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민주주의와 팬덤정치 사이, 권리와 책임을 묻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누구의 정당인가

“대한민국 정당 70년사에서 처음 있는 일 아닌가요.” 10월 11일 기자와 마주 앉은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당원존 소통관장의 ‘의미부여’다. “상식적으로 당의 주인은 당원인데 그동안 소통 창구가 게시판밖에 없었잖아요. 당원들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또 실질적인 소통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그런 공간 말이에요.” 남 위원장이 ‘대한민국 정당 70년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 것은 무엇일까. 민주당 당원존 개설을 두고 한 말이다.

10월 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원존 개관식의 일환으로 열린 공개최고위원회에서 이재명 당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10월 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원존 개관식의 일환으로 열린 공개최고위원회에서 이재명 당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당원존은 10월 5일 개관했다. 기자는 유튜브 생중계로 이재명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참석한 개관식을 지켜봤다(유튜브 중계를 두고 민주당은 ‘랜선집들이’라고 명명했다). 소개 영상의 멘트는 다음과 같다. “민주당은 당원의 손에서 탄생했고 당원의 품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민주당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우리 민주당원이 자발적인 모임을 갖고 소통할 수 있는, 당원들이 소통을 요구하는 이때….” 화면은 지난 당대표 경선 당시 이재명 기호 4번 후보의 공약연설 장면으로 넘어간다.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을, 당원의 뜻을 당의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당원존 개설은 이재명 당대표의 1호 지시사항이다.

당원존은 여의도 중앙당사 2층에 마련했다. 이전에는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까. “…기자실 아니었나요? 지난 대선 때도 프레스룸으로 사용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남 위원장의 말이다. 그랬을까. 기억을 더듬어봤다.

70년 정당사 첫 ‘당원존’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7’ 포털지도에 나오는 민주당사의 주소다. 건물 표기는 그냥 민주당사로 돼 있다. 민주당은 2016년 10층짜리 이 건물을 매입했다. 이전 건물의 이름은 장덕빌딩이었다. 건물 매입 후 민주당은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에 흩어져 있던 당 기구를 당사 건물로 불러 모았다. 당시 당 조직국·총무국 등은 신동해빌딩에 있었고, 당 사무처는 국회 의원회관에 있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현 당사에서 세 블록쯤 떨어진 렉싱턴호텔 옆 동우국제빌딩에 입주해 있었는데, 민주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꿔 당사 9층과 10층으로 들어왔다. 당사 매입 당시 기사를 보면 당 2층에 프레스룸을 둬 “미디어 친화적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돼 있는데, 지난 6년간 ‘민주당사 기자실’을 이용한 기억이 없다. 사실 지난 6년간 당사 출입은 국회 의원회관 출입보다 어려웠다. 당사를 출입하려면 두 관문, 입구를 펜스로 막고 있는 경찰과 당사 출입구의 경비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 당직자와 사전약속이 돼 있는지 확인하고 해당 당직자가 직접 1층으로 내려와 동행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민주당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사에서 두 블록 떨어져 있는 국민의힘 당사도 경찰들이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경비의 관점에서는 기자나 당원이나 마찬가지다. 당직자를 제외하곤 원칙적으로 모두 통제 대상인 셈이다.

