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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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시인의 신간시집 <나는 빛을 걷는다>

어떤 기억은 보푸라기 같습니다. 평소 가지런하다가도 옷의 거죽에서 가늘게 털이 부풀어 성가시게 하는 것이 보푸라기니까요.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잊힌 기억이 어느 날 불쑥 솟아올랐는데 좋은 기억은 아닐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기억도 아니겠지요. 라라(1989~ )의 신간시집 <나는 빛을 걷는다>를 읽는데, ‘이 시집은 한국문학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한국문학의 정의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낮은 지층에 잠들어 있던 토론의 기억이 이 시집을 읽으며 보푸라기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지요.

<나는 빛을 걷는다> 표지 / 도서출판 도훈

<나는 빛을 걷는다> 표지 / 도서출판 도훈

“나는 무궁화 열차가 좋다”

권영민 전 서울대 교수는 저서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열화당·2021)에서 한국문학을 “한국 민족에 의해 한국어를 기반으로 형성 발전해온 문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한국문학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한민족 삶의 양상을 표현해왔으며, 시대마다 다양한 문학 형태가 등장해 발전했지요. 그러니 한국인에 의해 구비전승된 문학이나 한문으로 창작된 글도 당연히 한국문학이지요. 요즘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교포 문인이 상당히 많습니다. 정기적으로 문학잡지를 발간하고, 한국의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시집도 발간합니다. 한국인이 한글로 쓴 것이니 이 또한 한국문학이겠지요. 라라의 본명은 딜라라 외주르투(Dilara Ozyurt), 한국인이 아닌 튀르키예(터키)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라라가 한글로 아무리 뛰어난 시를 쓰더라도 한국문학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러면 튀르키예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요.

골치 아픈 문제는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시집을 펼쳐보겠습니다. 라라는 ‘시인의 말’에서 “내 머릿속에 쓰인 문장들이 이제 나의 시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못 했던 말들, 삼키고 삼켜 가슴속에 감춰둔 아픔이 시가 되고, 그 시들이 “내 꿈의 씨앗”이 된다고 했습니다. 라라의 한국어 능력은 최상급인 6급이랍니다. 모국어인 튀르키예어처럼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지요. 그러니 이번 시집은 튀르키예어로 쓰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한국어로 쓴 것이겠지요.

맨 앞에 놓인 시가 ‘기행’인데, 첫 문장이 “나는 무궁화 열차가 좋다”입니다. KTX가 운행하면서 무궁화호는 느림의 대명사가 됐지요. 무궁화호를 타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라라는 무궁화 열차가 좋은 이유를 “계절을 찬찬히 훑어”보고, “추억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네게 가는 길에 이 설렘이/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이라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빨리 보고 싶을 텐데 라라는 만나기 전 “아주 서서히” 다가가는 시간을 즐기고 있네요. 어쩌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라라는 ‘나의 서울’이란 시에서 “이 눈부신 도시에 처음 온 게 십 년 전”이라 했습니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낯설지 않은 익숙한 느낌”이었답니다. 걸을 때마다 “발견해야 할 마법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는군요. 마법처럼 새롭고 흥미로운 것만이 아니라 도시 구석구석에 “펼쳐져 있는 포근함”과 진정한 “나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고요. 라라는 서울 거리를 걸으며 “달고 삼삼한 음식 냄새”와 “알록달록한 전구들”, “감미로운 음악 소리”에도 감응합니다. “연인 같았던 이 여행”에서 다시 “만날 생각에” 마음 설레고,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헤어질 때는/ 눈물겹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스탄불은 잠들지 않는다

이스탄불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라라의 눈에 “떡볶이 3천원”(이하 ‘터미널 안 떡볶이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쫀득한 그 맛만 느끼고 싶어” 어묵을 빼달라는 라라의 말에 떡볶이집 아줌마는 이상한 눈빛으로 “어묵을 빼면 많이 안 남을 텐데”라 말하고, 라라는 “그래도 맛있어요” 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떡볶이를 처음 먹을 때는 “기우뚱거리며 낯설었는데” 이제는 “아늑하고 따뜻하고 향수가 가득한 맛”이랍니다.

서울을 떠나 도착한 이스탄불은 “잠든 적이 없다”(이하 ‘이스탄불’)고 합니다. 이 고풍스러운 도시는 “클라리넷과 카눈의 감미로운 소리”와 낯을 가리지 않는 골목의 고양이들, “집 사이사이 묶여 있는 줄을 탄 빨래들”, 형형색색 옷을 입고 “춤추고 있는 집시들”, “화려한 꽃무늬 치마들과 반짝이는 귀고리들” 그리고 뱃고동 소리와 “다리 위에 줄줄이 세워져 있는 낚싯대들”의 축제로 흥청거립니다. 이스탄불이나 소소한 개인사는 잘 모르겠지만, 라라는 이사를 열한 번이나 했다는군요. 라라는 시 ‘열한 번째 이사’에서 이사하는 날의 심경을 소소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깨질 수 있는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포장”을 하면서 “주의/ 깨질 수 있는 것”이라 메모해 붙여놓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합니다. 이사 끝나고 보면 “다 하나씩 깨져 있고 갈수록 줄어”든다고 하네요.

라라는 시 ‘어이없는 익숙함’에서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익숙할 줄 아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내 물건의 위치를 바꾸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도, 물건도 새로운 자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이죠. 늘 성공만 한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겠지요. 한데 “실패하고 또 실패”하다 보면 절망하고 포기할 것 같은데 “그 실패조차 적응하며/ 결국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게 되지요.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잃게 되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지요.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웃음도 잃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익숙해지지요. 평소처럼 “끼니를 챙기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지요. 라라는 이런 상황을 ‘어이없는 익숙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라라의 한국어 시집을 만날 수 있는 건 나태주 시인 덕분입니다. 라라가 나태주 시인의 시를 번역해 한국문학번역원에 제출하겠다고 e메일을 보냈는데 아쉽게도 튀르키예 번역 분야가 없어 접수조차 하지 못했답니다. 이를 계기로 친분을 이어갔다네요. 그러던 어느 날 라라가 한글로 쓴 시가 꽤 된다고 말했고, 나태주 시인이 좀 보여달라고 했답니다. 라라는 한국 사람이 쓴 시보다 아름다운 시들이 첩첩이 쌓인 원고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런 인연으로 우리가 라라의 시를 읽고 있는 것이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라라의 한국어 시집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의 말

[김정수의 시톡](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세상에 없는 노래를 위한 가사집 | 홍대욱 지음·달아실·1만원
끝까지 아름답겠노라
했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 거듭 되새기지만 아직
그 마음 그대로입니다.

[김정수의 시톡](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콜센터 유감 | 최세라 지음·출판사 b·1만2000원
여기 수록된 시들은 애써
걸으며 흔들렸던 날들의
기록이자 가깝게 껴안던
지인들의 전언이기도 하다.

[김정수의 시톡](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잡채 | 김옥종 지음·휴먼앤북스·1만원
쓴 물이 올라온
새벽을 뒤집어도
내 시는 생 날것이거나
MSG 들어가지 않은
슴슴함으로 가겠다.

[김정수의 시톡](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그해 여름은 모노톤으로 | 김비주 지음·상상인·1만원
아침이면 만나는 그리움
내일이면 또다시 만날
그리움.

[김정수의 시톡](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46억년의 바다를 지나 그가 온다 | 손애라 지음·작가마을·1만원
끝이 안 보이던 길,
끝내 둥글어지지 않던
모서리들, 이제는
안다. 나만의 신화를
쓰고 있었음을.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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