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도시 안전과 사회직접자본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간접자본(SOC)은 여러 정의가 있지만,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에 의하면 ‘다른 다양한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기관에 의해 통제되는 서비스’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는 기초 기반환경인 에너지, 물 등을 확보하기 위해 댐이나 발전소 등을 주로 건설했다. 1970년대에는 수송시설을 확충하며 공단을 건설하는 일에 치중했고, 1980년대에는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는 투자를 많이 했다. 1990년대에는 세계화·지방화의 방향성을 가지고 투자가 이뤄졌으며, 2000년대 이후는 사회복지투자와 균형발전투자에 비중을 키우는 편이었다.

경기 일산 경의선누리길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기 일산 경의선누리길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회간접자본의 투자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이 1980년대에 2%에서 1990년대에는 6%로 올랐다가 2000년대 이후는 4%대 정도로 내려왔다. 경제구조의 선진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이다.

사람과 도시·마을의 사회직접자본화

직접자본이란 것은 말 그대로 경제에 투자되고 사용되는 직접자원을 말한다. 인력이나 금융, 기술, 토지, 생산자원 등을 포함한다. 그런데 갈수록 노동력은 기업경영이나 기술혁신에서 요소 단위로서의 직접자본으로 보지 않고 배제하는 흐름이 있다. 결국 시민이 산업의 노동력에서 국가의 활동력으로 자신을 구성원 자본(member capital)화하는 것을 사회직접자본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시민의 길거리 정치참여도가 높아지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지금 선진국들은 도시나 마을 전체를 교육, 문화, 과학, 주거, 자연환경 등을 잘 갖추고, 시민이 정주하는 사회적 직접자본으로 문명자원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행복하고 안전한 시민의 삶 자체를 문화적 자원으로 가치화하려는 정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국가의 미래세대 자본인 청년들의 도시 진입과 지역 활동을 지원하려는 다양한 정책 목표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도심부의 일정 지역을 국제적인 건강한 배회문화 지역으로 설정하고, 골목이나 거리의 환경개선을 통해 도보로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청년들을 포함한 국제적인 방문객을 환대 속에 받아들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도 그런 방향의 도시환경 개선책을 도입했다. 걸어서 이동해도 다양한 도시문화의 향유와 도시생활 경제가 가능한 거리로 도심부를 재구성하며 재정비하고 있다. 마드리드나 파리, 맨해튼, 런던, 토론토 등에서도 이런 일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도시의 변화를 일러 ‘뉴어버니즘(New Urbanism)의 구현’이라고도 부른다. 일부 도시에서는 ‘우븐 시티(Woven City·그물망 도시)로의 전략화’라고도 한다. 이 같은 일련의 도시혁신은 점점 인공지능화되며 과학기술로 치닫는 산업생산과 기술혁명의 현실에서, 청년이나 시민에게 직접생산 활동의 소외를 이겨내고, 고유한 자기 창의력의 외연을 키우게 해준다. 또한 이렇게 하여 청년들이 다양한 도시콘텐츠의 구성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며 스스로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이른바 사회직접자본으로서의 질적이고 양적인 발전을 지향하게 한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앞에 설치된 조형물 ‘해머링 맨(Hammering Man)?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앞에 설치된 조형물 ‘해머링 맨(Hammering Man)?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본가치를 직접자본으로 자산화해야

누구나 가슴이 한번쯤은 설레게 되는 10월 하순의 한국의 만추는 가히 절경이고 계절의 백미다. 다만 이 시대의 팽팽한 청년문화 자산을 담아내고 건강히 발산하게 하는 우리 도시의 공간문화 현실은 아직도 여건이 태부족이며 그 수준이 낙후된 편이다. 특히 요즘 도시의 골목길 문화생태계를 국제적인 배회자산으로 승화하고, 안전하며 편리하게 상품화하려는 여타 선진국 도시들의 도시혁신 트렌드에 비춰보면 우리 도시들의 준비는 많이 미흡하다.

이런 시기에 너무 처참하고 비극적인 도시 참사를 만났다. 서울의 대표적인 국제문화 배회거리인 이태원에서 빚어진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히고 너무도 안타까운 참극을 보았다. 삽시간에 생때 같은 청춘들을 너무 허무하게 잃었다. 정녕 저 귀한 생명의 꽃들이 저렇게 연기처럼 스러지면 목전의 사지를 보면서도 아무 도움도 못 준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이 비보를 접하면서, 우리는 청년들이 마음껏 미래의 꿈을 펼쳐보는 국가적 보금자리가 되도록 도시공간의 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어른들이 살자고 매일 도시를 욕심으로 채우는 현실에서 벗어나 젊은 야망과 희망의 공간으로 마을과 도시를 가꿔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절박하게 느껴야 한다. 이번 일만 보더라도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의 지원과 육성 및 보호를 너무 오랜 시간 등한히 했다. 비명에 하늘나라로 간 고귀한 청춘들의 희생이 미래를 위한 사회직접자본 강화의 씨앗으로 다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은 비단 우리 청년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와 산업혁명으로 갑자기 잘 걸어가던 인생길을 잃어버린 4050대 신중년들이나 6070대 신장년들, 더 고령의 어르신들에게도 이제 도시는 착한 배회경제와 배회문화의 생태계로 거듭나며 안전하고 쾌적하게 작동해야 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서울 종로 탑골공원 등에서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던 고령의 시민 운집에서 우리는 이런 미래를 예견했어야 했다. 농업국가에서 경공업국가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도시로 온 당시의 젊은 시민은 나이가 들면서 중화학공업의 기술사회로 잘 넘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정보통신 사회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기술사회 출신들은 생업코드 전환을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점점 초(超)지능 혁명의 수레바퀴로 돌아가지만, 그 안의 정신과 손길은 휴머노이드에 기초한 인간 중심의 공간자본으로 그 내부를 채워야 한다. 시민은 그런 도시 안에서 각기 자신의 인본가치를 직접자본으로 사회자산화할 수 있어야 한다. 장차 도시의 공간정책이 여전히 이제까지처럼 주로 주택과 도로를 마련하는 데 치중한다면, 청년들의 미래문화 생태계는 물론이고, 중장년들의 생업생태계는 국가의 도움 없이 안전과 위생과 환경의 사각지대에서 저급하게 조성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문제의 좁디좁은 그 골목만을 탓할 게 아니라 젊은이들의 용솟음치는 뜨거운 가슴을 들여다보지 못한 어른들의 좁디좁은 시야를 반성해야 하는 시간이다. 도시가 이제 사회직접자본으로 시민을 품에 안아야 한다면, 도시의 시민은 그가 누구든 어디서도 언제나 정부의 보호 속에 있어야 마땅하다. 이번 참사도 그런 점에서 너무너무 젊은 영혼에 미안하고, 그래서 더 끊어질 듯 애가 탄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