삼엄한 통제 조치를 취하는 까닭이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각종 민원이나 주의·주장을 내거는 시위가 국회 정문 앞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앞 여야 중앙당사 앞도 단골 시위장소다. 지난 6년을 돌이켜보면 지방선거나 총선을 앞두고서는 당사 앞이 더 ‘핫플레이스’였다. 공천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실력행사가 이뤄졌다. 낯뜨거운 육두문자와 정치인 사생활 폭로를 적은 플래카드와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며 여의도에 나타난 특이한 흐름이 있다. 당 개혁을 요구하는 권리당원들(국민의힘은 책임당원)의 당사 앞 시위다. 당헌·당규에 대한 문제 제기나 시위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특정 당직자’를 지목하며 퇴진이나 사과를 요구하는 흐름도 과거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기존 여의도 문법으로 봤을 때 당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특정 계파를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행위는 일부 정치고관여층 당원들의 ‘선 넘은’ 주의 주장일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원존 개관’을 다룬 언론보도를 보면 흔히 등장하는 비판적 언급이 눈에 띈다. ‘개딸(개혁의 딸) 놀이터’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당원의 공간적 권리확대 측면보다 당내 특정 계파 팬덤을 위한 결정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개딸 놀이터’ 의구심 나오는 까닭 당원존 방문을 위해 여의도를 찾은 지난 10월 11일, 양 당사로 가는 길 인근에는 그간 당사 앞에서 벌어진 ‘정치투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민주당사 앞에는 ‘계파 나눠먹기 대의원 제도 즉시 폐지하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고, 맞은편 공사장 임시 벽엔 지난 수개월간 열린 집회 때 써붙여 놓은 대자보들이 비바람에 퇴색되고 찢겨나간 채 붙어 있었다. 정권교체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점심 무렵 당사 앞에서는 ‘간호법 제정 대선공약’을 지켜달라며 대한간호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피켓팅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이준석 (당대표) 영구 제명”을 요구하는 간판을 내건 ‘국민행동위원회’ 명의의 승합차가 주차돼 있었다.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왼쪽)과 국민의힘 중앙당사는 경찰이 시민이나 당직자를 제외한 일반당원 출입은 막고 있다. 사진은 기자가 방문한 10월 11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찍었다. / 정용인 기자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왼쪽)과 국민의힘 중앙당사는 경찰이 시민이나 당직자를 제외한 일반당원 출입은 막고 있다. 사진은 기자가 방문한 10월 11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찍었다. / 정용인 기자

“결국 멤버십과 비슷한 것 아니겠어요. 소액이든 큰 금액이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가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건데 예전 인식이 이어지는 사람들은 결국 ‘개딸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꼬아서 평가하는 건데….” 이날 당원존에서 만난 한 권리당원(남성·43)의 말이다. ‘당원존을 놓고 일각에서 개딸 놀이터를 만든 게 아니냐고 비판한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그동안 나온 정당개혁 요구를 개딸의 목소리라고 이름 붙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개딸이라는 표현이 지난 대선 때 이재명을 지지한 2030대 여성들의 개혁 요구를 반영해 나온 표현이고, 민주당의 시각에서는 개딸이라는 말이 밝은 에너지를 주는 표현이지만, 혐오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개’와 ‘딸’이라는 것을 낮춰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일반 국민이 정치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결국 기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국민의힘도 당원민주주의 ‘홍역’ ‘당원민주주의 vs 팬덤정치’ 홍역을 치르고 있는 건 현 여권인 국민의힘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지난 8월 8일 국민의힘 당원모임인 국바세(국민의힘 바로세우기 모임)가 주최한 토론회에 내걸린 플래카드의 문구다. 이준석 당대표 징계와 비대위 개설의 적법성을 두고 벌어진 소송의 주체로 주목받는 모임이다. 10월 12일, 이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신인규 변호사와 통화했다. “사실 보수정당에서는 정당민주주의라는 개념조차 생소하고 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개혁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없었다. 이른바 ‘줄서기’라고 하는 인물 추종적 정치행태나 구태적인 모습이 많았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이 당에 들어온 사람들이 당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사법부에서 한번 제동을 걸었음에도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비대위 체제를 강행한 것이 이 사태를 불러왔다. 우리가 얻은 결론은 재판부가 정당민주주의를 이뤄내는 주체가 아니라 정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국바세의 회원 수는 4600여명(2022년 10월 12일 기준). 이중 약 500여명의 당원이 국바세 대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당원 500명을 중심으로 전국 조직망을 짰다. 9개 지회로 전국망을 만들었고 그중 지역위원은 1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결국 이준석 전 당대표 지지모임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렇게 자꾸 우리 움직임의 의미를 평가절하·축소하려는 분들이 있다. 아무리 프레임을 씌워도 아닌 것은 아니다. 국바세 정관에 인물 추종 정치 청산이 목표로 들어가 있다. 누구의 ‘팬클럽질’을 하겠다는 식으로 운영하면 먼저 구성원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신인규 전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이 8월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등이 모인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 주최로 열린 대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신인규 전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이 8월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등이 모인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 주최로 열린 대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당원민주주의 vs 팬덤정치 논란과 관련해 민주당 쪽의 ‘개딸’과 비교되는데.

