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 주고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가 먹통이 되면서 사회 전체가 ‘암흑천지’를 경험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얼토당토않은 일이 한둘이 아녔습니다. 백업 시스템 구축, 데이터 서버 분산, 비상사태에 대비한 대응 훈련 등 당연한 조치조차 없었습니다. 오프라인 세상을 송두리째 옮겨놓고도 다들 정신이 딴 데 팔려 망(網)이 차단됐을 때의 위험에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했던 거지요. 욕심에 눈이 멀어 대책 마련은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편집실에서]병 주고 약 주고

20대 노동자가 새벽 시간에 혼자 작업을 하다가 제빵기계에 빨려들어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작업환경 개선, 인력 충원, 안전교육 강화 등의 기본 매뉴얼은 수익성 제고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사전에 줄곧 제기된 위험 경고와 예방 대책 마련 요구는 비용 분석과 경중을 따져 묻히기 일쑤고, 사태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집중호우 때도 그랬습니다. 강남이 물에 잠기고 역류로 맨홀 뚜껑이 날아가고 반지하방 침수로 무고한 생명이 스러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습니다. 그마저 땜질식입니다.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인데도 사람들은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회 곳곳이 ‘마음 따로 몸 따로’입니다.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외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생산 효율을 최우선 목표로 놓고 달려갑니다. 심야택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각종 유인책을 동원해 택시기사의 숫자를 늘리는 게 맞습니까, 아니면 회식 및 야근 자제와 저녁 있는 삶 확산을 통해 수요를 줄이는 방향이 옳습니까. 수해방지 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상이변에 따른 폭우 가능성 증대에 대비해 빗물저장시설 등의 용량을 늘리는 게 맞는 방향입니까, 아니면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옳습니까.

속도와 편의성을 이유로 365일 데이터 기반 플랫폼에 인간의 삶 자체를 위탁하고 있는 게 현실일진대,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선 과연 어떤 대책이 우리의 정보와 안전을 100% 지켜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전 국민이 카카오라는 단일 플랫폼으로 연결되다시피 한 독과점 사회입니다. 급한 불을 꺼보겠다고 특정 플랫폼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면 사고 확률이나 빈도를 낮출 수는 있을지언정 한번 터졌을 때 위험도는 훨씬 커집니다. 사이버 보안 등의 명목으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튈 조짐마저 보입니다. 한쪽에선 ‘먹방’이 대세를 이루고, 다른쪽에선 ‘간헐단식’이니 ‘체중 감량’ 등의 정보가 넘칩니다.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로 쓰레기를 쏟아내는데 소각장을 둘러싼 진통은 마포구가 마지막일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세상을 구하고자 ‘디지털 디톡스(독소 제거)’ 프로그램이 고개를 들고 있다네요. 전형적인 ‘병 주고 약 주고’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