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불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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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11월 1일 화요일 오후 6시 43분. 작성을 마친 글을 지우고 새로 글을 쓴다. 주간경향 ‘꼬다리’ 코너의 마감 시점은 수요일이다. 온라인에는 다음 주 수요일이나 돼야 풀린다. 지금 써도 독자들은 오는 11월 9일에야 글을 읽게 될 것이다. 그때는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기록을 위해 쓴다. 이 공동체를 비탄에 빠뜨린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 책임 회피, 며칠 사이 뒤바뀐 사실관계에 관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3일째인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헌화 및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3일째인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헌화 및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56명이 목숨을 잃었다. 밤새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의 알림과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가족은 “이태원 가지 않았니”라고 물었고, 친구들은 “넌 괜찮냐”고 물었다. “집이야”라고 답하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는 한탄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누구 책임이냐’는 물음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비극이 벌어졌는데 잘못한 이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전 119에 첫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그날 밤 사고 발생 시각으로 추정되는 10시 15분이었다. 경찰·소방의 출동이 늦은 것이 당연해보였다. 핼러윈은 축제 등 주최 측이 따로 있는 행사가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인파가 모였다. 안전관리 의무를 가진 주체가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왜 미리 관리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답답했다. 경찰청장의 소속 상관이자 재난 대응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0월 30일 긴급 브리핑에서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도 “경찰·소방 인력 배치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책임자 규명을 외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있었지만, 여당은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라고만 했다. 한 의원은 식사자리에서 이 장관에 대해 “정치적인 감각이 없는 것”이라며 “법적 책임 유무는 나중에 따지면 될 일이고, 일단은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국민에게 공감과 유감을 표현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비판 같지만 기실 법적 책임은 묻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 장관이 ‘사과’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건 참사 발생 4일째인 11월 1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서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늦게 경찰의 ‘112 신고 접수 녹취록’이 공개됐다. 처음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이었다. 119 최초 신고 시각이라던 10시 15분보다 4시간가량 빨랐다. 신고자는 “해밀톤호텔 골목 이마트24”라며 “압사당할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의 답은 “알겠다. 확인해보겠다”였다. 비슷한 신고가 10시 11분까지 모두 11건 이어졌다. 경찰은 한결같이 “알겠다” “출동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장관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사람을 살릴 수 있던 기회가 4시간 동안 여러차례 있었다. 사과할 기회도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4일이나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때늦게 사과했지만 믿음이 안 간다. 녹취록 공개 직전에야 한 사과를 면피용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사이 경찰수사는 사건 현장에서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과 5~6명이 사람들을 밀었다는 의혹에 집중됐다.

이 글이 온라인과 지면에 실릴 때쯤엔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또 뭐가 있으려나’ 궁금하다가 ‘분명히 또 있겠지’ 한다. 체념적 예측이다. “알겠다”라는 답에서, “애도의 시간”이라는 일축에서 “가만히 있으라”던 2014년의 안내방송이 떠오른다. 참담하다. 슬픔만으로도 버거운 이때 불신을 어떻게 치유할까 물어야 하니.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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