“민주당의 강성팬덤 역시 이재명 추종이라는 인물정치를 못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소위 ‘윤심’을 쫓아가는 것과 똑같은 인물 추종이다. ‘개딸’들의 정치참여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극성지지자는 늘 있게 마련이니까. 문제는 그것을 수용하는 정치인의 태도다. 이재명 당대표는 인물 추종을 강화하는 쪽이다. 인물을 배격하는 자리에 비전이나 가치가 와야 한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이 이야기한 가치는 대구에서 ‘콩’이라고 한다면 부산이나 광주에서도 ‘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쪽에서도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양두구육’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 비전과 가치 중심의 연대가 보수정당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도가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주당 청년대변인을 지낸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은 “당원민주주의는 그동안 한국정치에서 부재했던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개념인데 그게 정당민주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보다 정교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나 역시 당직을 경험해봤지만 당론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주변 현직 의원들과 이야기해봐도 잘 모르더라. 몇몇 당 지도부의 정책 의사결정 단위에서 후다닥 정해 의총에서 추인받는 형태로 가는 것 아닌가. 그러면 의원들 입장에서는 여러 눈치를 봐서 그냥 거수기처럼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의원총회가 ‘박수의총’이라는 비난을 받는데 민주당이라고 크게 다를까.”

그는 “오프라인 당원존이나 권리당원 게시판 같은 공간을 두고도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만 활동하고 다른 사람은 침묵하는 ‘밴드왜건 효과’가 생기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은 지지층 때문에 어떻게 되고 국민의힘은 노년 강성지지층 때문에 망한다는 식의 ‘열성 지지층’ 비판은 적어도 정치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직접민주주의 팬클럽의 시초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사모라고 할 수 있다. 3김시대도 그렇지만 노무현 하면 맨날 자본과 독재정부·5공과 싸우는 모습만 기억하는데 사실은 지지층이 싫어하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 다시 말해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팬클럽 덕분에 집권했는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할 때는 지지층한테 ‘여러분이 반대하는 거 이해한다. 여러분이 세게 반대해주니 미국과 (겨뤄볼) 협상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계승하겠다고 밝힌 ‘노무현 정신’엔 그런 모습도 포함돼 있다.”

당원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데는 여야 정당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온라인당원제도 한몫하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지낸 신철우 시사평론가는 “기존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당원들은 아무래도 지지기반이나 학연·지연·개인 이권 등에 기반한 것이라면 온라인은 특정인물의 팬덤에 기반한 경우가 많아 당원 사이의 관계나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존 당원의 시각에서 보면 사실 권리당원 게시판에서 무리 지어 나타나는 온라인 당원의 행태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꽤 들 수 있다. 온라인 당원의 정보습득 경로를 보면 시사유튜브 채널이나 인터넷커뮤니티 빅마우스의 영향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정보를 습득하거나 받는 루트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조작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으로 ‘너희들이 언제부터 민주당에 있었다고’ 하는 기득권적 시각이기도 하다. 신규 당원 상당수가 MZ세대인데, 세대 간 충돌일 수도 있고…. 국민의힘도 상황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21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박지현 당대표 사퇴 촉구 2030 개딸 집회 / 유튜브 재복스튜디오 캡처

지난 5월 21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박지현 당대표 사퇴 촉구 2030 개딸 집회 / 유튜브 재복스튜디오 캡처

지역 보스정치 날개 달아준 권리당원제 월 1000원 당비납부로 당원 가입 문턱이 낮아진 것이 정당민주화보다 오히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매표를 조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성순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정당에서는 ‘조강시즌(조직 강화 특별시즌)’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다. 정치인들이 당원 가입원서를 들고 지인들을 찾아 호소한다. 자발적 가입형식이지만 결국은 다 돈이다. 현실적으로 ‘당비 1만원 납부’라고 써냈다면 그만큼의 돈을 매달 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이 4000개의 원서를 받았다면 1만원씩 단순 계산해도 4000만원이다. 민주당 권리당원이나 국민의힘 책임당원 수를 당에서는 정확히 밝히길 꺼린다. 왜냐하면 선거가 끝나면 쫙 빠져나가는 ‘허수’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6월 10일이 선거라면 선거 뒤 6월 말이면 90%가 빠진다. 결국 특정후보를 위해 들어온 거지 당을 보고 들어온 건 아닌 셈이고.” 그는 “중앙정치의 기반이 돼야 할 지역정치는 한국에선 ‘돈 정치’가 된 지 이미 오래”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예컨대 스물여섯 살 먹은 젊은 청년이 10년 후 시장을 꿈꾸고 당 사무실에 등록해 ‘당 활동 10년 후 시장에 도전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당협위원장이 내부회의에서 ‘이걸 하자’고 했을 때 ‘제 생각은 다르다’고 토를 달면 다 잘린다. 간단히 말해 ‘보스정치’다.” 당비 1000원 납부로 가능한 권리(책임)당원제가 거꾸로 지역사회에서는 ‘보스정치’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말 그럴까.

