 환경의 차이는 증여 혹은 상속의 과정을 거쳐 재산상의 차이로 이어진다. 자녀의 고등교육비 부담이 현실적으로 증여행위의 일종이고 결과적으로 교육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불평등의 싹은 가정과 부모에 있다. 가정과 부모를 균등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넘어선다. 취약한 가정에 태어나더라도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학교와 학교 외적 서비스를 충분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정부는 계속해야 하지만 기회의 균등을 추구하는 방식의 불평등 해소의 한계가 명확하므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방식의 노력도 내실 있게 이행해야 한다.

작은 정부와 진보정당

정부가 의무교육을 실행하고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의 기회균등화 정책은 반드시 재정이 넉넉한 나라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결과의 평등, 즉 양극화의 축소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경우 국민이 경제활동에서 획득한 소득이나, 저축이나 상속을 통해 형성된 자산에 대해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적인 과세는 개인들의 경제적 성과가 반드시 그들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원, 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란 점에서 정당성이 충분하다. 1980년대 ‘작은 정부론’이 득세하기 전까지는 선진국들에서 잘 정착돼 있던 내용이다. 80년대 이후 작은 정부론이 추세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누진과세는 현저하게 약화됐다. 법인과 개인에 대해 50%에 달하던 주요 국가들의 세율 수준은 큰 폭으로 낮아졌다. 기업과 소득 상위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과대표되면서 조세 및 재정정책의 투입이 정치현실에서 (경제학에서도) 터부시되고 통화정책이 홀로 모든 부담을 안고 분투했다. 결과는 매번의 경제위기마다 반복되는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엄청난 수준으로 늘어났다. 최근의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으로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이 이뤄지기 전까지 늘어난 유동성은 전 세계에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끌어올려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경제적 능력의 평가기준에서 자산이라는 척도는 소득 못지않게 중요성이 커졌다. 사회에서 계층 간 이동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소득과 자산 하위계층에 속한 이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가 깊어졌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기층사회로부터의 분노는 정치권 전체로 향했으나 진보정치인들에 대해 더 강하게 표출됐다. 극우정치인들은 여기에 편승해 전통적인 양당 구도의 민주주의 체계를 흔들며 권위주의적인 정치성향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극우정당을 중심으로 집권연정이 만들어졌다. 프랑스도 중도층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세계 사람들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군사 및 경제강국인 미국의 공화당은 점점 극단화돼 가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가 안 나오더라도 그 못지않은 선동적인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기층에 속한 시민이 그들의 어려운 경제 현실에 대한 책임을 어디에 돌려야 할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진보정당들의 대안은 설득력이 있거나 실효적이지 못했다. 결국 극우정치인들이 제시하는 손쉬운 해법(이민자 제한, 글로벌화와 중국의 책임 등)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극우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기저계층들의 정치적 의견 표시 통로는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의 몫이다. 진보정당들은 사회의 정치적 극단화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기저계층의 근거 있는 분노를 풀어줄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10월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민생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10월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민생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예산안·세법개정안의 의미

윤석열 정부가 2023년 예산안과 2022년 세법개정안에서 제시한 조세·재정정책의 골격을 살펴보면 매우 독특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내년에 사용될 복지예산의 규모는 실제가치로는 감소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했으며,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의 예산도 줄였다. 세제개편안을 보면 소득 최상위계층에게만 유리한 감세를 제안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는 주식 대부분을 소유하는 상위 1% 계층에게, 종합부동산에 대한 감세는 고가주택 소유자들에게, 그리고 상속증여세 인하 역시 자산 상위계층에게 혜택으로 작용할 뿐이다. 주식양도소득에서 대주주 기준의 변경도 주식보유 상위계층에게 유리하다. 정부가 저소득 근로자의 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제안한 소득세제 개편안조차 가장 높은 경감 혜택은 소득 상위 5%에서 10% 사이의 계층에게 돌아간다. 복잡한 예산 내용과 조세제도 뒤에 숨어 있는 경제적 이해득실에 대해 90%의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믿고 있는지, 아니면 초연하리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내용을 어떻게 국회에 제안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를 더 가속화시키고 다수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종국에는 소득 상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조차 불안한 마음에 이 사회를 떠날 것이다.

재정정책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조세제도는 응능원칙(납세자의 지불 능력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과세의 원칙)에 충실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주축으로 한 적절한 수준의 세 부담을 정착시키고 필요한 수준의 재정지출이 가능하도록 재정조달의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마련된 재원은 복지와 교육 및 사회안전 등 인프라 투자에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저층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야 한다. 정부가 세입과 세출의 양방향에서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정을 조달하고 사용해 양극화를 점진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재정정책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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