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태양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고(개기월식) 달 뒤에 천왕성이 일직선으로 숨는(천왕성 은폐) 현상이 11월 8일(화) 밤 발생했습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붉게 물든 달을 육안으로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뒤늦게 부랴부랴 관련 뉴스와 영상을 찾아보느라 분주했네요. 200년 후에나 다시 봄 직한, 그래서 살아생전 다시 보기는 어려운 장면이었다고들 하니 아쉬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편집실에서]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위안거리가 있었습니다. 같은 날, 보기 드문 또 하나의 장면이 펼쳐졌거든요. SSG 랜더스가 키움 히어로즈를 꺾고 창단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막판까지도 우승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 팀은 초접전을 펼쳤습니다.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키움의 상승세는 무서웠습니다. ‘와이어 투 와이어 1위’(정규리그 내내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시즌을 마무리)라는 40년 한국프로야구사에 다시 볼까 말까 한 기록을 세운 SSG를 거칠게 몰아붙였습니다. 평소 야구를 즐겨보지 않는 덤덤한 관중조차 생중계 앞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올해 가을야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달 대신 야구를 선택한 까닭입니다.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하나 있긴 했습니다. 직업병이랄까요. 야구를 야구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경기 내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신생구단의 진짜 비결은 뭘까를 찾고 있더군요. 한국시리즈 승부의 분수령이 된 5차전(11월 7일) 9회말 대타로 나온 김강민(40)이 홈런을 날렸습니다. 승부를 뒤엎는 노장(老將)의 역전 3점 홈런이었습니다. 1차전에 이은 두 번째 홈런이었습니다. 두 번 모두 대타로 나서 기량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시원한 홈런에 열광하다가 문득 ‘타이밍’의 중요성을 떠올렸습니다. 여기서 김원형 감독의 용병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역 시절 ‘134승’을 기록한 투수 경력을 살린 적재적소의 선발·구원 마운드 기용이 단기전인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특히 빛을 발했습니다.

김 감독은 5차전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연임 사실을 통보받았다지요. 이야말로 SSG 랜더스 구단의 ‘신의 한 수’ 아니었을까요. 한국시리즈 결과를 보고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자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실기(失期)하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기가 막힌 결정을 내렸습니다.

신구(新舊) 선수들의 조화, 감독의 탈권위·소통 리더십,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 SSG 랜더스가 한국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태양과 달, 천왕성이 한데 어울려 펼친 환상의 우주쇼처럼 말이지요. 최근의 사회현상이 겹쳐 보입니다. 늑장 대처, 책임 전가, 사과와 장관 경질 타이밍, 꼬리 자르기, 셀프수사, ‘웃기고 있네’ 논란에 이르기까지 야구장 밖은 정반대 상황입니다. 참사도 그랬고 참사 후 벌어지는 모습 또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의 연속입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