민주당 조직국에 따르면 현 민주당 전체당원은 486만명. 그중 한 달에 1000원 이상씩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은 지난 9월 현재 240여만명이다. 절반에 가까운 셈이다. 각종 선거를 기점으로 권리당원 숫자가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당 사무처 관계자는 “(당 후보가 확정된) 올해 1월에 대비해 권리당원 숫자가 계속 줄어들었지만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 후에도 1월 대비 권리당원이 4만명이 늘었다”라며 “선거에 졌음에도 민주당 권리당원들의 숫자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권리당원과 유사한 국민의힘 제도가 책임당원이다. 권리당원은 6개월 당비를 내야 각종 투표권 등을 얻을 수 있는 데 비해 책임당원은 3개월만 당비를 납부하면 제반 권리행사가 가능하다. 국민의힘 당 사무처 조직국 측은 ‘국민의힘 책임당원 규모나 증감 추이’ 확인을 거부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0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원이 물어봐도 책임당원의 성별이나 지역적 분포뿐 아니라 숫자도 민감한 정보라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기자와 통화한 신인규 국바세 공동대표는 “국민의힘 책임당원 수는 내가 선관위 대변인 할 때인 지난해 9월보다 두 배가량 늘어 현재는 60만~70만명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민주당이 팬덤정치에 의존한다면 국민의힘은 대통령 당, 다시 말해 친윤정당을 만들려고 이준석 전 당대표를 쳐내는 과정에서 정당민주주의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공천권이다. 공천권 때문에 계파분열·갈등이 생긴다. 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 측이 자기 계파를 만들기 위해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한 반대진영을 쳐내는 것도,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이 친문을 앞세우며 사실상 청와대 경호실장 역할을 하는 것 모두 같은 원인이다. 팬덤의 우상숭배에 빠진 현재의 민주당 모습도 결국은 차기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이다.”

팬덤정치와 정당민주주의의 함수관계 그는 “당원민주주의에 대한 해묵은 논점, ‘당이 대변해야 하는 것이 당심이냐 민심이냐’의 논쟁은 결국 현대 정당이 지향해야 하는 정당의 모델이 무엇이어야 하냐에 대한 시각차 문제와 연결된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정치정당이 지향해야 할 모델이 대중정당이냐 원내정당이냐를 두고 지난 20년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 독일의 사회민주당과 같은 계급 기반 모델의 대중정당이 무조건 맞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 진성당원제에 기반한 대중정당은 낡은 모델이다. 오히려 한국정당들이 적극 검토해봐야 할 모델은 미국식 원내정당(parliamentary party)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식 원내정당 체제는 중앙당이 없다. 그러다 보니 중앙당 당대표가 가진 공천권을 지역주민에게 돌려준다. 당대표가 없으니 권력 다툼이 필요없고 보스·제왕적 대표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중앙당이 없으니 선거는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치러지는데, 그러기 때문에 샌더스와 같은 진보인사도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보스정치·계파정치를 극복하려면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당의 주인이 당원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다. 정책 결정이나 후보를 뽑을 때도 당원의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준석이나 이재명을 둘러싸고 각 정당의 당원들이 보이는 움직임은 당의 정강정책·강령에 찬성(또는 반대)한다기보다는 이준석 또는 이재명이라는 개인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사실 당원민주주의 관점에서 당의 계급 기초가 무너지고 정당정책에 찬성해 당에 남아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라며 “한국은 오히려 팬덤정치에 입각해 당원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도 일정한 고비를 넘어서면 사라지고 오히려 정당의 퇴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팬덤정치가 정당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확장성을 없애고 정당정치를 타락하게 하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