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업계에 부는 ‘애니멀 프리’ 가죽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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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제품군의 키보드 커버 등에는 섀미 가죽(스웨이드) 느낌의 가공이 돼 있다. 진짜 가죽은 아니고 알칸타라(Alcantara)라는 가짜 가죽이다. 일본 토레이가 이탈리아에서 만든 합작 회사의 제품이다. 폴리에스터와 폴리우레탄이 주 소재이니, 일종의 합성섬유다. 속칭 ‘레자’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인조가죽과는 달리 고급 취급을 받는다. 루이뷔통 등에서 애용되고 있고, 자동차 내장재로도 널리 쓰인다. 내연성을 띠게 할 수 있어 F1 레이싱카에 쓰이기도 한다. 감촉이 각별하기에 젠하이저나 보스 등 음향 기기를 감싸기도 하고 갤럭시 시리즈의 커버에도 쓰인 적이 있다.

합성섬유의 일종인 알칸타라 / Wikimedia Commons, Fabrizio Marco Nannini

합성섬유의 일종인 알칸타라 / Wikimedia Commons, Fabrizio Marco Nannini

이처럼 잘 만든 가짜는 진짜보다 더 대접받을 수 있다. 특히 ESG 등 친환경, 착함이 경영 모토가 된 시대답게 ‘애니멀 프리’, ‘비건’ 등이 주요 키워드가 됐고, 과거 럭셔리 소재였던 가죽도 대안이 없을지 기업들이 살피게 됐다. 볼보는 지난해부터 신차에 동물 가죽을 쓰지 않기로 했다. 2030년부터 오로지 순수 전기차만 만들겠다고 발표할 때 함께 나왔던 선언이다. 가죽의 대체재로 그들이 이야기한 노르디코(Nordico)는 페트병과 재활용 코르크로 만들어졌다. 레노보와 HP도 비건 레더(인조가죽)로 꾸민 노트북을 선보였다. 소재는 폴리에틸렌이나 폴리우레탄이었다. 비건이라는 말은 동물만 아니면 뭐든 갖다붙일 수 있었다.

물론 정말 비건도 있다. BMW는 사막의 선인장으로 만든 데저트텍스(Deserttex)를 애니멀 프리 가죽의 대체재로 시험 적용 중이다. 또 버섯 가죽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기아차 사내벤처가 이 버섯 가죽을 연구 생산 중이다. 내년에 파일럿에 적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버섯의 본체이자 실체에 해당하는 균사체는 버섯을 딴 후에도 남아 있는 실뿌리 같은 조직으로 스티로폼처럼 기를 수 있다. 갑각류에서 볼 수 있는 키틴질이 함유돼 아주 질기다. 게다가 비가 온 뒤 버섯이 자라듯 아주 잘 자란다. 플라스틱이 아니므로 세월과 함께 가죽의 경년변화 같은 현상을 거쳐 파티나(patina·그윽한 멋)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대표적 가죽 장인 에르메스의 빅토리아 백도 이 버섯 가죽 버전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가짜 가죽 시장은 지난해 기준 40조원 규모로 매년 10% 가까이 성장 중이다. 합성 피혁의 생산성만 높아져 결국 쓰레기만 더 늘어난다면 의미가 없다. 정의를 구현했다는 느낌만 남을 뿐이다. 이미 소가죽은 2019년 미국 기준 550만두의 분량이 가죽 원단으로 만들어지지도 못하고 폐기됐다. 전체 도축 두수는 연간 3300만두 정도였으니 무시 못 할 양이 버려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짜 양산이 급한가 싶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것이 없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은가.

동물은 키우는 데 탄소가 많이 든다. 가죽 가공도 환경에 좋지는 않다. 그런데 오히려 세계적 육류 소비 증가로 거의 모든 가축의 사육 두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먹거리에서 고기를 줄여야 할 때이련만, 식물성 대체육 사업은 활로를 못 찾고 있다. 그렇다면 태어난 이상 이 지구에 아낌없이 주고 가는 편이 나을 텐데, 이것 참 어려운 일이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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